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 고의 (r20180326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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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률적 의미
2. 개그 콘서트의 전 코너


1. 법률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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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의 아주 전형적인 예

혹시나 죽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지.[1]

자기의 행위로 인해 어떤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 결과의 발생을 인정하여 받아들이는 심리 상태. "내가 하면 누가 죽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누군가 죽어도 할 수 없지"라는 인식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하면서도 폭행을 지속 하는 것'을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 라고 말한다.
형법학에서는 고의를 어떤 사실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사실에 대한 진지한 의욕으로 나누고 있다. 예컨대 내가 칼로 저 사람을 찌르면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러한 사실의 결과를 의욕적으로 발생시키는 경우에 판례는 "살인의 고의가 있다"라고 판시한다. 이러한 고의를 확정적 고의라고 칭한다. 어떤 사실에 대한 인식도 없고 의욕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발생한 경우를 가리켜 "과실"이라 칭한다. 그렇다면 고의와 과실 사이에 있는 중간적 개념들도 존재할 것이다. 인식은 있지만 의욕이 없는 경우, 인식은 없었지만 뭔가 의욕한 적은 있는 경우들이 그런 중간적 개념이다. 미필적 고의는 이 중에서 인식은 하는데 의욕이 확정적이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공교롭게도 군대를 안간 그 "미필"과 한자가 같을 수도 있다.[2] 고의적 미필
근대 형법에서는 원칙적으로 범죄의 고의가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만 범죄로 인정하게 되어 있다.(구성요건 참고. 심신장애 제도와는 취지가 다르다.[3]) 하지만 저 '고의'를 정말로 좁은 의미의 고의로 한정시켜 놓으면 범죄를 마음껏 저지르고 다니면서도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다드립을 치고 다니는 미친놈들을 제재할 방법이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근대 형법에서 도입된 개념이 바로 미필적 고의이다.
좁은 의미의 고의가 범죄행위로 인한 결과의 발생을 적극적으로 바라고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면, '미필적 고의'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지르는 것을 말한다.[4]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이 법률 용어의 한자를 분석하는 것이 알기 쉬울 수 있다. '미필적' 즉, 필연적인 결과를 낳지 않는 '고의'이다. 일반적인 고의는 칼을 들어 찌르면 상대가 죽는다는 식의 '인과 관계를 낳는 인간의 의도'이지만, 미필적 고의는 인과관계의 원인을 형성하기는 하여도, 그것이 필연적으로 어떤 결과 즉 범죄행위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원인으로 인해 저런 가능성이 생겨났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런 가능성을 위해 원인을 설치한 것이라면 그것은 미필적 고의이다.
예를 들자면, 일부러 사람을 치고 싶어서 차로 친 사건은 좁은 의미의 고의로 치지만, 차를 몰면서 저 앞에 걷는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을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가면 그 사람을 칠 것을 알면서도 그냥 계속 앞으로 가는 것은 미필적 고의로 친다는 얘기. 또는 연못에 을 던졌는데 개구리가 사망한다는 등의 예를 들기도 한다. 개구리가 사망해도 어쩔 수 없지 하며 돌을 던지면 그런 인식을 가졌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법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개구리 문제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정확한 내용은 수정바람
판례를 예로 들자면 고시원에서 자신의 요구르트를 다른 사람이 계속 훔쳐먹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 자신의 요구르트에 농약을 섞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농약넣은 요구르트를 자신이 직접 남에게 먹인 것이 아니었지만 아무런 경고 없이 냉장고에 넣어두면 그 사람이 먹을 것을 예상하고 행한 행동이므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어 처벌받았다.
비슷하지만 비교되는 개념으로 '인식 있는 과실'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결과가 발생할지도 몰라, 그런데 아마 안 발생할 꺼야"라고 생각하면서 행위를 하는것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아파트 베란다로 쓰레기를 던지는데 던지기 직전 아래쪽에 사람이 걷는 걸 보면서 "맞을 수 있긴 한데 설마 맞겠어? 에이, 안 맞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던졌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진짜로 맞은 경우이다.[5]
실제적인 예를 들자면 미필적 고의는 '그럴 것도 같네. 후우, 하지만 하는 수 없지.'에 해당하며 인식있는 과실은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에이, 설마 그렇겠어.'에 해당한다. 예시에 따르면 심정적인 구분이 간단하며, 전공자 혹은 법학을 이론적으로 학습하는 사람으로서야 구분이 쉽지만 현실적으로는 독심술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을 구별하기 매우 어려우며, 형사소송에서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모든 사정을 검사가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는 쉽게 인정되지 않는다. 인식 있는 과실과 미필적 고의를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형법학에서도 견해의 대립이 심한 부분으로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경계가 아리송한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을 왜 구별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이 많을 것인데, 설명하자면 고의라는 것은 사람의 의도를 말하는 것인데, 인식 있는 과실에서의 결과발생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상황판단일 뿐, 의도가 아니고, 어쨌든 결과 그 자체에 대한 태도는 부정적이므로 이를 고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필적 고의에 대한 유명한 사건으로는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이 있다. 이윤상을 결박해 놓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니 사망했다는 주영형의 진술을 인정하긴 했으나, 그가 피해자 이윤상 군을 결박해놓고 아이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방치해 두고 나가버린 결과 아이가 사망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주영형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즉 유괴'치사'가 아닌 유괴'살인'의 유죄를 인정한 것. (대법원 1982.11.23 선고 82도2024 판결)[6] 그나마 유명(?)한 인식있는 과실에 해당하는 사고는 '음주운전 과 '무면허운전''[7]을 들 수 있다.
다만 미필적 고의의 경우 인정되더라도 피해자의 사망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경우나 일부 악질적인 케이스[8] 외에는 확정적 고의보다는 형량이 다소 깎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월호 선장 이준석의 경우, 2015년 11월 12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판결 결과 대형인명사고에 있어 부작위범 좀 더 정확히는 부진정부작위에 의한 살인범의 최초 인정 판례로써 헌정사상 매우 의미있는 판례로 남게 되었다. 즉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작위의무 위반) 살인이 되느냐를 고려하여 판결하는 것이지, 실질적으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느냐는 없었느냐는 이준석 선장에 대한 고려사항이 아니다는 것이다. 고의와 관련없이 죄가 매우 중대하므로 부작위(정확히는 부진정부작위범으로써)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준석 선장 관련 '구조행위 부작위에 의한 살인'은 실제 중대 판례가 없다시피 하였고, 응당 이에 대하여 학설이 난립하여 '최초구조가능시간'을 초과했을 때 살인의 기수에 이른다는 이론, 혹은 '최후구조가능시간'을 초과하여 기수에 이른다는 이론, 혹은 그 절충설 등이 있었는데 대법원에서도 고법 판결을 사실상 인용하게 되어 최초 판례로 남게 되었다. 실제로 법을 과다하게 적용하면 단순 비겁자들을 살인자로 규정하는 지나친 법적용이 이뤄질 수 있는 문제가 있다.
가령 미필적 고의에 대한 최근의 이슈는 윤일병 사건이 적당하다 할 것으로, 특히 윤일병 사건은 위에서 언급한 미필적 고의에 따른 살인인가 혹은 인식있는 과실에 따른 상해치사인가가 쟁점인데 대법원은 주범의 경우 치명적인 신체부위를 계속 폭행했고 쓰러진 뒤에도 폭행을 계속하려 든 사실로 미루어 피해자의 죽음을 적어도 용인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지만, 다른 피고인들은 주범의 지시를 받아 범행에 가담한 사실과 폭행의 정도 및 의식 잃은 피해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한 점 등을 감안하면 피해자의 죽음을 용인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다만 죄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므로 상해치사 등 다른 형태의 처벌은 가능하다.
다만, 대부분의 사건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재판 항목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대개의 안전불감증 사고의 경우에는 고의의 입증이 어렵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씁 어쩔 수 없지라고 시공을 할 정신나간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었어도 인식있는 과실로 보아 과실범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형량이 적은 것 아니냐라는 분노를 느낄 법도 하지만, 삼풍백화점 사건의 경우에는 이런 이유로 살인은 인정되지 않았고, 법관은 대신 시공변경을 위해 뇌물을 준 혐의까지 붙여서 법이 허용하는 범위의 최대한에 해당될 정도로 엄벌한 것이다. 오늘날이라도 이런 사고의 대부분은 비슷한 형량이 적용될 공산이 크며, 세월호 사건은 이거 저거 예외가 붙고 또 붙어서 살인죄가 적용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 사건에서도 느끼는 바와 같이 인식있는 과실범에 대한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은 일반인의 법감정에는 그리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고 이를 반영해서인지 독일에서는 인식있는 과실을 인식없는 과실보다 중하게 처벌하도록 입법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형법에서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2. 개그 콘서트의 전 코너


미필적 고의(개그 콘서트) 문서로.

[1] 중요한 것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욱해서 사람을 때렸는데 갑자기 죽었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예견이 가능하지만 죽어도 상관없다는 투로 때렸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므로 상해치사죄가 성립한다. 이렇게 인지한 것만으로는 그릇된 행동의 결과가 사람의 사망으로 이어져 형량이 가중되는 결과적 가중범만 성립하며, 죽어도 상관없다는 의사가 100% 명백해야만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데 법원에서도 판단하는 것 자체가 골치아프다고 한다.[2] 미필적 고의를 한자로 쓸 때는 未的故意라고 쓰지만 未的故意라고도 쓴다. 畢(다할 필)은 군필(군역을 다함), 미필(군역을 다하지 않음)에도 사용된다. 미필적 고의의 개념이 고의의 구성요소인 인식과 의욕에서 의욕이 확정적 고의에 이르지 못하지만 없다고 보지 못하는 약한 정도일 때 고의를 인정하는 개념이므로 다할 필을 사용하기도 한다. 대부분 未必的故意로 사용하지만 성낙인 교수를 비롯하여 몇몇 교수의 논문, 수업에서는 未畢的故意라고 쓰므로 법학을 공부하는 위키러들은 참조. 다만 반드시 필 자가 "~~를 의도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예가 분명히 있긴 있고 그 대표적인 예가 이순신의 필생즉사 필사즉생이다.[3] 심신장애 제도는 고의를 조각시키는 제도가 아니라 책임을 조각시키는 제도다. 정신병이 있는 사람도 고의는 있지만 그 고의에 대해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뜻.[4] 학설에 따라 정의가 다르다. 이하는 다수설인 용인설 내지 감수설을 위주로 작성되었다.[5]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려면 '맞더라도 할 수 없지.' 이 정도 인식이 필요한데 앞의 이 인식이 인식있는 과실과 크게 차이가 없어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둘의 구분이 힘들다.[6] 유괴치사였다면 사형 판결은 내려질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유괴치사의 형량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이었다.[7]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미필적 고의로 볼 수도 있지만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상 11대 중과실 사고로 분류하고 있다. 참고로 무면허운전의 경우는 본인이 무면허 사실을 알면서도 차량을 운행하다 사고를 냈을 경우는 인식 있는 과실에 해당하지만 운행할 수 있는 차량이 아님에도 기존 면허로 운행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운행하다 사고를 냈을 경우는 중과실로 보게 된다.[8] 삼촌이 조카를 물에 던졌는데, 올라오려 들자 다시 물에 던지고는 방치하여 익사하게 만든 사건에서 법원은 살인죄를 인정하여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