대한민국 헌법 (r20180326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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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
행정규칙
전문(全文)
1. 개요
2. 개정안 공고
3. 구성
3.1. 전문(前文)
3.2. 본칙
3.3. 부칙
5. 비판
6. 관련 문서


1. 개요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제헌 헌법 이래 9차례 개헌되었다. 비극적인 현대 정치사의 영향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헌법은 개정 절차가 까다로운 편이다. (경성헌법) (이것은 비극적인 현대 정치사때문이라기보다 원래 헌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기본법(민,형법 기타등) 보다 상위개념의 법이며 모든 법들을 구속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바뀌기 어렵게 되어있다고 하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이다.) 현행 헌법은 6월 항쟁의 영향으로 인해 개헌된 제10호 헌법이며, 유일하게 10년 이상 유지된 헌법임과 동시에, 역대 최장수 헌법이다. 현행 헌법의 의의라면,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정권 시대를 엶으로써, 그간 훼손되었던 헌법의 참된 기능을 회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 개정안 공고


현행 헌법으로 개정될 때 이 헌법개정안을 공고한 대통령 및 국무총리, 국무위원은 다음과 같다.[1]

헌법 제129조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로 제안된 헌법개정안을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헌법 제130조의 규정에 따라 이에 공고한다.

대통령 전두환

국무총리 김정렬

국무위원 경제기획원장관 정인용

국무위원 외무부장관 최광수

국무위원 내무부장관 이상희

국무위원 재무부장관 사공일

국무위원 법무부장관 정해창

국무위원 국방부장관 정호용

국무위원 문교부장관 서명원

국무위원 체육부장관 조상호

국무위원 농림수산부장관 김주호

국무위원 상공부장관 나웅배

국무위원 동력자원부장관 최창락

국무위원 건설부장관 이규효

국무위원 보건사회부장관 이해원

국무위원 노동부장관 이헌기

국무위원 교통부장관 차규헌

국무위원 체신부장관 오명

국무위원 문화공보부장관 이웅희

국무위원 총무처장관 장기오

국무위원 과학기술처장관 박긍식

국무위원 국토통일원장관 허문도

국무위원 정무장관(제1) 이종률


3. 구성


대한민국 헌법 조항
제1장
총강
(1~9조)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10~39조)
제3장
국회
(40~65조)
제4장
정부
(66~100조)
제5장
법원
(101~110조)
제6장
헌법재판소
(111~113조)
제7장
선거관리
(114~116조)
제8장
지방자치
(117~118조)
제9장
경제
(119~127조)
제10장
헌법개정
(128~130조)


대한민국의 헌법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부칙 6개 조를 제외하면 총 10장 130조의 간결한 구성인데, 이것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그 동력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내용은 몹시 명료하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총강에서 먼저 주권, 국민, 영토를 규정한 후, 국회나 대통령보다 국민을 더 앞세우고 있고, 국민의 권리와 의무 중에서는 권리가 먼저 나오며,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설명한 후에야 비로소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입법부와 행정부가 나온 뒤 마지막으로 사법부가 나오는 등, 이 순서들은 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3.1. 전문(前文)


  • 원문

悠久한 歷史와 傳統에 빛나는 우리 大韓國民은 3·1運動으로 建立된 大韓民國臨時政府의 法統과 不義에 抗拒한 4·19民主理念을 繼承하고, 祖國의 民主改革과 平和的 統一의 使命에 立脚하여 正義·人道와 同胞愛로써 民族의 團結을 鞏固히 하고, 모든 社會的 弊習과 不義를 打破하며, 自律과 調和를 바탕으로 自由民主的 基本秩序를 더욱 確固히 하여 政治·經濟·社會·文化의 모든 領域에 있어서 各人의 機會를 均等히 하고, 能力을 最高度로 發揮하게 하며, 自由와 權利에 따르는 責任과 義務를 完遂하게 하여, 안으로는 國民生活의 均等한 向上을 期하고 밖으로는 恒久的인 世界平和와 人類公營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子孫의 安全과 自由와 幸福을 永遠히 確保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年 7月 12日에 制定되고 8次에 걸쳐 改定된 憲法을 이제 國會의 議決을 거쳐 國民投票에 依하여 改定한다.

  • 한글 표기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2]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권리에 따르는 책임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3]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년 10월 29일.

보면 알겠지만 "유구한~" 부터 "~개정한다."까지 모든 내용이 한 문장으로 되어있다.
참고로 헌법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건국절을 주장하는 몇몇 인사들에게 반박하는 자료로 쓰이고 있다. 해방 이후인 1948년 9월 1일 발간된 대한민국 관보 1호에도 "대한민국 30년[4] 9월 1일(大韓民國三〇年九月一日)"로 표기 되어 있다. 사진 오른쪽 위 날짜를 보자.

3.2. 본칙


대한민국 헌법 조항
제1장
총강
(1~9조)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10~39조)
제3장
국회
(40~65조)
제4장
정부
(66~100조)
제5장
법원
(101~110조)
제6장
헌법재판소
(111~113조)
제7장
선거관리
(114~116조)
제8장
지방자치
(117~118조)
제9장
경제
(119~127조)
제10장
헌법개정
(128~130조)


헌법재판소법원 등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헌법보다는 법원조직법이나 헌법재판소법 등 부속 법령을 찾아보는 게 좋으며 물론 진짜로 법률적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법률을 찾아봄과 동시에 변호사를 찾아가는 게 가장 좋다.

3.3. 부칙


제1조 이 헌법은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한다. 다만, 이 헌법을 시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법률의 제정·개정과 이 헌법에 의한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 기타 이 헌법시행에 관한 준비는 이 헌법시행 전에 할 수 있다.

제2조 ①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선거는 이 헌법시행일 40일 전까지 실시한다.

②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의 임기는 이 헌법시행일로부터 개시한다.

제3조 ①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국회의원선거는 이 헌법공포일로부터 6월 이내에 실시하며, 이 헌법에 의하여 선출된 최초의 국회의원의 임기는 국회의원선거후 이 헌법에 의한 국회의 최초의 집회일로부터 개시한다.

②이 헌법공포 당시의 국회의원의 임기는 제1항에 의한 국회의 최초의 집회일 전일까지로 한다.

제4조 ①이 헌법시행 당시의 공무원과 정부가 임명한 기업체의 임원은 이 헌법에 의하여 임명된 것으로 본다. 다만, 이 헌법에 의하여 선임방법이나 임명권자가 변경된 공무원과 대법원장 및 감사원장은 이 헌법에 의하여 후임자가 선임될 때까지 그 직무를 행하며, 이 경우 전임자인 공무원의 임기는 후임자가 선임되는 전일까지로 한다.

②이 헌법시행 당시의 대법원장과 대법원판사가 아닌 법관은 제1항 단서의 규정에 불구하고 이 헌법에 의하여 임명된 것으로 본다.

③이 헌법중 공무원의 임기 또는 중임제한에 관한 규정은 이 헌법에 의하여 그 공무원이 최초로 선출 또는 임명된 때로부터 적용한다.

제5조 이 헌법시행 당시의 법령과 조약은 이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한 그 효력을 지속한다.

제6조 이 헌법시행 당시에 이 헌법에 의하여 새로 설치될 기관의 권한에 속하는 직무를 행하고 있는 기관은 이 헌법에 의하여 새로운 기관이 설치될 때까지 존속하며 그 직무를 행한다.


4. 역사


대한민국 헌법/역사 참고.

5. 비판


  • 이중배상금지 조항은 논란의 불씨로 남아 있다. 사실 이중배상금지 조항은 원래 법률조항이었는데, 박정희 정부 시절에 위헌 결정을 받았다가 유신 이후 같은 내용을 헌법에 넣어버렸다. 헌법은 최상위 규범이기 때문에 헌법을 근거로 법률의 위헌성은 판단할 수 있지만 헌법을 근거로 헌법의 위헌성은 판단할 수 없기 때문. 1987년 9차 개헌 당시, 민주당이 이 조항을 삭제하고자 하였으나[5] 민정당과의 협상 끝에 남기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이 조항에 대한 위헌소원이 몇번 청구되었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대해 위헌심사할 수는 없다며 모조리 각하하고 있다.
  • 사문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국가원로자문회의 같은 기구가 과연 헌법에 규정되어 있어야 하는가, 또 이러한 기구의 의장이 직전 대통령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옳으냐 하는 점이 있다.[6]
  • 국민의 권리와 의무 부분에 있어서 국민의 권리 부분은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구성되어 있어 국민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결국 법률과 헌법재판소의 유권해석에 기대야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현 체제하에서는 사법부가 국민의 법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이 제기된다. 국민참여재판 등으로 보완하고는 있지만 기껏해야 법률사항이다.
  • 또한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라 제대로 된 권력 분립이 아니라는 비판도 나온다. 참고로 제2공화국 헌법에서는 대법원장을 법조인들의 선거를 통해 뽑았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경우 대통령이 3인, 국회 여당측이 1인,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이 또 3인을 지명하기 때문에 7인 정도가 대통령의 성향과 유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균형을 잃기 쉽다.
  • 대법원헌법재판소가 충돌하면 실질적으로 견제 수단이 없다. 아직까지 그렇게 정면충돌한 적은 없지만, 주요사항에 대해 법리 해석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고, 서로가 서로의 결정을 무시한 사태도 있다. 자세한 것은 헌법재판소 문서 참조.
  • 헌법기관별로 임기가 일치하지 않아 정치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제기된다.
  • 대통령 단임제는 독재를 막는다는 취지는 좋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평가하고 심판할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중임제를 시행하면 정책의 일관성이 좀 더 커지고, 국민의 눈치를 더 보게 되므로 이쪽으로의 개헌 주장은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현행 헌법이 제정될 때는 다시 독재정권이 등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여 국민 사이에서는 그리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민주주의가 확립된 지금에는 오히려 단점이 부각되고 있어 점점 많은 국민들이 중임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이전 헌법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반면 대통령을 견제할 수단은 효과적이지 않거나 마땅하지 못하다는 비판, 대통령과 대비되어 국무총리얼굴마담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헌을 통해 정치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본다.
  • 헌법에 우습게도 한글 맞춤법에 어긋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서 '붙이다'가 아닌 '부치다'가 옳은 표현이지만 이를 개정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 당시의 맞춤법은 1989년 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현행 맞춤법과는 다르지만 그때에도 '붙이다'와 '부치다'는 지금과 같은 의미와 용례로 사용하였다. 더불어 띄어쓰기가 틀린 데가 여러 군데 있다.

6. 관련 문서



[1] 이는 대한민국 제5공화국 당시에 시행되고 있던 제9호 헌법 제58조(국법상 행위에 관한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의 부서에 관한 규정) , 제65조(헌법개정안 심의에 관한 국무회의 규정)에 따른 것이다. 현행 헌법에서도 마찬가지로 각각 제82조, 제89조에 똑같은 규정이 있다.[2] "대한민국은"이 아니다(...). 착각하기 쉬운 문언이기 때문에 헌법 교수 중에는 수업시간에 일부러 학생을 지목하여 헌법 전문을 읽어 보라고 시켜 보는 예도 있다.[3] 제헌절이 7월 17일인 이유는 헌법 공포일이 5일 늦춰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헌절을 공헌절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 대륙법 체계에서 헌법의 제정은 법문 제정과 공포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4]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에 탄생했다.[5] 민주당 개헌시안[6] 사실 이 부분은 1987년 제정 당시 전두환이 상왕 정치를 하려는 의도로 만들었었는데, 대통령이 소집하고 싶지 않으면 그래도 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양김의 분열 덕분에 본인의 후계자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긴 했으나, 어쨌든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라는 정통성이 있던 노태우는 전두환을 무시하고 이 회의를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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