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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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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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취소선은 탄핵 등 전직 대통령의 자격 및 예우가 박탈된 경우임


문재인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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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D400><-5><#FFF><:> {{{#3AB34A 민주통합당 대표

제2대
이해찬

권한대행
문재인


비상대책위원장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비상대책위원장
문희상

제2대
문재인


당명변경

더불어민주당 대표
당명변경

초대
문재인


비상대책위대표
김종인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 사상구)
제18대
장제원

제19대
문재인


제20대
장제원


대통령비서실장
참여 정부
이명박 정부
제28대
이병완

제29대
문재인


대통령실장 초대
류우익[1]
}}}||

공식 프로필 사진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
이름
문재인 (文在寅, Moon Jae-in)
출생일
1953년 1월 24일 (65세)
출생지
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2]
관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청와대
사저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3]
재임기간
2017년 5월 10일 ~ 2022년 5월 10일(예정)[4]
서명

링크
청와대 공식홈페이지
네이버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Youtube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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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남평 문씨 충선공파 33대손
본적
함경남도 흥남시
부모
아버지 문용형[1], 어머니 강한옥[2]
형제자매
2남 3녀 중 장남[3]
배우자
김정숙
자녀
문준용, 문다혜
학력
경희대학교 법학 학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제대 (제1공수특전여단)
종교
천주교 (세례명: 티모테오)[4]
신체
172cm, 67kg, B형
십이지
용띠 (임진년)[5]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9
약칭

[1] 1919년생. 1978년 타계.[2] 1928년생. 그의 이모 강병옥은 북한이산가족으로 있는데, 상봉 사진이 있다.[3] 누나 1명, 남동생 1명, 여동생 2명이 있다.[4]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 영도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신선성당에서 받았다.[5] 입춘 이전 출생이므로 뱀띠가 아니라 용띠다.

1. 개요
2. 약력
4. 성품
5. 가족 관계
6. 전, 현직 정치인들과의 관계
7. 이야깃거리
7.1. 인기
7.2. 외모
7.3. 금괴
7.6. 각종 타이틀
8. 저서
11. 여담
12. 선거 이력
13.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
대한민국법조인, 정치인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으며,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을 거쳐 참여정부의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 전에는 부산에서 노동 및 인권 분야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노무현과의 인연도 노무현이 정계 입문 전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할 때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노무현2002년 대선에 후보로 출마하였을 때는 이른바 '부산 팀'으로 활동하며 선거 캠프에 참여하였다. 노무현 사후 치러진 국민장에서 상주를 맡았으며, 친노계의 수장 격으로 불렸으나, 정치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러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사상구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하며 정계에 입문하였고 55.0%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정치 신예임에도 높은 인지도 덕분에 빠른 속도로 야권의 대권 주자로 성장하였고, 제18대 대통령 선거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뿌리 깊은 기성 정치인이었던 박근혜에게 51.6 : 48.0%의 스코어로[5] 패배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의 경력을 거쳐 한 번 더 대권을 준비하였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기존 여권에 실망한 지지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2017년 5월 9일 실시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결국 41.1%의 득표율(득표수 1,342만 3,800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당선인 결정이 선언된 2017년 5월 10일 오전 8시 9분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 없이 곧바로 대통령 직무 수행을 시작하였다.

2. 약력


  • 1975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총무부장[6]
  • 1978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대대본부 작전과 병장 만기 제대
  • 1980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 1982 제12기 사법연수원 수료[7]
  • 1982 노무현·문재인 법률사무소 변호사[8][9]
  • 1984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과 강사
  • 1985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 1987 부산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10]
  • 1988 한겨레신문 창간위원 및 부산지사장[11]
  • 1988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
  • 1989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 1990 부산세관의 고문세관원 재정신청사건 공소유지담당변호사[12]
  • 1995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 199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지부 대표
  • 1995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 1996 부산YMCA 이사
  • 1997 부산민주공원 설계 현상공모 2차 심사위원장
  • 2001 노동자를 위한 연대 공동대표
  • 2001 부산광역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
  • 2002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
  • 2002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이사장
  • 2002 제16대 대통령 선거 노무현 후보 부산선거대책본부장
  • 2003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13]
  • 2004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피청구인 대리인단 간사[14]
  • 2004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 2005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15]
  • 2006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
  • 2007 에콰도르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 취임식 경축특사
  • 2007 제29대 대통령비서실장
  • 2007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
  • 2009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장
  • 2009 아름다운 봉하 감사[16]
  • 2009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상임이사 겸 운영위원장
  • 2010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 2011 혁신과통합 상임대표
  • 2012 제19대 국회의원 (부산 사상)
  • 2012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2012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후보
  • 2012 민주통합당 대표대행[17]
  • 2015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2015 더불어민주당 대표[18]
  • 2015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
  • 2016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 2017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3. 생애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53년 1월 24일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이하의 자세한 내용은 별도의 문서로 분리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생애 참고.

2017년 세계시민상 시상식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영상

3.1. 문재인 정부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 정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이 당선되면서 구성된 정부. 제6공화국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없이 출범한 첫 정부이다. 이는 전임자의 파면으로 인하여 예정보다 7개월 앞선 조기 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공식 정부 명칭은 문재인 정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

4. 성품


Getting ready to leave for South Korea and meetings with President Moon, a fine gentleman. We will figure it all out!

멋진 신사 문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날 준비중, 우린 잘 풀어갈 거야!

-

2017년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트위터#

문재인을 가까이서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평가는 단연 젠틀맨이라는 평이 많다.[19]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모든 비서관들에게 존칭을 썼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고, 종편 등에서 여러 방송을 진행했던 박종진[20]은 문재인의 인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흠 잡을 부분이 없는 분'이라고 극찬했다. 심지어 연일 문재인 정부를 향해 비판을 쏟아내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도 '부드럽고 비교적 진솔한 사람' 이라고 평가하며 인간적으로 호감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다.# 국회 국방위에서 함께 할동한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역시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내렸다. 이처럼 '정치인 문재인'은 몰라도 '인간 문재인'은 호감이 간다는 평가가 많다. 절친인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정치인 노무현은 싫지만 인간 노무현은 좋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생각해보면 재밌는 대목이다.
제19대 대선 JTBC 대선 토론 중 노 전 대통령 뇌물 수수 운운하던 홍준표 후보를 향해 했던 "이보세요" 한마디가 분노를 참다참다 나오는 가장 격한 수준의 발언이었다고 할 정도니 평소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겠다. 여담이지만 이때 홍준표가 버릇없다고 발언하자 언론이나 네티즌 사이에선 문재인이 홍준표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다뤘다. 그리고 이에 홍준표는 출생 신고를 늦게 해서[21] 호적상의 나이만 그렇지 사실은 동갑이라고 해명(?)했다. 누가 나이가 많은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22] 그리고 그의 "이보세요" 발언과 홍준표의 "버릇없다" 발언은 한동안 이슈였고, 문재인이 당선된 후 '이보세요'와 그 바리에이션들이 표준어로 등재되었다!
다만 공직자로서의 절제력이 있는 것과 일상생활에서 모습은 또 별개이다. 인간 문재인은 의외로 화를 낼 때는 확실히 내는 스타일이다.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는 '법무법인 부산' 변호사 시절 사무실에 들르고 시장으로 가던 차에 회사 차 기사가 시장까지 태워준 일이 있었는데 그때 금방 눈치 채고 택시를 타고 시장으로 쫓아 와서 "왜 회사 차를 개인 용무에 사용하냐"며 시장 바닥에서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비서실장 시절 아들 문준용 씨가 친구 둘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이 선물해준 홍주를 몰래 뜯어서 마셨을 때에도 드물게 화를 냈다고 한다.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하던 시절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과 주고받은 질의응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질의응답 내용 자체는 크게 특별할 것은 없었으나, 대체로 '사람이 너무 부드러워서 문제다'라는 소리를 듣던 문재인에게도 나름대로 이런 '까칠한' 면모가 있었다는 점에서 유명세를 탔다.영상
한편, 온화한 성품과는 반대로 스스로도 자부하길 강직한 '원칙주의자'로도 정평이 나있는데, 유시민 작가가 밝히기를 참여정부 당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공유하는 유명한 일화로, 문재인의 동기·동창들이 민원을 넣으려 방문하자 돌아앉아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동창들 사이에서 신망(?)을 많이 잃었다고. 그 외에도, 이미 상술되어 있지만, 민정수석으로 있었을 때 참여정부 개국 공신들 중 몇몇이 검찰에 잡혀 들어갔는데도 문재인은 검찰을 압박해 수사를 무마하는 등의 짓을 하지 않았고, 이로 인하여 참여정부 개국 공신들 중에서는 문재인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이 여럿 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부산에서 판사로 재직하며 당시 변호사 문재인을 만났던 안철상 대법관은 "당시에는 법관과 변호사가 가끔 식사도 하는 게 자연스럽고 관례였는데 문재인 변호사는 한 번도 같이 식사한 적이 없다"며 "부산 법조계에서 문 변호사는 판사들과 밥 안 먹기로 유명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주택청약을 넣으려는 아내에게 "그런 걸 우리가 왜 넣냐"며 면박을 줘서 아내가 '어디 얼마나 잘 되나 보자'고 이를 갈았다가 영부인이 되었다거나, 형이 민정수석이란 사실이 알려져 승진한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헛물 켜지 말고 하던 대로 해라"고 으름장을 놓았든가[23], 아들인 문준용 씨의 지인들이 준용 씨의 아버지를 백수(...)나 경비원 등으로 알았다는 일화 등 공사구분이 철저한 사람이란 일화가 많다. 유시민 작가는 "괜히 꾀부리지 말고 60 평생 산 대로만 해도 좋은 대통령이 될 것이다"고 평했다.
워낙 본인이 옮다고 믿는 방향으로 일직선인지라 정치인치고 놀라울 정도로 요령이 없는 편. 소위 말하는 꼼수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은 다소 부족하다는 듯하다. 유시민 작가가 보건복지부 장관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시절, 국민연금법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유시민 당시 장관이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을 찾아가 논의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부결의 책임을 묻고 보건복지부 장관인 자신을 경질하면 여론이 일어나 다시 국회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요지의 말을 문재인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어 알아보니, 문재인이 유시민 당시 장관의 숨은 뜻을 까맣게 모르고 그저 장관이 큰 책임감을 느껴 으레 하는 말인 줄 착각하고(...) 노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지 않아 그랬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요령을 메꾸고 남을 초인적인 멘탈의 소유자이다. 가히 한국 정치가에 길이 남을 수준(...) 2011년 현실 정치에 뛰어든 '정치인 문재인'에게는 참 적이 많았다. 정치 입문 당시 보수여당이 과반을 장악한 상태였고, 정계입문 1년 만에 출마한 대통령 선거의 맞상대는 보수의 필승카드로 불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 패배 이후에는 민주당 내부의 비주류 세력의 권력 투쟁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당내 호남계를 비롯한 비주류 세력들은 (사실 유무를 떠나) '친노패권주의' 심판을 외치며 정당하게 선출된 당대표를 끝없이 흔들었고, 보수 종편을 필두로 매스컴 역시 이를 확대 재생산하며 그를 괴롭혔다. 이 상황에서 문재인은 정적들이 온갖 정치공세를 묵묵히 버텨내며 오로지 정면 돌파로 문제를 타개했다. 자신의 재신임을 걸면서 혁신안을 관철했으며,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의 패배 속에서도 인재 영입과 당 체질 개선을 통해 그 누구도 예상 못했던 20대 총선의 대승의 지휘관이 되는 등, 압도적 당내 기반을 다지게 되였다. 사실상 18대 대선 때 그의 이미지는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이상도 미만도 아니었지만[24] 이런 면모를 중앙정치에서 유감없이 보여주었기에 역대급 경선이었던 19대 대선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얻을 수 있었다.

5. 가족 관계


가계에 대한 대통령의 회고를 담은 기사.
  • 아버지: 문용형 (1920년 ~ 1978년)
  • 어머니: 강한옥 (1928년 ~ )
    • 누나: 문재월 (1949년 ~ ) - 주부.
    • 여동생: 문재성 (1955년 ~ ) - 주부.
    • 여동생: 문재실 (1957년 ~ ) - 지금 부산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산다고 한다.
    • 남동생: 문재익 (1959년 ~ ) -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34기 해사수송과학부 졸업 후 STX팬오션에서 선장으로 근무 중 사고가 생긴 뒤 SK로 이직하게 된다. 현재는 도선사 시험 준비 중.
자식교육에 있어서 전형적인 아버지상으로 아들에게는 다소 엄하고 딸에게 약했다고 한다. 김정숙 여사가 “딸에게 뭐든지 다 괜찮다고 하니까 속이 터진다”고 말할 정도. 반면 아들인 문준용씨는 어렸을때는 콩을 안먹고 편식한다고 아버지한테 한대 맞았다고 한다. 동시에 당시 일반적인 아버지상과 달리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진로 결정은 자식의 결정에 전적으로 맡기며 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는 말 대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준용이 어린 시절 좋아하던 비디오 게임도 같이 하고, 초등학교 2~3학년 때 즐겼던 ‘젤다의 전설’ 가이드북과 영상이 다 영어로 돼 있었는데, 그게 마음에 걸리셨던지 영문으로 적힌 수십 페이지의 게임 설명 밑에 한 줄 한 줄 한글로 번역을 해주었다고 한다.*
문민정부 이래로 역대 대통령들의 자매, 남매, 들이 좋게나 나쁘게나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경우가 많은데 문재인 대통령의 친인척은 아들을 제외하고는 대중에 알려진 인물이 많지 않다. 가까운 친인척 중에서 정·재계 유력인사를 한 명도 찾기 힘들 정도로 친가나 외가 할 것 없이 가계가 평범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원칙주의자적 성격이 친인척 관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 대통령의 처남들의 말에 따르면 매형이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으로 일할때 정치에 발 붙일 생각 말라고 전화를 돌렸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이 발을 붙였다.
남동생 문재익 씨에 관련된 일화도 있다. 책 ‘문재인 스토리’에 따르면 참여정부 시절, 문재익 씨가 일하고 있었던 선사에서 배려해서 문재익 씨를 해상직에서 육상직의 고위직으로 승진시켰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재익 선장에게 연락해서 "선사에서 그런다고 그 선사에 도움을 주는 일 따윈 없을 테니, 다시 선장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라고 딱 잘라 말했고, 결국 문재익 씨는 선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문재익 씨 본인에게 직접 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문재익 선장이 만취한 상태에서 형 욕을 하며(…) 그날의 서운함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서야 자기가 모시던 선장이 문재인의 동생이었단 것도 알았다고 한다.*

6. 전, 현직 정치인들과의 관계



6.1. 친문


  자세한 내용은 친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그룹이다. 친노 - 범친노를 넘어 새로운 민주당의 주류로 떠올랐다.
그동안 더민주의 주류 세력은 친노계와 친노와 가까운 '범친노계'라는 그룹들이라는 게 대체적인 주장이었다. 사실, 친문이라 불리는 그룹이 있는 것은 맞지만 새누리당친박계처럼 친목질하는 실체가 뚜렷한 그룹은 아니었다. [25]그런데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친노'에 속하지 않지만 '문재인'을 지지하는 이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친문'이라는 세력에 본격화 되었다. 다만, 문재인을 비롯한 친문계의 의원들은 본인들 스스로의 정책 노선을 추구하고 따르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계파논쟁을 하는 것을 싫어하고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現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 추미애가 있다.

6.2. 노무현




인권변호사 시절
참여정부 시절

[ No.4750609 ] 이미지 등록됨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 검찰 소환 당시

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26]


- 문재인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 에서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나이는 저보다 적은 아주 믿음직한 친구 문재인이를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통령 감이 됩니다!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 후보 아니겠습니까?"
- 노무현 전 대통령, 2002년 부산 선거대책본부 출범식 연설 중[27]

너무나 잘 알려져 있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서로의 인생의 동반자이자 영혼의 파트너였다. 유명한 친노계 전현직 정치인들을 보면 '친노의 좌장'이라거나, '노무현의 적자'라고 불리는 정치인은 여럿 있지만 문재인만큼 노무현과의 인연이 긴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친노 정치인들은 노무현이 정계로 들어온 후에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지만, 문재인은 노무현이 정계로 들어오기 전부터 동료 변호사로 인연을 맺었다. 노무현은 문재인을 자신의 천성에 맞는 인권변호사의 어려운 길로 본격적으로 끌어들인 사람이었다. 문재인의 친구이자 선배, 형으로서 정말 많은 귀감이 되었는데, 노무현은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반드시 수입의 절반을 문재인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사회적 약자들의 소송을 맡아서 어떻게 이들을 도와줄까 같이 고민하면서 변호 능력이 급상승했다고 한다.

'법무법인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한 이후 그의 충실한 참모이자 보좌관 역할을 맡아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 캠프의 부산 지역 선거대책본부장,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청와대 비서실에 들어가 시민사회수석, 청와대 민정수석[28], 비서실장을 역임했으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가 일어났을 땐 변호인단을 꾸려 위기 돌파에 기여했다. 여담이지만 이때 헌법재판소에서 맞붙었던 사람이 바로 김기춘이었다고.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검찰로부터 표적 수사를 받고 있을 땐 그의 변호를 맡기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병원에서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고인의 사망 소식을 전하였으며, 발표 영상 일부 화장 후 노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건호 씨와 함께 고인의 뼈를 빻는 일도 하는 등 정치적 상주 역할을 하였다. 노 전 대통령 사후에 설립된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현재도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있어서 문재인이라는 사람은 가장 필요한 순간마다 함께 했던 동료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력 정치인이 잘 나갈 때는 그의 곁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편을 들어주지만, 그의 인기가 떨어지고 정치적으로 쇠락하기 시작하면 손바닥 뒤집듯이 단호히 선을 긋고 떠나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나라 정치 세계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위의 노무현의 연설에서 볼 수 있듯이, 노무현에게 문재인은 그야말로 신뢰의 끝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문재인이 노무현 당시 후보의 부산 지역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었고, 이 연설을 부산에서 했던 것을 미루어 보면 그냥 립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권을 잡은 후에도 문재인을 계속 중용하였고, 퇴임 이후에도 계속 그를 곁에 두었다. 이것을 보면 고인이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인 셈이다. 사실 노무현은 성품이 직설적이라서, 립서비스와는 상극이었다. 이만큼 노무현이 직설적으로 칭찬해 준 사람은 문재인을 제외하고는 단 한 사람, 유시민뿐이다. 대통령의 친구가 누구인지 어떤지는 전혀 대통령의 자질과는 관계가 없지만, 말의 논지를 제대로 들여다 봐야 한다. 노무현이 이 말을 꺼낸 것은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듯이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으므로 궁극적으로 "나 노무현은 이런 훌륭한 친구를 두고 있기에 나 역시도 훌륭한 사람이며 나는 대통령 감이 된다"는 뜻이다. 즉, (친구 문재인은 물론) 본인이 능력 있는 인물이라는 걸 간접적으로 어필하는 내용이란 뜻으로, 이 영상에서 노무현과 문재인의 긴밀한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노무현은 적어도 내가 뼛골까지 신뢰하고 나를 뼛골까지 신뢰하는 깊은 우정을 가진 사람이 적어도 한 명 이상 존재한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효과도 있으므로, 사람의 마음은 얻기 상당히 힘든데 노무현은 문재인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하여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후 보여주었던 문재인의 의연한 모습에서 이 사람이 대선 후보로 적격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한 후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일처리를 잘해서[29] 호평을 받았는데, 그건 공식적인 자리에서 보여준 모습이고 집에 들어가자 마자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초인적으로 눌러 참고 있던 슬픔이 일순간에 터진 것. 어찌나 심했는지,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저러다 남편이 크게 상하지 않을까 걱정돼서 119를 불렀다고 한다.
'문재인의 운명'의 도입부는 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봉하마을에서부터 소식을 듣는 장면에 할애하고 있는데, 책 내용을 보면 문재인 변호사는 2009년 5월 23일 새벽에 김경수 당시 비서관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이 엄중한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을 급히 찾아갔지만, 이미 노 전 대통령은 호흡기만 떼면 바로 숨을 거둘, 사실상 사망 상태였다고 한다.
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그토록 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의욕적으로 집필 중이던 책도 손에서 놔버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마치 멀리 떠날 사람처럼 인사를 하는 등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문 변호사 본인은 그런 징조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였고, 무엇보다도 노 전 대통령이 언제부터 유서를 머릿속에서 쓰기 시작한 걸까, 그것이 제일 견디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책에 토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18대 대선 회고록인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자신은 저렇게 노 전 대통령을 보내주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선택으로 긴 시간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었던 문재인을 정치인 문재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저서 '사람이 먼저다'에 따르면 "시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정치의 영역도 무궁무진하게 많이 있는데, 꼭 직업 정치만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평생의 친구이자 도반(道伴)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민주정부 10년간 이뤄진 성과와 가치들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고 그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본인이 2017년 19대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많이 생각났을 것이다. 실제로 그래서 눈물을 보였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누가 절친 아니랄까봐 노무현, 문재인 두 사람 모두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두 사람 슬하의 자녀들이 모두 오빠-여동생 사이라는 점까지 일치한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녀인 노건호 씨와 노정연 씨의 경우 각각 1973년, 1975년 생으로 노건호 씨가 오빠이고 문재인 대통령의 자녀인 아들 문준용과 딸 문다혜 역시 각각 1982년, 1983년 생으로 문준용이 오빠이다.

6.3. 강삼재



경희대 총학생회장 선거 이후 촬영한 사진. 뒷줄 오른쪽 세번째 안경낀 사람이 강삼재, 밑줄 왼쪽 세번째 웃는 사람이 문재인.
학창시절 민주화 운동을 같이 이끌었던 동지
상도동계김영삼 前 대통령의 직계 후계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강삼재 前 의원과 대학교 동기이자 친구다. 그 덕분인지 김영삼 전 대통령과도 안면을 트게 되었으며 그가 별세한 이후 장례식에도 참석하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사이가 틀어져 있었지만 문재인은 인정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덕분에 문재인의 지지층의 폭이 더욱 넓어지는 이점을 얻게 되었다. 대선때는 김덕룡을 비롯한 상도동계의 주요 인사들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고려대학교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도 문재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였다.[30] 여담으로 제17대 대선 당시 대부분의 상도동계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부터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으나,[31] 강삼재는 이명박과 사이도 나쁜 편에 가까웠고, 이명박이 아닌 이회창을 지지했다.

6.4. 김무성




공사 관계는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관계
자유한국당김무성 의원과 동문이다. 생애란에도 적혀 있지만 김무성과 경남중학교 선후배 지간이며, 문재인이 후배다.[32] 그래서 2015년 2월 경남중학교 동문회에서 만나기도. 서로 정치를 떠나서 개인적인 면에선 케미가 잘 맞는 듯하다. 심지어 정책 문제로 서로 으르렁댄 다음 날 총동문회에서 만나 서로 간지럽히며 장난치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이때 둘 다 당시 여당제1야당의 수장이었는데 재미있게도 모두 자신과 반목해온 계파의 견제와 발목 잡기 때문에 험난한 당 대표 시절을 보내야 했다. 둘이 공식적으로는 정적 관계에 놓여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카메라가 많지 않은 자리에서는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싸늘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았던 건 서로의 처지에 너도 고생이 많구나하는 동병상련을 느껴서일 지도(...)
그 밖에도 문재인은 김무성의 차녀 김현경의 결혼식에도 깜짝 등장해 덕담을 전하기도 했다. 문재인과 김무성은 서로 반대 진영에 있었고, 김무성은 박근혜 대선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이었던 2012년 18대 대선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을 꺼내들어 문재인을 공격했던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사적으로는 상당히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어 일가 행사 때 김무성이 같은 당 사람들은 공과 사를 따로 하여 초청을 안 할 때도 문재인은 사적으로 연락해서 초대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6.5. 이명박



2009년 5월 29일에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백원우 당시 통합민주당 의원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어디서 분향을 해! 이명박!" "정치 보복으로 살인에 이른 정치 살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죄하십시오!"라고 외치다가 경호원들에게 저지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 상주 역할을 맡고 있었던 문재인 당시 변호사 등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했는데 그때 찍힌 사진이다.#
훗날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 자신도 백원우 의원과 같은 심정이었으나, 이명박은 문상객이었으니 상주로서 그에 맞는 예의를 지킨 것이라고 말했다.[33]

불구대천의 원수, 9년 만에 역전된 와신상담의 관계.
문재인 대통령과 전전임 대통령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관계는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한 문장으로 요약해 표현하자면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며, 어쩌면 문 대통령 입장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더 지독한 악연으로 엮인 정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과 박연차 게이트 책임 유무에 대해서는 다소 평가가 엇갈리지만,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노무현 전 대통령 측을 대상으로 했던 수사는 비정상적인 수준에 가까웠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하는 편이다. 털다 털다 못해 아예 노 전 대통령의 단골 삼계탕집에까지 세무조사가 들어갔을 정도라고 하니.(...)
오죽했으면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에서조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는데,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던 박희태 당시 한나라당 대표조차 "이런 수사는 처음 본다."검찰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34] 심지어, 정적으로 분류되는 홍준표마저 "구속을 하려고 했다면 신속히 결정해야지, 전직 대통령 수사를 하면서 모욕만 주었다."고 검찰을 질타했다. 또한 당시에는 친이계에 속했던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검찰노무현을 모욕준 것은 문제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망신주기식 수사는 자존심이 강했던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로서 함께 대검찰청에 들어갔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인 '문재인의 운명'에, 이명박 정부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의 배후에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있을 거라 단정짓고 이에 대한 정치 보복에 나선 것 같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실책과 참여정부와는 비교되는 권위주의적 행보에 대한 반감으로 인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났고, 이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안희정, 한명숙, 이광재, 김두관친노 진영이 부활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범친노계로 분류되는 박원순 당시 변호사도 2011년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누르고 서울시장에 당선되었으며,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친노계의 좌장으로 불리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전 총리는 각각 부산 사상구, 세종시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계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정세균 당시 의원 또한 이명박 정부 심판이란 구호를 내세우며 전북의 지역구에서 서울 종로구로 지역구를 옮겨 당선되면서 정계의 중진으로 입지가 급상승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해에 있었던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압도적으로 승리했고, 본선에서 48.0%의 득표율을 올리며 석패한다.[35]
그래서 정치권의 호사가들은 2012년 박근혜새누리당공천 독재권을 거머쥔 당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을 때 친이계가 이렇다 할 반항을 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박근혜19대 총선 시즌에 정적이었던 친이계를 공천 학살했으면서 대권을 잡은 뒤에는 친이계의 심장인 이명박에게 이렇다 할 정치 보복을 하지 않았던 점을 근거로 들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민주통합당이 다수당이 되느니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이 주류가 돼더라도 새누리당이 다수당이 되는 게 낫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느니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원세훈 등의 일부 인사들이[36] 박근혜 측과 타협해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등을 일으켰을 거라고 추측하는 의견이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당시 원세훈을 위시한 국정원이 실제로 대선 때 박근혜 측을 위하여 뛴 정황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1심 판결 이후로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일어나 국회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전환되었고 그 덕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보수 진영 전체가 몰락에 가까운 치명타를 입는 바람에 노무현 정부가 끝난 지 9년 만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이젠 대통령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일까, 2017년 19대 대선 투표날 이명박 부부의 표정을 보면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권을 잡은 뒤 박근혜정부가 제대로 밝혀내지 않았던 이명박 정부 시절의 적폐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적폐청산을 위해 이명박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를 지시하는 등 이명박 측을 전방위적으로 조금씩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측근이었던 원세훈에 대해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애초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개 평사원으로 현대건설에 입사해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신화'[37]와, 기업인 출신 정치인으로서 서울시장 시절에 보여주었던 성과,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상도동계라는 지지세력과 反노무현 정서에 힘입어 대선에서 압승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 하의 검찰 수사로 인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특급 사건이 일어났고 또 본인의 실정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가 더해지면서 노무현에 대한 향수, 그리고 친노 진영의 부활이라는 역효과만 불러오고 말았다. 그리고 정권을 잡은 5년 동안 이렇다 할 의혹거리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더라도 이렇게 집권 초반부터 공격 거리를 만들어주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요, 인과응보인 셈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명박의 최대 실책은 대통령 선거 당선 및 집권 당시의 지지율을 각종 논란거리로[38] 다 깎아먹어서[39] 결국 당내 정적이자 보수 진영의 또다른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에게 당권을 빼앗겨 친이계의 집권 연장을 불가능에 가깝게 만든 것이 아닐까.[40]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흘러가면 흘러갈 수록 더더욱 들끓었던 反이명박 정서, 6.2 지방선거 패배,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한나라당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그리고 홍준표 대표 체제를 만들어낸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인하여 친이계 쪽에선 다음 대선에서 먹힐 만한 대선 주자가 없는 상황이라 친노 쪽에 정권을 넘기지 않으려면 싫든 좋든 당시 보수 진영 최고의 차기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에게 대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지만[41]박근혜그런 결말을 맞이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만약 박근혜가 나라를 그런 대로 잘 이끌었다면 계속해서 보수 정권을 유지시켜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설령 정권 교체까지는 못 막았더라도 최소한 조기 대선까지는 막았을지도 모른다.[42][43] 그러나 박근혜는 떡잎부터 글러먹은 폐급이었고, 그 결과물인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스캔들이 드러나면서 본인은 물론이고 보수 진영 전체와 동귀어진하는 역대급 팀킬을 저질러 버렸다. 이후에도 친이계가 어느정도 포함돼 있는 국민의당안철수 측에서 각종 논란거리를 만들며 보수 표심을 흡수하지 못했고, 당시 보수 진영 대선 후보 여론조사 1위였고 역시 친이계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반기문 측에서도 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각종 논란거리를 만들다가 결국 반 전 총장 본인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며 대선 레이스를 그만두었다.
거기다가 친이계가 포함된 비박계가 만든 바른정당과 친이계가 주축이 되어 창당한 늘푸른한국당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이렇게 친이계가 포함된 비박 보수계가 문재인과 1:1 구도를 만드는 데 실패한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후보 측에서는 촛불민심의 적통이라는 아이콘을 흡수해 대권으로 정석적으로 나아가면서, 마침내 19대 대선에서 압승해 정권을 되찾아왔다.[44][45]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정부가 사실상 덮고 넘어갔던 것으로 추측되는 이명박 정부범죄 의혹들이 하나 둘 세상 빛을 보기 시작했다.[46] 국가가 나서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충분히 의심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단서과 정황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 수사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특히 국정원중앙정보부 시절부터 그 막강한 정보력과 대공 수사권을 애꿎은 곳에 휘둘러 온 적이 많아서 손을 봐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터였다.
무엇보다도, 2012년에 행해졌던 국정원 대선 개입의 직접적 피해자가 지금 대한민국최고 지도자가 되었고, 그 당시 수사 최전선에 있다가 정부에게 찍혀서 좌천되었던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며 수사를 이끌고 있다. 게다가 자신의 최측근인 원세훈이 쫓아낸 당시 국정원 3차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초대 국정원장으로 임명된 후 국정원 적폐청산 TF를 꾸려 윤석열이 이끄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함께 지난 보수 정부 시절 국정원이 일으킨 범죄들들을 하나하나 재조사하고 있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이를 정치 보복이라고 규정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으며[47]당연히 친이계가 상당수 포함돼 있는 바른정당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도 반발하고 있다. 보수 야권에서는 국정원의 폭주 or 과잉 충성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며 모든 정권의 행동을 재조사 해야 한다는 논리로 반발하고 있다.
물론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 같이 민주화 운동의 대부가 민주 사회를 배신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으며 참여정부에도 개인의 일탈이라는 결론이 났지만 이명박 당시 후보 사찰로 직원이 징역을 선고 받기도 했다. 썰전의 보수 패널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던 박형준이 이를 지적하자 유시민썩어들어가는 표정으로 일부 수긍했다.
하지만 유시민이 반박한 것처럼 당시에 이런 국정원의 이탈은 언론을 통해 드러났으며 이미 재판 과정을 걸쳐 처벌을 받았다. 현재 재판 진행 중인 원세훈 사건과 1:1 대응과 옳지 못하며 물증 없이 우리만 더럽지는 않았을 거라는 주장은 친이계의 희망에 가깝다. 그리고 (이 역시 물증은 없으나) 민주당 지지층은 지난 보수 정부 9년 동안 국정원이 광범위하게 여론을 조작해 민주당, 문재인 죽이기에 나섰는데 이 둘을 훅 보낼 수 있는 내부적인 자료가 있었다면 에 사용하지 않았겠냐며 반박하고 있다.
또한 이런식으로 위협한 지도 오래 되었으나, 김관진 전 장관이 구속이 되었어도, MB측으로부터 어떠한 폭로도 나온 게 없다. 내용을 떠나 문건 유출 자체가 논란이 됐을 게 뻔한 NLL 대화록 사건을 보면 문 대통령 지지층의 반박이 어느 정도 타당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역시나 반격의 카드로 꺼낸 것이 박연차 게이트다.[48]
허나 원세훈의 예에서 보듯이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부정한 방법으로 국정을 이끌었고, 후일을 도모 했다는 의심을 가능케 하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데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국정원과 군이 정계를 어지럽히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정황이 계속 걸려들고 있는 만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사정을 단순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정치 보복이라고 평가 절하 하는 건 설득력이 부족한 주장으로 들리지 않을까.
이제는 너무나도 많은 정황 및 증거가 드러났으며 판이 점점 커지고 있어 더 이상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수사를 중단 혹은 어영부영 마무리 지었다가는 정권 성립의 명분과 지지자의 기대도 사라질 판이다.[49] 여론조사 등을 살펴보면 이명박도 수사해야 한다는 반응이 기본 60~70%를 넘길 만큼 이번 수사에 대한 여론의 호응도 좋은 편이다. # [50]
국정원 댓글 사건BBK 주가조작 사건만 있다면 정치 보복이라는 주장도 어느정도 타당하겠으나,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은 이 두 사건이랑 성격이 다르다. 본 사건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하여 이헌수 전 실장이 박근혜한테 돈을 상납했다는 진술로 부터 시작한 사건이다. 처음에는 박근혜들 중심으로 수사가 진행됐지만,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명박에게도 그 칼날이 닿은 상황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만난 문재인과 이명박. 서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어떤 때에는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기는 하는 모양. 문재인이 어금니를 깨무는 것 같다면 그것은 기분탓이다. 이인임: 정치하는 사람의 칼은 칼집이 아니라 웃음 속에 숨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자행된 국정원과 군의 정치 개입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계속 성과를 내어 (위의 각주에서도 이미 설명되어 있듯) 이명박 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지냈고, 박근혜정부에서도 유임돼 국방장관과 국가안보실장을 지냈던 김관진이 11월 8일 검찰에 소환돼 "이명박의 지시를 받았다"고 결국 시인한 뒤 구속되기에 이르렀으나 구속부적심 심사로 불구속으로 석방된 상태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명박 측 입장으로 보면 상당히 떨리는 상황인 셈이다. 그래서 그간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주변인들을 통해서만 반발 입장을 내비쳤던 이명박이 11월 12일 두바이로 출국하면서[51] 직접 문재인 정부적폐청산 정책이 개혁인지, 정치 보복인지 의심된다면서 경제 위기와 안보 불안을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그런데 발언을 하면서 본인 스스로도 상당한 초조함을 느끼는 듯한 모습을 몇 번 내비쳤고 "김관진의 진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기자에게 "상식에 벗어나는 질문하지 말라"며 발끈하는 등 과거의 다소 여유 있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나중에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때문에 측근들이 구속당하고[52] 수사망이 조여오자, 본인이 직접 나서서 기자회견까지하는 초강수를 두었다.[53]
또한 "노무현 정부에 대한 5년치 자료를 꺼낼 수도 있다"는 식의 반격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 및 문 대통령 지지층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몰릴 때까지 몰렸다는 반증이다"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격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위력 있는 자료를 손에 쥐고 있었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에 터뜨렸어야 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진보 진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친노계의 수장이었고, 정계에서 무시하기 힘든 거물이었다. 초선으로 국회 입성하자마자 당대표에 올랐을 정도로 당내에 탄탄한 지지 세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보수 정당에서는 반드시 쓰려뜨려야 할 상대였다. 국회 입성후 언론에 노출되는 양도 많았으며, 충분히 정치 생명에 타격을 줄 시간은 많았을 것이다. 설사 지금 파급력이 높은 자료를 꺼낸다고 해도, 이제는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이라는 덫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54]
자신들도 참여정부에 관한 비밀을 쥐고 있다는 말을 꺼낸 지도 몇 달이 지나는 동안 이명박 측은 카드 한 장 보여주지 않고 있고, 검찰의 수사는 점점 이명박을 향하고 있으며, 이제는 국정원 특활비 사건이라는 확실한 건수까지 확보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개국공신이었지만 이상득과의 문제로 버림 받았던 정두언 전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 간의 비사를 방송 등에 흘리며 이명박 측에게 "소총도 없으면서 미사일을 든 정부에게 맞설 수 있을 것 같냐"고 조롱하기도. 현실은 핵폭탄을 들고 마구잡이로 패고 있지만
고로 언론에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8년 전 자기 전임자가 그랬듯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날이 머지 않았다고 예측하며[55] '초읽기'라는 단어를 기사에 넣기 시작했다. 팟캐스트에서 인기가 많은 시사평론가 이동형은 본인이 진행하는 시사 팟캐스트 방송 '청정구역'의 11월 14일자 방송에서 "(전직 대통령은 워낙 거물이므로) 검찰이 전직 대통령을 부를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뿐이다. 따라서 검찰이 이명박을 부른다면 모든 게 셋팅되었다는 뜻일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검찰 수사팀은 사실상 이명박의 턱밑에까지 다다랐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과 관련하여 한 측근의 배신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이명박도 직접 기자회견을 하면서까지 정치보복을 멈추라는 메세지를 공개적으로 보냈고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분노'라는 표현까지 곁들여가며 이명박 측의 여론전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검찰도 이명박 측의 여론전에 아랑곳하지 않고 며칠 후 다스 전현직 임직원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으며, 이명박의 친형 이상득의 자택까지 압수수색을 하면서 더욱 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칼을 가까이 들이대고 있다. 그 이후에도 이상득의 검찰 소환, 영포빌딩의 지하 2층 창고를 압수수색[56]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마침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였으며 2018년 2월 5일에는 국정원 특활비 뇌물 사건의 주범이라며 공개 지목했다.
그 와중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이명박을 올림픽 개/폐막식에 공식 초청하였다. 그것도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직접 방문해서 초청장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이명박도 이를 수락해서 개/폐막식에 공식 참석했다. 일단 표면적인 이유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의 초청'이라는 원론적인 사유이다. 생존한 전직 대통령 중 전두환, 노태우는 이미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박탈한 상태고 박근혜는 구속 상태이다. 피의자 신분이기는 해도 활동이 자유로운 전직 대통령은 이명박이 유일한 상태다. 인터넷 등지에서는 '감옥에 가기 전에 좋은 구경거리나 좀 보고 들어가라는 뜻이 아니겠냐'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혹은 약간 더 진지한 주장으로 '최소한의 전직 대통령 대접은 해주겠다는 원칙주의적 행동을 통해 오히려 이명박 수사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든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유치자인 전 대통령은 초청하는 것이 당연한거 아닌가?
그리고 2018년 3월 6일, 15시에 검찰이 이명박을 3월 14일 오전 9시 30분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으로 소환한다고 밝히면서, 결국 이명박은 포토라인에 서게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서게 된 지 정확히 8년 10개월 14일 만의 일이다.
닷새 후인 2018년 3월 19일, 검찰은 결국 이명박의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6.6. 정세균


[ No.4750610 ] 이미지 등록됨

노무현의 최측근과 범친노계 좌장이었던 둘은 대통령과 국회의장이라는 위치에 올라서 재회하게 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친노계의 좌장 역할을 했고, 범친노계의 좌장인 정세균은 19대 국회에서 종로구로 지역구를 이전해 당선돼면서 정계 및 친노계의 중진으로 자리잡게 됐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 당시에 사상구의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둘은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맞붙었는데, 문재인이 1위, 정세균이 4위로 탈락했다.(...)
이후 20대 국회에서도 정세균은 종로구 국회의원으로 재선에 당선돼면서 그 동안의 넓은 인망을 바탕으로 20대 상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하게됐고, 친노계의 좌장이었던 문재인은 2017년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돼면서, 2017년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장이라는 신분으로 마주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정세균은 문재인에게 웬 책을 읽어보라며 선물로 줬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친노계의 일원인 정세균도 노무현 前 대통령의 8주기에 봉하마을로 초청받았는데, 정세균 또한 그 초청에 응해, 앞으로 노 대통령이 생전에 그리던 사람사는 세상을 저희가 만들어 가겠다고 연설했다.

6.7. 박원순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법연수원 시절 동기였고 깊은 친분이 있다. 나이는 노안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안 보이지만 문 대통령보다 박 시장이 3살 아래다. 그래서 박원순은 문재인을 형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그리고, 박원순 시장 본인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친노 진영 정치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박원순 시장 자신도 친노를 자처하기도 했다. 거기다가 박원순 시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한때 원래 친분이 있는 사이였지만, 박 시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벌였던 적대 세력 사찰 등을 문제삼아 반MB 기치를 내걸고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반대 진영에 서게 되었다.
박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정계에 화려하게 입문했을 때 친노 진영 인사들도 박원순 시장에게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문 대통령도 박 시장에게 호의적이기도 하고. 상호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기도 하면서 서로를 비판할 때도 있었지만, 둘의 관계는 돈독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박원순은 198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우조선 노동자들을 변호하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감옥살이했던 시절에 직접 노무현변호인을 맡아 도와줬던 인연도 있었다.#
둘의 관계가 가장 삐걱거렸을 때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시즌으로, 이때 촛불 혁명으로 조기 대선이 현실화 되는 와중에 국민적 개혁 요구와 박원순 시장의 캐릭터가 영 어울리지 않아 유의미한 지지율을 가지지 못하자 박 시장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 쪽을 '청산돼야 할 기득권 세력'이라고 공격한다거나, 호남에 내려가 '참여정부가 호남을 홀대했다'고 주장한다거나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뽑을 대선 후보 경선의 룰을 정하는 일에도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의 네거티브 전략을 선택하면서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지지층 사이에서는 박 시장의 이미지가 크게 나빠졌다. 결국 네거티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역풍만 맞고 대선 출마를 중도에 포기했다.
이후 박원순 시장은 언론이나 방송에 등장해서 왜 그랬냐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이젠 좀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선선히 자신의 실책이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포용력을 칭찬하면서 역시 맏형은 맏형이다 하고 추켜세우는 모습을 보여줘 문재인 지지자들 역시 다시 좋게 보고 있다.경선에서 본격적으로 치고받고 싸운 이재명 시장이나 안희정 지사는 아직 이미지 회복 안 됐지만.
한편,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 뒤 청와대에 박원순 시장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여러 명 중용됐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던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손을 잡았으니 잠시 논외로 치더라도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57],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 모두 박 시장과 함께 일한 경력이 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문재인 & 박원순 공동 정부냐는 내용의 짤막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 기사
물론 박 시장과 함께 일했다고 모두 '박원순계'라는 그룹으로 묶어 부를 수는 없다. 서울시는 우리나라의 수도인 만큼 시장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무척 많다. 서울시의 시정을 지휘하는 박원순 시장 처지에선 비록 자기 사람이 아니더라도 쓸 만한 인재라고 판단되는 사람을 데려다 쓸 수 있고, 이는 문재인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에서 국정 경험을 쌓았다고 해도 민주당계 정당이 9년간 국정운영 경험이 없는데, 여기서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지자체인 서울특별시에서의 시정 경험을 한 인사들은 소중한 인적 자원이다. 그리고 서울시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고려하면 정부도 서울시와의 공조를 잘 유지해 나가는 걸 소홀히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원활하게 풀기 위해서 이러한 인사를 단행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문재인은 19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박원순을 아세안 특사로 임명했으며 이에 박원순은 특사 자격으로 동남아를 순방하면서 각국의 정상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박원순 시장이 퇴임한 이후부터 문재인 정부의 내각으로 입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간간이 나왔다.

6.8. 유시민




썰전 출연 당시 대기실에서의 문재인과 유시민
썰전 200회 인터뷰 중
의외로 접점이 적지만, 결코 남남일 수 없는 미묘한 관계
친노의 양대 적통. 그리고 그들이 지지하던 노무현이 생전에 극찬한 단 둘뿐인 사람
유시민 작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학연, 지연, 경력 등 모든 면에서 접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정치적 지지 하나만으로 함께 한 인사이자 대표적인 친노계 정치인들 중 하나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하면 유 작가는 친노계의 적통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노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였다. 만약 유시민 작가가 2013년 정계를 떠나지 않고 계속 정치 일선에 남아 있었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가장 끈끈하게 협력하면서도 '친노 적자'의 정통성을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로 만났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외로 두 사람이 정계에서 함께 활동하거나, 반대로 라이벌로서 충돌한 사례는 거의 없다. 두 사람의 공식적인 접점은 참여정부 뿐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장,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으로 있었고 유시민 작가는 여당 의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기 전부터 동료로 함께 일했던 사람이고 유시민 작가는 노 전 대통령이 정계로 발을 들여놓고 한참 뒤에 인연을 맺은 사람이니 둘의 접점이 참여정부인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에는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양산 지역으로 내려가 한동안 본업인 변호사일을 하면서 정치권과 거리를 두면서 지내다, 2012년이 돼서야 제19대 총선 출마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정계에 입문했고, 유시민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도 계속 정계에서 활동하며 국민참여당-통합진보당-정의당을 거치다가 2013년에 정계에서 공식 은퇴하였다. 참여정부를 빼면 이 둘이 정계에서 무엇인가 관계를 맺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결코 남남으로 보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위에서 언급한 친노라는 하나의 틀이자 접점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시민 본인이 표현(썰전 218회)한 것처럼 문재인의 대통령 취임은 '노무현의 정치적 복권'이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친노계 적통인 유시민과 문재인이 전혀 접촉도 하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문재인의 오른팔이라 불렸던 양정철 전 비서관의 말에 따르면, 문재인이 정계에 입문하기 전 "유시민 같은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면 나는 밀고 싶다."고 말했고, 되려 부침을 겪고 있던 유시민은 문재인의 정계 입문을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양정철은 유시민이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에 대한 책임도 있는 사람이라며 적절한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민들, 특히 친노-친문 지지자들은 두 사람의 공식적인 협력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두 사람의 지지층도 거의 대부분이 겹치는 편이다. 문재인이 야권의 유력 인사로 등극하고 장외 인사들을 대규모로 영입하자 곧바로 유시민의 정계 복귀 떡밥이 나돌기 시작하고, 문재인 정부의 수립 이후 국무총리나 장관 등 내각의 주요 인사에 유시민의 이름이 계속해서 언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명 '(유시민을)산 채로 잡아와라'라는 도 이 때 생겼다. 유시민을 강제로 납치(?)해서라도 문재인과 함께 일하게 하고 싶다는 지지자들의 기대감을 표현한 것이다. 지지자 중에서는 유시민의 정계 복귀를 반대하거나 그 가능성을 낮게 본 여론도 적지 않았지만, 이 역시 유시민의 자유로운 장외 활동을 존중해주는 것이 유시민과 문재인 모두에게 이롭다는 의견에 가까웠다. 즉, '유시민이 정계에 복귀하든 장외에서 활동하든 간에,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두 사람은 반드시 협력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지자들의 중론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썰전에 문재인이 출연했을 당시 위에 나온 사진처럼 '유시민 작가가 언젠가는 정계에 돌아오시지 않을까 합니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 자체는 단순한 덕담 수준에 가까웠지만 이조차도 문재인과 유시민의 관계를 두고 굉장한 관심을 일으켰다. 유시민이 반 농담으로 '이건 덕담이 아니라 악담이죠!'라고 비판(?)한건 덤. 2017년 12월에 유시민이 초등학교의 일부 빈 교실을 아동 육아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을 올리자 곧바로 상당한 규모의 지지 서명이 모인 것은 물론이고 '제안자를 당장 데려다가 책임자로 임명해서 직접 시행하게 하라'라는 내용의 댓글이 쏟아진 것 또한 이러한 기대감과 관심을 나타내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러한 관심 때문에 급기야 유시민은 '저는 공무원이 될 생각이 없다'(김어준의 파파 이스 144회)라고 말하며 문재인 정부의 내각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힐 정도였다. 물론 정계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했을 뿐이지, 유시민은 방송 및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면서 자칭 '진보 어용 지식인'이라는 용어까지 만들며 문재인 정부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위치에 서 있다. 영향력 자체도 장외 인사 중에서는 손에 꼽힐 정도로 커졌다.

6.9. 박근혜



문재인이 정계에 입문한 그 순간부터 넘어서야 했던, 그리고 끝내 넘어선 숙적[58]
문재인이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때는 2012년 4월에 치러진 19대 총선이었다. 당시 그는 부산광역시 사상구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는데 그 때부터 이미 민주통합당의 유력한 대권 잠룡으로 거론되었다. 왜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원한 친구라는 그 이미지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다 노무현 탄핵 심판 당시에도 변호인단을 꾸려서 승소를 이끌어[59]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 복귀를 이끌어냈고 2차례의 민정수석비서관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역임한 풍부한 경험 덕에 청와대 실무에 밝다는 점에서 또한 대권 잠룡으로 거론된 것이다. 특히나 이명박 정부의 잇단 실정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실상 이명박으로부터 정치 보복성 사법살인을 당했다는 인식이 친노 성향의 국민들 전반에 팽배해 있었기에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한 문재인이 더욱더 대권 잠룡으로 거론되었던 것이다.[60]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친이계 나경원이 박원순에게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패배하고, 디도스 의혹이 불면서 당권에 근접해있던 친이계 및 홍준표 대표가 당원들의 반발에 의해 사퇴하게 되고, 친이계의 실세중 한 명[61]이상득이 부패 혐의로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친이계의 세력이 급속도로 약해지게 되며, 반대급부로 친박계가 득세하였다. 2011년 말에 박근혜가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했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점차 당 내 계파 싸움에서 친박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친이계가 몰락하고 친박계가 득세하면서 사실상 여당에서는 박근혜가 유력한 대권 후보로 낙점된 때였다.
그리고 2012년 이 해는 바로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는 해였다. 그 때문에 2012년 4월에 치러진 19대 총선은 사실상 12월에 치러질 18대 대선의 예비전 성격을 지니게 되었고 정권 교체 실현 여부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선거였다. 그렇기에 19대 총선은 사실상 여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인 박근혜와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였던 문재인의 맞대결로 굳어졌다. 당시 말기에 접어든 이명박 정부가 급속도로 레임덕을 맞았다고 분석됐기에 문재인을 위시로 한 야권의 승리로 전망되었으나 선거 막판에 터진 김용민의 막말 파문과 정통민주당고춧가루 공세 등의 악재가 겹치며 결국 새누리당의 단독 과반 확보로 결과가 나왔고 19대 총선은 사실상 박근혜의 승리로 돌아갔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두 번째 진검승부는 바로 그 해 12월에 치러진 18대 대선이었다. 정계 입문 14년차의 오랜 정치인이었던 박근혜와 정계 입문 8개월차의 신흥 정치인이었던 문재인의 맞대결이 된 것이다. 당시 대선에 출마한 7명의 후보 중 원내 정당 소속의 후보는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단 3명이었던데다 이정희마저 대선 직전에 사퇴하였고 박근혜, 문재인과 함께 제3세력으로 기대되었던 안철수 또한 사퇴하면서 결국 이 선거는 사실상 박근혜 vs 문재인의 맞대결로 압축되었다.
문재인은 대선후보였지만 정계에 입문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신참이었고 박근혜는 이미 정치 경력만 15년에 달하는 기성 정치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출구 조사 결과 50.1:48.9로 초박빙의 접전을 이어갔다. 그러나 역시 정치 경력 1년도 안 된 정치 신인이 상대하기엔 경력 15년차 기성 정치인의 벽은 높았고 실제 개표 결과 51.6:48.0으로 출구 조사 때보다 표 차가 더 벌어져 108만496표 차이로 패배했다. 이렇게 두 번째 맞대결이었던 18대 대선 또한 박근혜의 승리로 돌아갔다.[62] 그래도 정치경력으로는 햇병아리라 할 수 있던 문재인이 대선후보로 거물급인 박근혜에 맞서 박빙의 결과를 낸 것만으로도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됐다.
대선 이후 박근혜는 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문재인은 일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남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문재인이 다음 대권에 도전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져갔다.[63] 그러나 박근혜정부가 역대 최악으로 삽질을 계속하였고 그에 반사이익으로 새로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대표로 취임한 문재인에게 다시금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5년 연말에 당 내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안철수와의 갈등을 풀지 못했고 이는 결국 제 1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으로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때문에 20대 총선에서 야권이 대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2016년 초에 폭풍 같은 인재 영입과 당 내 쇄신을 단행하며 더불어민주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희망을 이어갔다. 잇단 정부의 실정으로 20대 총선은 사실상 박근혜가 주문한 국회 심판론과 야당이 주문한 정권 심판론의 싸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을 확보해 원내 제1당의 자리에 오르면서[64] 3번째 맞대결 만에 문재인이 박근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고 이 선거의 승리는 그가 다시금 대권 잠룡으로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스캔들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그 반사이익을 상대정당 소속이자 과거 대선에서 박근혜와 진검승부를 했던 문재인이 흡수해 박근혜 탄핵 이후 그가 19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게 되었다.

6.10. 안철수



이랬던 두 사람이

이렇게 됐다.
어제의 동지에서 오늘의 정적으로 변했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야권 후보로서 둘이 맞붙었을 때부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강력한 여권 후보였던 박근혜를 상대로 누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갈 것인가를 두고 기 싸움이 팽팽했었다. 결국, 안철수가 중도 사퇴하면서 야권 단일 후보로 문재인이 결정됐다. 그러나 대선에서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51.6:48로 패했고, 이때부터 20대 총선 이전까지 문재인은 대선 패배 책임론과 친노 패권주의 프레임에 갇혀 하락세를 이어갔다.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이 소속돼 있던 민주당안철수의 첫 번째 신당이었던 새정치연합이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되면서 둘은 한솥밥을 먹게 됐다. 그러나 이때 김한길과 함께 새정련을 이끌었던 안철수세월호 참사 정국 아래에서 치러진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을 상대로 무승부를 냈고, 이어서 치러진 7.30 재보선에서는 손학규, 김두관 등 제법 거물급 인사들까지 출마시켰지만 새누리가 내세운 '지역 일꾼론'에 밀리고 새정련 지도부가 주도한 전략공천이 실패하면서 새누리에게 무려 11:4로 완패하고 말았다. 안철수의 이미지도 이때를 기점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안철수가 가라앉자 반대로 문재인의 존재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 동지인지 적인지 모를 애매한 관계를 이어왔는데, 둘 다 당시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서 당내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견제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동지보단 적과의 동침에 더 가까웠다고 봐야할 것 같다.
2015년 2월 문재인 체제가 출범했지만, 두 달 정도 지나서 치러진 4.29 재보선에서 새정련이 4곳의 지역구 중 단 한 곳에서도 이기지 못하면서 문재인 대표 체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문재인과 비노계의 갈등, 그리고 2016년 국민의당 창당을 거치면서 두 사람은 2012년에 이어 다시 완벽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안철수/정치 문서 참고.
일각에서는 안철수새정련 탈당을 당시 당대표였던 문재인의 잘못으로만 보는 시선이 있는데, 문재인/2015년 항목에 조금 더 자세히 쓰여 있지만, 문재인은 당대표로 있을 때 안철수에게 당 혁신위원장 자리와 '·· 연대'[65]를 제안하는 등 여러 차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안철수를 비롯한 비노계 쪽은 이를 번번이 뿌리치며 문재인에게 당대표직에서 내려오란 요구만 되풀이했다.
그런데 정작 안철수와 비노계는 문재인이 2015년 9월 국민 여론조사와 당원 투표를 모두 실시해 둘 중 한쪽에서라도 사퇴하라는 결과가 나오면 물러나겠다#고 했을 때에는,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하며 이 재신임 투표에도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신임 투표도 할 것 없이 그냥 무조건 물러나라는 거였다. 이러한 안철수 & 비노계의 행보는 문재인 측과 타협해서 좋게좋게 해결해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또, 무조건 많은 사람이 함께한다고 좋은 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과 더불어민주당의 차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생각이 다르고 정책이 다르면 서로 다른 정당에서 경쟁하고, 국민에게 평가를 받는 것이 옳다.
실제로 안철수와 비노계가 민주당을 떠나 국민의당을 만든 뒤 민주당의 고질적인 질환이었던 계파 갈등 문제가 상당히 없어졌고, 민주당의 지지율 폭등에는 이러한 점이 상당 부분 플러스 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된다. 친문 성향의 민주당 지지층이 국민의당과의 합당이라든가,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이 민주당으로 넘어갈 눈치를 살피고 있다 카더라는 소문이 조금만 들려도 예민하게 거부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6년 주요 기관 차기 대선 여론조사를 보면, 기복이 큰 안철수와 달리 문재인은 꾸준하게 20%대 지지율을 유지하며 당시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로 꼽혔던 반기문 UN 사무총장과 함께 선두권을 지켰다. 다만 호남권 지지율만 놓고 본다면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약진한 뒤부터는 안철수의 지지율이 계속 우세를 보였다.
그러던 중 2016년 6월쯤에 김수민 & 박선숙 리베이트 수수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새정치'라는 이미지에 심각한 훼손이 일어났고,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안철수국민의당이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바람에 안철수의 지지율도 점점 떨어져 결국 이재명 성남시장에 이어 황교안 총리에게까지 지지율이 뒤처지는 안습한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반면 문재인은 비문 성향의 언론과 정치권의 집중 견제를 받는 상황 속에서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1위를 유지하며 '문재인 대세론'의 불을 살려 나가고 있었고, 호남권에서조차 안철수를 계속 앞지르기 시작했다.
19대 대선에 나갈 후보들이 모두 확정되고, 반기문황교안이 모두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에는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처럼 이른바 '깜냥이 되는' 보수 후보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보수 지지층이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심리로 그동안 '문재인의 대항마', '반문(反文)의 얼굴'을 자처해 왔던 안철수에게 '전략적 지지'를 보내주면서 두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가 아주 좁아지기는 했다.
안철수가 유력한 2위 주자로 떠오르자 마자 아내 특혜 채용설, 딸의 호화 유학설 등 여러 논란이 분출되어 청렴한 이미지가 훼손되기 시작했고, 이어서 안철수 본인도 '대형 단설 유치원 설립을 제한시키겠다'고 하는 등 이미지 훼손에 일조했다. 이 논란들은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졌고, 특히 단설 유치원 제한 발언은 살인적인 수준의 공립 유치원 입학 경쟁에 시달리며 공립 단설 유치원 증설을 요구해왔던 학부모들을 격노케 하는 자충수로 돌아왔다. (다만 단설유치원은 비용이 많이 들어 추경을 확보하지 않는 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증설이 어려우며, 해당 발언과 함께 제시한 아이디어인 초등학교 빈교실 활용은 유시민이 국민청원하기도 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제가 갑철수입니까?", "제가 MB 아바타입니까?"라는 말로 대표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연거푸 보여줘 이미지 실추를 자초한 데다, 홍준표가 일부러 보수 진영의 귀에 착 달라붙는 막말 퍼레이드로 안철수에게 붙었던 보수 진영의 지지를 다시 떼어가면서 결국 본인이 꿈꾸던 '문재인 VS 안철수'의 양자 대결 구도를 실현하지 못하고 41.1%의 득표율로 당선된 문재인, 24.0%의 득표율로 2위를 기록한 홍준표에 이어 21.4%의 득표율을 얻어 3위로 낙선하고 말았다.
20대 총선국민의당민주당을 제치고 정당 득표율 2위를 달성하고, 총선 직후 지지율 1위의 차기 대권주자라는 빛나는 결과를 따냈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어두운 결과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19대 대선에서 안철수가 입은 상처 중에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울 상처는 근거지였던 호남권에서 완패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호남권에서 도합 62.0%의 득표율을 기록해 호남의 지지를 되찾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얻었지만, 20대 총선에서 호남의 새로운 맹주가 되었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안철수는 28.2%의 득표율 밖에 얻지 못했다.
대선 도중 국회의원직 사퇴, 호남 참패, 3위 낙선은 안철수의 정치 미래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웠지만, 그간 '문재인의 라이벌'이라는 이미지를 세상에 깊이 각인시켰으니 훗날 만일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레임덕이 찾아온다면 그 이미지가 안철수를 정치적으로 다시 일으켜줄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런데 대선 선거 운동 기간 국민의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의 취업 특혜 논란을 집중 공격하면서 증거로 공개한 통화 녹취록과 카톡 화면이 사실은 국민의당의 전 최고위원이자 안철수의 청년 인재 영입 1호인 이준서, 그리고 안철수카이스트 제자이자 그의 정계 활동을 오랫동안 보좌해온 국민의당 당원 이유미에 의해 조작된 증거임이 드러나면서 국민의당안철수는 치명적인 이미지 실추를 또 한 번 겪게 됐다.
이유미는 안철수가 카이스트에 몸담고 있었을 때부터 인연을 맺었던 사람이고, 이준서는 안철수가 직접 영입한 사람이라 이 증거 조작이 안철수의 지시 또는 묵인하에 이루어지지 않았겠느냐 하는 의혹이 나왔고 만약 사실로 밝혀질 경우 안철수는 정계 은퇴 수순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국민의당 또한 사실상 몰락에 가까운 치명타를 입을 테니 안철수가 무너지길 원하는 민주당 지지층과 안철수를 반드시 살려야 하는 국민의당 지지층 모두 이 사건을 예의주시했다.
안철수에게는 다행히도 검찰에서는 이 사건을 이유미와 이준서의 범행일 뿐, 국민의당 상층부는 몰랐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일단 안철수 정계 은퇴 언급은 사그라졌다. 다만, 안철수가 이 모든 일로부터 무관하다는 의심은 완전히 해소된 게 아니므로 앞으로도 그의 정치 행보에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닐 것으로 보인다.
대선 패배에 이어 대선 공작 사건까지 겹치면서 모두들 안철수의 정계 복귀는 보다 긴 시간이 걸릴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안철수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국민의당 신임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며 상당히 빠른 정계 복귀를 시도했다. 그리고 2017년 8월 27일 국민의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돼 '극중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다시 정치 일선으로 복귀하였다. 그 후에는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는 등 문재인 정부에 대하여 적대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이 행보로 인해 안철수는 국민의당 내부의 을 중심으로한 호남계 비안 성향 의원들과의 갈등을 빚게 되었고, 훗날 안철수는 바른정당합당할 때 호남계 대부분과 결별했다.

7. 이야깃거리



7.1. 인기


  관련 문서: 친문

단순히 정치적 지지를 넘어선 문재인 개인에 대한 '인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대통령 취임 이후 열성적인 지지를 받으며, 여느 정치인들의 팬클럽을 뛰어넘는 강력하고 탄탄한 '팬덤'을 자랑한다.[66] '문재인 팬덤'의 가장 큰 특징인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사모, 박사모와 같은 조직과는 달리 이 지지층들은 단일하고 가시적인 조직 체계의 성격은 상당히 희미한 편이다. 오늘의 유머나 루리웹 북유게 같이 지지층들이 주로 모이는 커뮤니티들이 있긴 하지만 이곳들이 친문 지지층의 전체 여론을 통제하거나 주도하는 '지휘부'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그저 친문 성향 누리꾼들의 여론이 섞여 있는 연못 같은 곳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지지해 준다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약 30%대에 육박했는데, 문 대통령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보내는 지지 역시 그에 못지 않는 굳건함을 자랑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취임 이후 1년 동안 지지율 60 ~ 70% 대를 유지했다. 대통령 국정 지지도 조사가 실시된 이후로 가장 높은 임기 초 지지율을 자랑한 김영삼 전 대통령 바로 다음이다. 시사IN은 이렇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모습이 마치 과거 3김시대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모습을 방불케 할 정도라고 평가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개인으로서 정당에 가까운 상징성을 가졌던 YS와 DJ, 또는 JP 수준의 정치적 입지로 격상되는 것 같다”고 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한 관계자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이 추세로 간다면 퇴임 지지율이 최소한 50%는 상회 할 것이라고 볼 정도. 한국갤럽 조사 기준으로 문민정부 이후 어떤 정권이든 퇴임 직전 지지율은 50%는 고사하고 30%를 넘는 정부도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의 학생 ~ 청년층 지지율이 대단하다.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 청년 시기를 보낸 40대의 지지율도 높은 편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이 가장 높은 득표율을 보였던 계층이 20대 여성(69%)이었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지원 유세 사진과 영상들만 봐도 같이 사진 찍으려는 젊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20대 여성 (69%) > 30대 남성 (68%) > 30대 여성 (65%) > 20대 남성 (62%) 순으로 지지가 높았다. 19대 대선에서도 20대 (47.6%), 30대 (56.9%), 40대 (52.4%)의 지지율이 과반에 육박했다. 2017년 포항 지진이 발생하여 수능이 연기되어 치러진 이후 포항여고를 방문했을 때도 학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기도 했다.해당 영상
안아주데여 피리부는 문재인 학생들을 떼거지로 몰고 다닌다.

[67]

딱 인터넷을 많이 활용하는 연령대인 20대~30대 젊은 층에게서 주로 높은 지지를 받는지라, 웹상에서 수많은 지지자들의 활동이 왕성하다. 나무위키의 다른 민주 & 진보 진영의 정치인들 문서와 문재인 문서를 비교해 보면, 문재인 대통령 관련 항목은 비판이나 논란 또는 악성 루머가 서술될 때마다 다른 문서들에 비해 신속하게 세세한 반론과 교정이 붙는다. 또한 현 야권 인사라도 문재인을 비난하는 언행을 보이면 비난 받는 일도 있다. 한 예로 2016년 11월에 이재명 성남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달린 답글들에 일일이 '좋아요'를 누르다 문재인 전 대표를 비방하고 인신공격하는 악플들에게도 좋아요를 눌렀다가(...) 융단 폭격을 맞은 일이 일었다. 그냥 좋아요 일일히 눌러준다고 했다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았나보다 자세한 건 이재명(1964)/사건사고 문서를 참조.
아기들에게도 호응을 많이 받았다. 아기들이 문재인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사진과 동영상이 유독 많고 본인도 그걸 굉장히 할아버지 미소를 지으며 흐뭇해한다 좋아해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아기들이 순수해서 보는 눈이 있는 것이라고 농담하곤 한다.[68]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못생긴 사람을 싫어한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뿐



이 사진은 제49회 한국보도사진전 people in the news 부문에서 <아이의 시선으로>라는 제목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에 힘입어 소위 '이니굿즈'라고 불리는 문재인과 관련된 제품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니굿즈를 분류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이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비매품이고 수량도 적어서 구하기가 힘든 대통령 기념시계와 같은 기념품이다. 어찌나 수요가 많은지, '차라리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판매해서 물량도 늘리고 세수도 늘리는 쪽으로 하자'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69] 청와대에서 국민의 성원을(?) 아는지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를 위해 개최한 공모전 이벤트에서 상품으로 대통령 시계와 문 대통령과의 오찬을 내걸기도 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와 시트, 기념우표첩이 인기를 끌면서 순식간에 동나고, 역대 대통령 처음으로 추가 발행되는 일도 있었다.
강력한 인기에 힘입어 완판남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완판남' 등극 100일차 文대통령…안경, 커피, 잡지까지 완판 사례로, 대통령 취임 이전에는 문재인 당시 후보가 표지를 장식한 타임지 아시아판이 (번역도 안되었는데!)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배포 즉시 품절되면서 지지자들 사이에서 해당 타임지를 구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소장용 - 구독용 2개산 인증샷이 올라오면 상도덕 지키라는 불평이 나오기도 했다. 이 잡지는 한국에서만 10만부 이상 팔렸다.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신은 낡은 구두로 유명해진 장애인 수제화 브랜드 ‘아지오(AGIO)’의 경우 밀려온 구매 요청으로 2013년 9월 회사가 문을 닫은 지 4년 5개월 만에 새출발했다. 비슷하게 사례로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휴식에서 기자들과 등산할 때 입은 이미 단종된 블랙야크의 오렌지색 'B가디언' 재킷이 구매문의가 이어지면서 블랙야크가 고심 끝에 재출시 한 바 있다.

7.2. 외모


우리나라 역대 정치인, 대통령 전체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미남으로 손꼽히며, 그래서인지 남성보다 여성 지지자가 더 많다고 알려져 있다. 60세가 넘은 나이지만 미노년으로 평가받는다.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보자. 고등학교 졸업 사진과, 특전사 시절 사진과, 아버지가 된 중년 시절의 사진. 해외에서 먹히는지(?) 미국 순위 선정 매체 ‘하티스트 헤즈 오브 스테이트’(Hottest Heads of State)에서 잘 생긴 지도자 순위 7위를 차지했으며, 비정상회담 멤버들도 그를 상당한 미남이라고 칭찬한 바가 있다. 여담이지만 1위는 기욤 패트리가 늘 언급하고 존경을 표한 쥐스탱 트뤼도이다. 반대로 꼴등은 북한의 그분.
그 덕에 얼빠도 꽤 있는 편. 게다가 후보 시절 문재인의 근접 경호를 맡았던 경호원 중에 뛰어난 이목구비로 눈길을 끌었던 사람이 있었고, 문재인 후보 비서실장이었다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뒤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던 임종석 비서실장에 이어 조국 교수가 민정수석으로 발탁되었는데, 두 사람 모두 미남형의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라 '문재인의 얼굴 패권'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그런데 19대 대선에서는 충남 엑소 소리를 듣는 안희정 충남지사의 등장으로 위치를 위협받는 중이라는 말도 나왔다.물론 그 분은 망했지만.
아래 사진들처럼 각종 시설에서 일일 체험을 하는 행사 등에서 여러 가지 복장을 입을 때가 있는데, 뭘 입어도 30년은 종사한 전문가로 보인다는 코스프레 옷빨이 매우 좋은 인물이다.


의사 가운을 입고 병원을 방문했을 때
경찰복을 입고 경찰서를 방문했을 때

7.3. 금괴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금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문재인이 금괴 몇 백톤을 소유하고 있다는 터무니 없는 루머. 반박할 힘도 안 나는 루머인지라, 오히려 지지자들과 더불어민주당이 '금괴왕 문재인'을 소재로 웃고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 문재인이 가지고 있는 루머 중 가장 대중적 인지도를 자랑하는 루머일 것이다.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본인도 이게 사실이었으면 하는 루머이기도 하다.

7.4. 일 중독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넘어서 대단한 워커홀릭이다. 참여정부 민정수석으로 근무할때 과로로 치아 대다수를 임플란트로 교체 한 것은 익히 알려진 일화이다.[70] 업무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유명한 청와대에서 본인 성품대로 꼼곰하게 업무를 챙겨서 생긴 사단이기도 하다. 아무튼 부지런한 대통령 덕분에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보좌관 및 행정부 관료들도 생고생 하고 있다.
청와대 2인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경우 퇴근을 하긴 하는지조차 의심이 갈 정도다. 오죽하면 지지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반려견 이름을 따서 임마루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 청와대 부대변인인 고민정 역시 차라리 아나운서 시절이 더 편하다고 고백할 정도로 엄청 빡세게 굴린다. 장관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눈이 충혈이 된 상태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 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오죽하면 측근들이 청와대 자체 제작 프로그램에서 문 대통령이 해외순방에서 하는 행동들을 다 털어놓으면서 악덕 고용주에게 착취(?)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 할까.
거기다 문 대통령 취미는 일반 회사라면 부하 직원들이 싫어하는 등산이라서 주말이라고 좀 쉴 줄 알았던 경호원들과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속된 말로 개고생하고 있다.이 기사에 나온 사진을 보면 60대 중반인 문재인 대통령은 산 오르내리고도 멀쩡한데 이제 40대 정도로 보이는 기자는 녹초가 된 듯 보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나이에 비해서 체력도 매우 왕성하다. 대통령 취임 직후 첫 주말이라 문 대통령이 "오늘 쉬겠다."고 했는데 또 등산을 가서 김경수 의원이 트위터에 "오늘 쉬신다고 하셨잖아요!"라고 하며 귀엽게 불평하기도 했다.참조 문재인 : 허허, 오늘 휴일인데 다같이 가볍게 북한산 등산이나 할까요?

재야 시절부터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한 소위 3철(양정철, 이호철, 전해철)이 문재인 정부 내각에 참여하지 않고 해외로 떠나거나 국회에서만 활동하는 등 2선으로 물러난 이유로 '문재인 밑에서 생고생한 경험이 있어서 살려고 도망쳤다'라는 농담 섞인 해석이 있을 지경이다. 물론 국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이런 부지런한 모습에 대부분 호평을 보내고 있다.[71] 건강 걱정도 하긴 하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일 하는 모습에 나라를 바로 세우려 애쓰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전 대통령이 하는 일 없이 늘 도피성 해외 순방이나 다니고 멋대로 수요일을 휴무일로 정하는 데다 매일 드라마만 끼고 사는 등의 한심한 모습들을 지켜본 것도 있지만.
유시민 작가는 문 대통령의 이러한 업무 사랑(?)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개혁 과제를 두고 정쟁으로 세월아 네월아 하는 대한민국 국회를 믿느니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하겠다는 의식의 발로로 보인다고 평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모든 업무를 챙겨서 장관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7.5. 반려동물


여러 마리의 유기견유기묘를 기르고 있으며, 청와대로 데려와 계속 기를 예정이다. 경남 양산 자택에서 유기묘였던 '찡찡이'와 '뭉치', 그리고 유기견이었던 풍산개 '마루'와 '깜'이를 기르고 있었다.
찡찡이의 경우 문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트위터와 뉴스를 통해 살짝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에 들어와 대한민국 최초 퍼스트 캣이 되었다.[72][73]

마루도 청와대에 입성하여 퍼스트 도그가 되었다. 문 대통령의 술버릇이 마당에 앉아서 마루와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도 풍산개를 길렀다고 한다. (유명인들의 애완견문서 참고)

'쯔쯔'란 이름의 스피츠도 기른 적이 있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이 스피츠 종을 길렀던 적이 있다고(...)한겨레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반려견 취향인가 보다
유기견이었던 강아지를 '지순이'라 이름 짓고 기른다고 한다. 헤럴드경제

'토리'란 이름의 유기견도 2017년 7월 27일 입양했다. 토리는 학대경험이 있어 보호소에 있던 반려견이었는데 대통령 취임이후 유기견 입양 의사를 밝히면서 토리의 입양이 공식화됐다. 남자를 무서워 하는데 대통령 앞에서는 얌전하다고.
[ No.4750611 ] 이미지 등록됨

대통령 취임 이후 토리의 입양이 지연돼 입양을 하지 않느냐는 의문도 제기됐지만, 인사문제와 해외순방 등 바쁜 일정을 고려해 동물보호단체에서 일부러 입양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사위가 이 토리의 이름을 딴 '토리게임즈'에서 일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농담 삼아 '문재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비선실세는 마루와 찡찡이, 토리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문 대통령 스스로 반려동물의 주인인 만큼 반려동물 정책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 #
전 세계에서 유기묘와 유기견이 퍼스트 펫이 된 첫 사례라고 한다.

7.6. 각종 타이틀


  •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수석비서관 중 최초로 한 정부에서 세 번이나 수석비서관에 임명됨.[74]
  • 3당 합당 이후 최초로 부산광역시에서 낙선 없이 당선된 민주당계 정당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75]
  • 역대 대선 낙선 후보 중 최다 득표자.[76][77]
  • 궐위로 인한 선거로 선출된 첫 대통령.
  •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된 대통령.[78]
  • 민주당계 정당 대선 후보 중 최초로 울산광역시에서 1위를 기록한 대통령[79]

8. 저서


  • <문재인의 운명>, 가교출판, 2011년 6월 15일 #
  • 공저,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오월의봄, 2011년 11월 23일 #
  •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의 힘>, 퍼플카우, 2012년 8월 6일 #
  • <문재인이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 리더스북, 2012년 8월 13일 #
  • 공저, <그 남자 문재인: 함께 만드는 세상>, 리얼텍스트, 2012년 11월 20일 #
  • <1219 끝이 시작이다>, 바다출판사, 2013년 12월 10일 #
  •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 21세기북스, 2017년 1월 17일 #
  • 공저, <운명에서 희망으로: 문재인이 말하고, 심리학자 이나미가 분석하다>, 다산북스, 2017년 3월 23일 #

9. 평가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비판과 논란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비판과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여담



  • 참여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도 탄생하면서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셈이 된, 부산 서구 부민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부산이 위치한 건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건물에서 남경복국집을 운영했던 건물주에 의하면 건물주 본인도 "노동자들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노무현-문재인 두 변호사가 "남을 돕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려서 복국집을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80] 당시 변호사인데도 불구하고 옷도 제대로 못 사입을 정도로 돈이 없었던 문재인 변호사를 상당히 딱하게 생각했다고.

> 롯데 우승과 삶은 무관> 문재인 = 자기의 삶은 자기가 속한 계층에 대한 정책으로 규정되는 것이지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속한 계층에 대해 누가 더 문제의식을 깊이 느끼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돼야 합니다. 예컨대 롯데야구단프로야구에서 우승한다고 해서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자기의 삶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 아닙니까\.

위의 발언과 별개로 야구 팬이다. 역시 경남고 출신!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 그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을 때 문 대통령 본인도 야구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김응용의 팬이었다고 밝혔을 정도. 게다가 문재인/생애 문서에 언급되었듯이 최동원 선수가 선수협을 만들었을 때 고문 변호사를 맡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19대 대선해태 타이거즈의 레전드 김성한, 롯데 자이언츠의 혼 박정태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하기도 했다. 우투우타다. 그리고 2017년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다. 본래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 맡기로 했으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시구자로 나선 것이다.[81][82] 시구가 끝난 이후 3루 홈팀 덕아웃에 있는 KIA 타이거즈 선수단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으며 선발 출장한 포수 김민식에게는 어깨를 두드려줬다. 여담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김성한 전 KIA 타이거즈 감독도 자리를 함께 했으며 해당 경기의 주심이자 최동원 선수의 동생인 최수원 심판과도 인사를 나누었다.[83]
  • 야구 같은 스포츠를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야외 활동도 즐기는 체력파(?)다.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전거 애호가인 것과 달리, 등산을 즐겨하는데, 60대의 나이에도 히말라야 등반까지 할 정도로 등산을 즐겨하는 산악인 체질이다.[84] 또한 병역 의무를 특전사로 마쳐서인지 정계 유명 인사들 중 수준급 체력의 소유자라고 한다.
다만 치아 상태는 나쁘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가 흔들리다가 빠지는데,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을 때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잇몸이 허물어지고 이가 다 빠져 현재의 치아 모두(!) 임플란트라고. 그의 발음이 약간 새는 데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다. 게다가 민주당의 유력 대권 주자로서 대선 준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는지 최근 탈모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특히 앞머리 쪽과 머리 뒤쪽에 원형 탈모가 급속히 진행되어 점점 대머리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한다.
  • 잘 알려져 있듯 특전사 출신[85] 으로, 군부대를 시찰하면서 보인 몇몇 모습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총을 든 상태에서 땅을 짚을 때 총을 손등 위로 올려놓는다든가,[86] 사격 시 하늘을 잠깐 본 뒤 조준경을 본다든가.[87] 전역은 커녕 훈련소만 나와도 까먹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군을 제대하고 40년이 지났음에도 정확하게 지키는 FM스러운 모습에 군필자들 사이에서 호감을 샀다.# 대통령 취임 이후 국군의 날 행사에서 특전사 후배들의 재롱 고공 강하, 특전 무술 시연을 흐뭇하게 바라보것이 카메라 포착되기도 했다.
  • 의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1,000만 표를 훨씬 웃도는 득표를 했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1,469만 2,632표를 받고 낙선했지만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1,342만 3,800표를 받고 당선되었다. 낙선했을 때 받은 표가 당선됐을 때 얻은 표보다 126만 8,832표나 많은데 이건 18대 대선진보보수가 1:1로 붙었던 선거였지만, 19대 대선 모두가 후보를 내고, 후보 단일화 없이 완주한 선거였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19대 대선 때 받은 표가 18대 대선 때 받은 표보다 적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제6공화국을 기준으로) 박근혜를 제외한 전임자들인 이명박(약 1149만 표), 노무현(약 1201만 표), 김대중(약 1032만 표), 김영삼(약 997만 표), 노태우(약 828만 표)가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아 당선됐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은 제6공화국의 역대 대통령들 중 두 번째로 많은 표를 받아 당선된 대통령이자, 제6공화국 아래서 치러진 역대 대선에서 낙선한 대통령 후보들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았던 후보라는 특별한 기록을 가진 정치인이 됐다. 또한 이 두 번의 대선에서의 득표 총합이 2,811만 6,432표이고, 이는 대선에 출마한 모든 후보 중 득표 총합이 제일 많은 수치다. 따지고 보면 문 대통령이 18대 대선에서 떨어지고 난 뒤에도 계속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될 수 있었던 것도 그때 어마어마한 수의 표를 받았었다는 메리트에 힘입은 바가 컸다.
  • 커피 애호가다. '콜롬비아 4, 브라질 3, 이디오피아 2, 과테말라1' 이렇게 블렌딩해 간다고 단골 커피숍 주인에 의해 알려졌다.조선일보 이에 대해 MBN 뉴스8의 앵커 김주하가 5월 12일자 방송에서 '오늘의 사진'으로 문재인의 커피 애호에 부정적인 댓글들을 소개하며 "커피 대신 국산차를 사랑했으면 하는 바람부터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의견까지…"라는 식으로 말해서 큰 논란이 되었다. #
이에 네티즌들은 김주하 앵커에게 아파트 말고 초가집에서 살라는 식의 드립을 날리고 있다. 김주하 앵커는 댓글을 소개했을 뿐으로, 김주하 앵커에게 잘못은 없다고 볼 수 있다는 의견과 그런 부정적인 댓글을 굳이 골라서 소개한 의도가 있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쪽도 있다. 실제로 김주하 앵커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당시에 감정에 복받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있다는 소리가 수월찮게 들리던 인물이기도 했던 터라.
  • 동남 방언, 그중에서도 거제도 방언은 '쌍시옷(ㅆ)' 발음을 잘 못 한다.[88] 덕분에 대선 토론회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가 눌변으로 비판을 받는 와중에도 비슷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89] 발음이 좀 새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시절 과로로 치아가 10개 정도 빠져서 임플란트로 대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대 대선 당시 정치 풍자를 위주로 했던 SNL 코리아에서는 이를 개그 소재로 써먹기도 했다. 19대 대선 때는 정의당이 '사(싸)우지 않는 정치'라는 표현으로, 이 부분을 조롱하는 지역드립성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유권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 대선 후보 당시 한국경제에서 진행한 문답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로 아이유를 꼽았다. 대학 포기 선언[90]을 한 것에 깊은 감명을 받은 듯하다. 기사 원문 2017년 대선 과정에서도 여전히 좋아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YTN <대선 안드로메다>에서 김연아와 동시 언급하며 여전히 좋아하냐고 묻자 "사나이 사랑은 영원한 거 아닙니까"라는 대답을 남겼다고.보도영상 잇몸이 만개하셨다 다만 요즘은 김연아가 더 끌리는 모양이다 [91]
  •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의 근간이지만 미국에게도 NO를 할 수 있어야 한다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자주성을 강조했다고 알려졌으나 NO가 아니라 동등한 대화를 나눠 합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축약 보도함으로 벌어진 오보[92]로 밝혀지기도 했다. 북한에 대해서도 북한 체제는 싫지만 대화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SBS
  • 다른 사람에게 약간 속상한 감정을 느낀 것이 얼굴에 금방 드러나는 편이다. 나중에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가게 되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서 "뭔가 참을 때면 눈을 깜빡인다"고 말했는데#, 잘 보면 입도 삐쭉 내미는 걸 알 수 있다. 민주당 경선 시기 썰전에 출연한 자리에서 유시민 작가가 "다 아는 사이에 문재인도 안희정도 응원하기 곤란하다"고 말하자 바로 이런 반응이 나와서 유시민 작가가 서운하냐고 묻기도 했다.
  • 독특한 술버릇이 있다고 한다. 아내 김정숙 여사의 말에 따르면, 과음한 날이면 옆집 문을 두드린 적도 있고, 기분 좋게 한 잔 마시고 들어온 날이면 외출복 그대로 입은 채로 반려견인 마루와 껴안고 마당을 뒹굴고 둘이 눕곤 했다고 한다. 뭐하느냐고 물어보면 마루랑 달구경을 한다나 어쩐다나. 마당에 앉아 나무와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 대통령 취임 3일차 12일 다음에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해당 기사
  • 휘호는 대체로 한글로 쓴다.
  • 미우프에서 본인 포지션을 맡고 있는 문재수 역의 김민교와 직접 만났다.[93] 김민교와 악수를 나누면서 "정치가 이렇게 개그의 소재가 되는 게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웃음 선사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 고스톱판에서 밑장빼기를 시도하다가 들킨 적이 있다.[94][95]
  •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가 대만 야시장에서 발견됐다. #
  • 아이디는 "moonjaein"을 쓰려고 하지만 이미 타인이 개설한 것이 많은 탓에, 주로 쓰는 트위터는 "moonriver365"(문리버)를 사용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은 "moonbyun1"(문변)을 사용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 이후 포털 사이트 다음의 뉴스 댓글에 "문변"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기도 했다. 19대 대선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인사글을 올릴 때에는 "명왕"이라는 별명을 직접 사용하기도 했다.
  •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인 1952년 1월 24일을 앞두고 문 대통령의 지지층 일부가 자신들끼리 모금을 하여 2018년 1월에 서울 지하철역 곳곳에 있는 광고판에 문 대통령의 생일 축하 광고를 걸었다. 심지어는 조선일보 사옥에도 광고가 걸린 것 같다(...) 광고판의 QR 코드를 찍으면 다음 생일까지 며칠이 남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공공장소 광고판에 공인의 생일 축하 광고를 거는 건 아이돌 팬덤에서는 흔히들 하는 일이지만, 정치인의 생일 축하 광고를 거는 건 이번이 거의 처음 있는 일인 듯하다. 당연히 보수 야당에서는 안 좋은 소리가 나왔다. 보수 야당들은 이 광고판을 단골 레퍼토리인 북한의 우상화 선전물에 비유하며 비판을 했다. 보수 언론도 이 광고판을 고깝게 보는 사람들의 항의를 부각시키는 듯한 내용의 보도를 쏟아냈다. * 김성태 원내대표 또한 국회 대표 연설에서 이를 비판했다.

  • 대통령이 된 뒤 큰 공식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일종의 입장곡으로 Mr. President라는 곡이 연주되는데, 이 곡은 작곡가 김형석 씨가 만들어 문 대통령에게 헌정한 곡이라고 한다.

12.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상)
민주통합당
65,336 (55.05%)
당선 (1위)
[96]
2012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14,692,632 (48.02%)
낙선 (2위)
[97]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13,423,800 (41.08%)
당선 (1위)
[98]



19대 총선[99]
18대 대선[100]
19대 대선[101]

13. 관련 문서


문재인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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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비서실대통령실로 개편되면서, 초대 대통령실장이 되었다.[2]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명진1길 27[3] 정확히는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1길 155.[4] 만약 개헌이 되더라도 4년이 아닌 5년동안 임기를 수행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 항목 참고[5] 18대 대선은 사실상 신인 정치인과 기성 정치인의 1:1 진검 승부나 다름 없었는데, 비록 당선까지는 아니었어도 거물을 상대로 따낸 48%라는 득표율은 꽤 유의미한 성적이고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물론 승자 독식 체제에 낙선을 좋게 보는 시각이 드물긴 하지만.[6] 경찰에 붙잡힌 총학생회장을 대신해 집회를 주도하다가 구속되어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같은 해 8월 군대에 입대하였다.[7] 원래 성적은 수석이었으나 시위전력 때문에 차석으로 순위가 바뀌었다고 한다. #[8] 두 사람의 합동법률사무소 내에 무료로 상담해주는 노동법률상담소도 있었다.[9]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법률사무소가 되었다.[10] 당시 상임집행위원장은 노무현이었다.[11] 기사 참고. 당시 노무현은 이사로 지냈다고 한다. 송인배 전 참여정부 비서관에 따르면, 당시 2억 원을 변호사 신용 대출로 빌려서 지부 설립에 냈다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돈을 돌려받지 않은 사람이 문재인이라고 한다.[12] 1988년 도입된 제도로 특별검사와 유사한 성격으로, 언론 등에서는 특별검사로 불린다. 고소고발인의 재정신청 사건에서 못미더운 검사를 대신하는 역할로, 법원이 임명한다.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에서 조영황 변호사가 처음 공소유지담당변호사를 맡으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폐지되었다. 문재인은 이 사건에서 공소유지 담당변호사로 박윤성 변호사와 함께 활동했다. 한 사건에 2명이 지정된 것은 역사상 처음이였다고. 검사를 대신해 피고인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다만 실제 선고는 징역 1년을 받았다. #[13] 대한민국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에서 육사 출신 이학봉, 김용갑과 사정수석비서관 허삼수 이후 첫 비검사 출신 민정수석이다. 이후 전해철 이호철 수석 모두 비검사였고 조국 수석도 비검사 출신. 문재인과 노무현의 가교 역할을 한 박정규 수석은 검사 출신이다. 민정수석 재직 당시 열린우리당에서 작심하고 집요하게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끝까지 불출마를 고수했다. 이후 사퇴하고 네팔로 떠났다.[14] 네팔로 여행을 가 있던 도중 소식을 접하고 귀국하여 맡았다.[15] 이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후임으로 갈 뻔했으나, 여야의 반대로 실패하고 말았다.[16] 봉하마을을 관리하는 재단으로, 봉하재단이라고 불린다.[17] 당시 이해찬 대표가 지도부 총사퇴로 물러나자 후보자격으로 대표직을 대행하였다.[18]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명을 바꾼 것이기에 자동으로 첫 대표가 되었다.[19] 위에서 보다시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트위터에 'president Moon, a fine gentleman' 이라는 표현을 썼다.[20]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올라갔던 시절 청와대 출입 기자였다.[21]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 생각하는 위키러가 있을 텐데 1970년대 이전에는 높은 유아 사망률 같은 이유로 출생 신고를 늦게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22] 그런데 이 분. 나중에 자기가 꼰대같다는 말을 듣자 대통령보다 나이도 적은데 왜 자기가 꼰대냐며 기자회견에서 불평했다.(...)[23] 결국 원래 보직으로 돌아간 남동생은, 동료와의 술자리에서 만취해선 형을 씹었다고 한다.안습[24] 실제로 18대 대선은 사실상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리전이었다.[25] 한나라당의 주류 였던 친이에서 친박으로 바뀔 때 공천학살이라고 불릴정도로 잡음이 심했다. 하지만, 친노에서 친문으로 당내 주류 계파가 바뀔 때는 그런거 없이 수장이 바뀌고, 몇몇 인원이 들어오고 나가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계파 이동이 되었다. [26] 이것이 바로 문재인이 정계에 입문하게 된 이유이다. 본래 문재인은 정치가 싫어서 노무현에게 직접 "민정수석까지만 맡겠다."고 하며 정치에 끌어들이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노무현이 명을 달리한 후에는 친구 노무현이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나서야한다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고 정계에 입문해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27] 립서비스에 약해서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로 유명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렿게나 극찬한 케이스는 단 둘이다. 하나는 알다시피 문재인이고 다른 하나는 유시민, 안희정에 대해서도 말한 말이 있지만. 그건 노 전 대통령이 미안해서였지 극찬한 케이스는 아니다.[28]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이 민정수석직을 한때 아예 폐지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 기조를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우병우처럼 민정수석이 검찰과 경찰 전체를 장악하고 조종할 만큼 강력한 힘이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한다. 그래서 참여정부 개국 공신들 중 비리 혐의로 잡혀들어간 사람들은 문재인에게 원한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검찰을 통제하거나 장악해서 자신들에 대한 수사를 무마시켜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말이다.[29] 당시 장례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고 소리치는 백원우를 말리면서 사태가 진정 된 후 이명박 대통령에게 가서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초인적인 인내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로 불리고 있다.[30] 또한 김현철은 더불어민주당에 자진 입당하였다.[31] 예외적으로는 강삼재 외에도 당시 친박이었던 김무성, 현재까지 쭈욱 친박인 서청원,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한 김영춘과 박재호가 있다.[32] 문 대통령 생애란에 쓰여 있지만 경남중은 이 당시 부산-경남권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명문이었다.[33] 盧 전 대통령의 장례식 이후, 집에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너무 울어서 걱정이된 김정숙 여사가 ‘저러다 죽겠구나’ 싶어서 119에 신고까지 했다고 한다.[34] 특히 이 부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기 한 달 전인 4월의 상황이다. 물론 박희태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편들었다기보다는 검찰이 하루가 멀다하고 노무현 수사 과정을 속속들이 언론에 뿌리고 이에 노무현 측에서 반박하는 것까지 공개되면서 정치권이 혼돈에 빠진 데 대한 불만을 제기한 것이었다. 게다가 일부 여권 인사들까지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한나라당 입장에서도 마냥 노무현에 대한 수사를 반길 처지가 아니었던 것.[35] 정세균 국회의장도 이 후보 경선에 참여했으나, 4위로 탈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6] 다만, 이명박에게 있어 노무현 및 친노계, 박근혜 및 친박은 모두 주요 정적이었고, 이명박과 친이계는 끝까지 가능한 한 이재오 등의 인사에게 새누리당 대권 주자 자리를 넘겨주려고 노력했던 만큼, 원세훈 등의 일부 인물들을 제외한 이명박 대통령 측에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 박근혜를 직접적으로 지원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친이계가 대권 주자는 되지 못해도 당시 홍준표, 김문수같은 범 친이계로 분류돼는 대권 주자도 아니고, 친박과 박근혜는 친노 및 노무현과 더불어 이명박, 친이계의 주요 정적이었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박근혜를 지원해준다는 얘기는 정적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정적을 지원해 준다는 선택을 하는 것인데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것을 결정하고 직접적으로 지원해 준다는 건 오히려 언 발에 오줌누는 꼴로 위험부담이 크면서 얻을 것도 적은 선택이었다.[37] 다만 이명박은 현대건설을 도산 직전까지 위기에 몰아넣고는 도주했기 때문에 그 자리까지 오르게 된 과정을 평가한다면 모를까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줬던 것은 절대 아니다.[38]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용산 참사 등등.[39] 실제로 그 당시 민주당계의 주요 인사였던 정세균, 문재인, 박원순 등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친노계가 노무현에 대한 표적 수사 논란으로 부활하게 되면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올라간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친이계가 당권을 계속 잡고 친박계와 분당이 된 상태에서 야권단일후보로 문재인이 나와서 보수계가 친이계, 박근혜로 갈리고 민주, 진보 정당 단일화 후보로 문재인이나 정세균이 나왔다면 한나라당에서 민주당계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거기다가 당시에는 진보 정당 세력들도 이명박 정부 심판으로 대의를 모으면서 2010년 후로는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의 세력과 민주당이 후보를 단일화해서 한나라당과 승부를 보는 경향이 강해졌으니, 친이:친박:민주/진보 단일화 후보 간의 대결이었다면 정권 교체가 확실했던 상황이었던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40] 박근혜와의 경선 당시 최태민과의 관계와 박근혜의 수준을 어느 정도 파악 했을 것이고, 최태민의 아들에게 상당한 분량의 자료도 넘겨 받았다. 이 치부를 풀려어서 박근혜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경선이 이미 이명박 쪽으로 기울어서 그러지는 않았으며, 박근혜가 당의 콘크리트 지지율의 상당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당 국회의원 경선 당시 친박을 의도적으로 대거 경선학살하면서, 이후에도 구실을 대고 박근혜를 트집잡아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정계에서 강제로 끌어내는 쪽으로도 생각을 기울인 바 있으나, 여러가지 상황에 부딫혀 결국 실현에 옮기지는 못했다.[41] 그래서 친이계의 좌장이었던 이재오는 국방 & 외교는 국민이 뽑는 대통령이, 그 이외의 국무는 국회에서 뽑는 총리가 전담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이명박 정부 중기부터 줄기차게 외쳐왔다. 이재오가 이렇게 개헌을 외치는 것에는 문재인이 정권을 잡든 박근혜가 정권을 잡든 둘 다 이명박과 사이가 무척 나빴기 때문에 정적들에게 '제왕적 권한'을 모두 몰아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리고 박근혜 시절에는 잠잠하다가 2017년 5.9 대선 시즌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적, 국민의당 및 제3지대의 대권 주자(친이/비박계)들을 중심으로 이런 개헌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42] 2016년 8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기 전 이명박은 "차기 정권을 반드시 내 손으로 창출하겠다"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되었다. 자신이 힘을 써서 친이계 주축인 보수 정부가 재집권할 경우 박근혜도 쳐내면서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까지 조용히 은폐하고 넘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 그러나 현실은...[43] 다만, 보수 정권을 대놓고 찬양하는 대표적 신문인 조선일보에서도 이미 최순실과의 관계를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이계 입장에서도 그 틈을 타 박근혜와 친박을 무너뜨리고 친이계 재집권을 노리려 했다는 평가도 있다. 조선일보가 공격하는 것을 당시 이명박 측에서 몰랐을 리 없으며 실제로도 친이계의 좌장 이재오를 중심으로 늘푸른한국당이 창당된 바 있다.[44] 특히, 반기문은 각종 논란거리만 키워서 공격받다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고, 안철수 역시 처음에는 촛불 민심을 흡수할 수 있었으나, 나중에 촛불시위에 나가지 않고 역시 각종 논란거리를 불러 일으키면서 지지율을 크게 깎아먹었다. 친이계가 주축인 늘푸른한국당의 경우도 촛불 시위에 참여했으나 보수정당계에 반감이 강한 사람들도 많다 보니 별 호응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45] 사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박근혜 탄핵소추 가결 직후에도 타 정당들에 비해 촛불시위의 동력을 계속 유지하는데 힘을 계속 기울였고, 그 결과, 득표율과 지지율에서 말해 주듯이 촛불민심을 가장 많이 흡수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되었다.[46] 국정원 댓글 사건은 더욱 규모가 커져 군까지 개입됨이 밝혀졌고 당시 국방부 장관인 김관진까지 소환조사를 받아 결국 구속되었다. 또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도 예상과는 달리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국정원을 동원해 은밀하고 치밀하게 방송 장악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다스 실소유주 논란이나 BBK 주가조작 사건등의 개인비리까지 재조명되면서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 제대로 된 사자방 비리수사는 시작조차 않았는데 온갖 분야에서 범죄 의혹이 드러나고 있기에 이명박에게 매우 떨리는 상황이다.[47]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사람인만큼 이들에 대한 복수심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설령 보복이라고 해도 애당초 꼬투리 잡힐 짓을 안 했으면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몰리는 상황은 모면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정부 입장에서 드러난 범죄를 처벌 안 할 수도 없는 일.[48] 권양숙이 돈을 받은 것은 명백하기에, 재수사 요청은 할 수 있으나, 이미 이 카드만 가지고 여론을 뒤집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당시 국정원이 광범위한 언론플레이를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반격은 커녕 도리어 역풍만 맞았다.[49] 문재인 정부는 대선 전에 박근혜 게이트로 정부의 각종 치부들이 들어나 이를 청산한다는 적폐청산을 주요 공약으로 삼았다.[50] 다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면서 중도보수, 중도층 및 친 기업성향의 친이 성향 유권자들의 반발이 있었는지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약간 하락하면서 동시에 반감도가 올라갔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벌어진 악랄한 정치공작이 드러나면서 친문 지지자들을 포함해 많은 시민들이 이명박에 반감을 가지기 시작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 동참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기존에 친노계가 포함돼 있던 정의당까지 현 정부의 적폐청산 모토를 지원하면서 정치계와 시민사회를 통틀어 이명박 수사에 호응을 보내고 있다.[51] 전날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이명박의 출국을 금지해달라는 청원이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했다.[52] 하지만 정두언 전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실제로 이명박이 걱정했던 것은 구속 당한 측근들이 아니라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로 불려간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라고 한다. 김 전 실장이야말로 진정한 MB의 집사로서 오랜 세월 MB를 모셨지만 사실상 토사구팽을 당했던 터라 검찰이 불게 없냐고 접근하면 술술 불게 너무나도 많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라고.[53] 누구처럼 질문은 받지 않았는데, 기자회견 내용은 검찰 수사를 사법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로 이끌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많다.[54] 외부자들의 진보 패널인 정봉주와 진중권은 이명박 대통령 측에서 노무현 대통령 등의 기록 자료를 모두 봤고, 표적수사에 가까운 노무현 수사를 했는데 터뜨릴 거였으면 왜 지금까지 안 터트렸는지 의문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정봉주는 한 발 더 나가서 아예 '뻥카'일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다.[55] '외부자들'에서는 친이계 출신이자 보수 패널 역할을 맡은 전여옥과 안형환 모두 MB가 포토라인에 설 확률이 높을 것 같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다만, 이때는 친노계가 이명박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예측한 거긴 했지만.[56] 영포빌딩은 이 전 대통령이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건물로, 지하 2층은 건물 약도에도 드러나 있지 않은 비밀 공간이라고 한다. 이곳을 덮친 검찰은 BBK, 다스 관련 문건 뿐만 아니라 청와대 문건으로 보이는 서류도 발견했다. 다른 언론들도 이 지하창고 압수수색을 비중있게 다뤘다. 이런 중요한 비밀 공간을 검찰이 갑자기 덮친 건 아마도 검찰에 의해 구속된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 중 누군가가 이곳의 존재에 대해 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하지 않을까.[57] 하승창 수석도 박 시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후에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 더문캠에서 일했다.[58] 다만 박근혜는 문재인이 자신의 정치 역량으로 넘어선 강력한 맞수라기보다는 스스로 자멸파멸한 경우라고 봐야한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는 문재인이 캐낸 것도 아닌 예상외의 상황이었기 때문. 단, 숙적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농단사태에서 가장 많이 이익을 얻었다.[59] 당시 상대 측의 보스가 바로 그 유명하고도 악랄한 법꾸라지 김기춘이었다! 물론 탄핵 자체가 완전히 억지에 가까워 통과될 확률이 거의 없긴 했지만.. 탄핵소추인단(즉 탄핵을 주장하는 역할. 검사라고 보면 된다)은 법사위원들로 구성되는데 이 당시 법사위원장이 김기춘이였다. 즉 탄핵소추인단장이였단 소리. 이때 김기춘은 노무현을 사이코라고 지칭하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12년 후 정반대의 위치가 되어 김기춘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문재인은 탄핵된 박근혜의 뒤를 이어받는다.[60] 손학규가 이 당시 민주통합당에서 문재인과 경선을 거치긴 했으나, 손학규는 신한국당-한나라당의 보수정당 출신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세력이 약했기 때문인지 결국 당시 친노의 좌장이었던 문재인에게 밀렸던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의 경우 대권 주자가 되려면 오히려 한나라당에 잔류해서 이명박 및 친이계와 같은 배를 타고 이명박 정부 시절 MB의 레임덕이 시작됐을 때 잽싸게 친이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친박과 혈투를 벌여 이기는 쪽이 오히려 대권 주자로 낙점됐을 확률이 높다.(실제로 홍준표는 뚜렷한 계파가 없이 정계 커리어를 이어가다가 2017년에는 친박의 몰락으로 비박의 구심점에 있던 친이계의 지원을 받고 무주공산이 된 자유한국당의 대권주자로 올라섰고, 결국 자유한국당의 당권을 장악하게 됐다. 이것을 감안하면 손학규의 선택은 늘 한발짝씩 박자가 안맞았다고 볼 수도 있다.) 손학규는 한나라당에 잔류해 기회를 보지 않고, 민주당계로 이동했다가 이후 대권주자 경선 3번에서 모두 패배해 대권 주자로 낙점되지 못했다.[61] 다른 한 명은 당연히 이분이다. 다만, 이 당시에는 이미 이상득의 권력이 약해지고 이재오가 친이계의 제일 실세가 된 시점이었다.[62] 이 때 이슈가 된 사건이 2017년도에 다시 수사가 진행된 국정원 댓글 사건이다. 이후 박근혜는 당선되고도 상당한 후폭풍이 있었다.[63] 실제 문재인과 친노 세력은 2014년 중반까지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에서 별 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당시 당 대표는 비노 세력이었던 김한길이었고 새정치민주연합 초기에는 김한길과 안철수가 당 대표였다.[64] 물론 나중에 새누리당이 무소속 당선자들을 받아들이면서 더불어민주당을 넘어 원내 1당이 되긴 했지만 이걸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65]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3대 유력 대선 주자였던 문재인 & 박원순 & 안철수가 손을 잡고 당을 이끌어나가자는 아이디어였다. 이 제안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긴 했지만, 광역단체장이라 당 운영에 직접 개입하는 건 법을 어기는 행위였으므로 상징적인 참여만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사실상 문재인과 안철수의 공동대표 체제를 문재인 측에서 제안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제안도 안철수가 '혁신 전당대회'를 열어 지도부를 싹 새로 다시 뽑자는 주장을 고집하면서 무산됐다.[66] 절친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팬클럽을 가진 첫 대통령이라고 불렸고, 자신의 전임자이자 가장 큰 정적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정말이지 튼튼하기 그지없는 지지자들을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재밌는 대목이다.[67] 제87주년 광주 학생 독립운동 기념식이 끝나고 차에 탑승한 문재인이 행사에 참여한 고등학생들이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차에서 다시 내려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68]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애들 또한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을 선호한다. 그리고 어른들에 비해 감정을 숨기는 능력이 떨어져서(...) 티가 더 난다.[69] 국민의당 이언주는 이를 조사도 안해보고 이니굿즈를 정부 차원에서 혈세로만들어 판매한다고 세금낭비라고 비판했다가 네티즌들에게 비판과 비웃음을 받았다.[70] 문 대통령의 발음이 부정확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물론 그가 경상도 출신이라 사투리가 섞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은 변호사 시절이었던 30대 후반 때와 60대 중반인 현재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 느껴진다.[71] 한국갤럽 조사 기준으로 문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 중 '열심히 한다'가 항상 상위권에 랭킹 해있다.[72] 퍼스트 캣 자체는 국외에서도 있었다. 총리관저 수석수렵보좌관이나 고양이 문서에 있는 빌 클린턴의 애묘 삭스가 대표할 만한 예다.[73] 이전 한국사까지 확대해보면 최초의 퍼스트캣은 조선 숙종의 금덕, 금손이었다. 숙종문서 참조[74] 민정수석 2회, 시민사회수석, 참모직으로 범위를 넓히면 비서실장까지 4번.[75] 4년 후 20대 총선연제구김해영이 문재인의 뒤를 이어 부산에서 단 1번의 낙선 기록 없이 바로 당선된 국회의원이 되었다.[76] 18대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문재인 후보가 무려 득표율 48%에 1,469만 2,632표를 얻었는데 이는 대통령 직선제 시행 이후 당선된 노태우보다 무려 640만 9,894표, 김영삼보다 471만 5,300표, 김대중보다 436만 6,357표, 노무현보다 267만 8,355표나 더 얻은 수치이고, 심지어는 종전까지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되었다는 이명박보다도 무려 320만 243표나 더 얻은 수치이다. 즉, 웬만한 대통령 당선자들보다 더 많은 표를 얻고도 낙선했다는 뜻이다.[77] 두 번째로 도전한 19대 대선에서는 전보다 126만 8,832표 더 적은 1,342만 3,800표를 획득했는데 그래도 박근혜 다음으로 가장 많은 표를 득표했다. 다만 이전 대선에 비해 인구가 증가하여 16대 대선에서 득표율 48.9%로 당선된 노무현보다 140만 9,523표, 17대 대선에서 48.7%의 득표율로 당선된 이명박보다 193만 1,411표나 더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득표율은 각각 7.8%, 7.6% 더 낮았다.[78] 557만 표차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2위는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를 약 531만 표 차로 눌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79] 부산의 경우 87년 대선에서 김영삼이 통일민주당 후보로 1위를 차지한 이후 약 30년 만에 민주당 후보가 1위를 차지하였다. 참고로 문재인은 동남 지역으로 합산해도 87년 이후 30년 만에 승리했다. 울산(당시 광역시가 아닌 경상남도 소속)의 경우 87년에도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에게 승리하여 민주당계 정당에게는 불모지였으나, 19대 대선에서 처음으로 민주당계 정당의 손을 들어주었다.[80] 당시만 해도 노동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로 낙인찍히고 각종 정치 보복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심지어 군사 정권이 무너진 지 한참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때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처럼 어설픈 동정심으로 덤빌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에 두 변호사는 건물주에게 "괜히 이런 일에 뛰어들지 말라"고 조언한 것이다.[81]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점퍼를 입고 등장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국가대표 점퍼를 입은 것으로 추측된다.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도 자리를 함께했는데 김정숙 여사는 KIA 타이거즈의 점퍼를 입고 등장했다.[82] 본래 시구자였던 김응용 회장은 마운드만 밟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시구를 지도해주었다.[83] 중계 영상을 보면 김응용 KBSA 회장의 소개를 받고 깜짝 놀라는 모습이 보인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라고 늘 말해왔고, 선수협 창설 시에 법률 자문을 하기도 했던 롯데의! 레전드 최동원 선수의 친동생이라는 말에 놀란 듯.[84] 그래서 대통령이 된 지금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이끌고 등산한다. 토요일에도 등산하고 나서 청와대 여민관 직원식당에서 오찬을 한 건 덤.[85] 참고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문재인 대통령 포함 3명의 특전사 출신 대통령이 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특전여단장 출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전사 소속 병사로, 당시 문 대통령이 소속된 부대가 전두환이 여단장으로 있던 부대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역한 뒤 전두환은 12.12 쿠데타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86] 전진무의탁 자세에서도 총을 손등에 얹고, 포복자세에서도 총을 손등이나 팔 위에 올린다. 총 안에 모래알 하나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유난 떤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유사시 총기에 이물질이 들어가 오작동이라도 일으키면 이는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유난 떨만 하다. 이 밖에도 군대에선 병사들의 총기 관리를 대단히 엄격하게 감시, 감독한다.[87] 하늘색과 햇빛으로 시각을 예민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하늘뿐만 아니라 사격 전에 먼 산을 잠깐 본 뒤 사격하라고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88] 쌀→살 같은 식이다. 참고로 김영삼 대통령경상남도 거제시 출신으로 비슷하게 쌍시옷 발음을 잘 못했다.[89] 물론 박근혜처럼 본인은 한국어를 하지만 청자는 한국어로 해석을 못 하고 녹음을 한 다음 다시 들어가며 번역에 가까운 해석을 해야 하는 경우는 아니다.[90] 보통 어린 스타들의 경우 대학이 먼저 알아서 특례 입학 등을 시전하여 성적 대비 좋은 학교에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유는 고3 시절 여러 방송과 인터뷰에서 '대학에 가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다'며 대학 입학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91] 국정농단 정국에서 김연아 선수가 박근혜의 눈밖에 나 불이익을 받았다는 세간의 의혹 때문에 김연아에게 맘이 더 쓰이는 듯하다.[92] 뉴욕 타임즈에서는 정정보도를 했다.[93] 미우프에서 각자 모두 해당 후보를 직접 만났다.[94] 물론 사기 도박 같은 게 절대 아니고 성남시 중원구 보궐선거 유세로 노인정을 방문 했을때 화투 패를 정리하다가 2장을 잘못해서 흘린 거다.[95] 근데 하필이면 흘린 패 2장이 섰다 게임에서 3, 7 패인지라 노인분들께 땡을 드리고 땡잡이 패로 게임을 끝내려 한다는 우스갯 소리가 돌기도 했다.[96] 3당 합당 이후 현재까지 민주당 후보가 사상구에서 당선된 유일한 사례다. 부산에서 3당 합당 이후 최초로 당선된 민주당계 후보는 부산 사하구 을의 조경태 의원이었다. 그런데 2016년 1월 새누리당으로 넘어갔다.[97] 역대 대통령 후보들 중 득표수 2위. 이전의 1위였던 노무현의 기록까지 넘은 득표수였으며, 낙선한 대통령 후보들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라는 타이틀도 겸하고 있다.[98] 전임자 박근혜 탄핵 인용에 따른 파면으로 인한 궐위에 의한 선거. 역대 대통령 후보들 중 득표수 3위. 역대 대선에서 2위와의 최대 표차로 당선(557만 951표). 2위는 17대 대선의 이명박 대통령의 531만7,708표. 참고로 역대 대통령 후보 득표수 1위는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2위는 18대 대선 문재인 본인이다. 2, 3위를 모두 갖고 있는 셈.[99] 전문 선거기획사가 아닌 아들 문준용씨가 만든 포스터. 슬로건은 카피라이터 정철이 맡았다.[100] 슬로건은 최창희 더일레븐스 대표의 아이디어. 포스터 사진은 따로 촬영한 것이 아닌, 한 행사에서 촬영된 사진을 그대로 사용했다.[101] 슬로건은 카피라이터 정철. 사진은 오하루 작가. 한글 디자인은 한재준 서울여대 교수. 로고는 장병인 디자이너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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