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 (r20180326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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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士官
2. 史觀
3. 史官
3.1. 인터넷 은어
4. 四關
5. 寺觀


1. 士官


  • 군사조직/준군사조직
    • 일본군에서 장교를 이렇게 불렀었다. 대한민국에서 장교를 교육시키는 기관을 사관학교라고 부른다. 자세한 건 장교 참조. 군대가 없는 현대 일본에서는 삼등위(三等尉) 이상의 자위관을 장교 대신 간부라고 부른다.
      • 그 외에도 민간 상선의 선장, 기관장, 항해사 등 간부 선원을 상선사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전 서양에서 상선의 간부 선원들이 예비역 해군 장교 의무를 진 데서 유래하며, 제복도 해군 장교 정복과 유사한 정복과 금테 계급장을 사용하기도 한다. 영어 해군 계급인 Captain(대령)은 말 그대로 선장에서 따왔고 Admiral(제독)은 상선단장에서 따온 표현이다. 해군이 평소엔 소수의 현역으로 유지되다 전시에 상선사관들을 징발해 그대로 해군 장교로 썼기 때문. 상비군이 발달한 지금은 이렇게까진 하지 않지만 전시에 상선은 언제든 징발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아예 상선사관을 양성하는 한국의 해양대학교 격인 미국상선단사관학교를 군 사관학교에 준해 운영하고 있다.
  • 중화권(중화민국군/계급)이나 북한에서 사관은 부사관을 뜻한다. 장교군관이라고 한다.
  • 비군사
    • 한국과 일본, 홍콩 등의 구세군에서는 성직자를 사관으로 지칭하며, 평신도 지도자를 하사관(특무정교,정교,부교)으로 지칭한다. 한국구세군사관학교는 1908년 개교했으며, 지금은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로 개편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조선 포함)에서 사관학교라는 명칭은 구세군이 제일 먼저 사용하였다.

2. 史觀


역사를 보는 관점. 대표적으로 민족사관, 실증사관, 식민사관 등이 있다. 이게 잘못되면 역사 왜곡이 벌어진다.

3. 史官


태종: "사관의 붓은 곧게 써야 한다. 비록 대전 밖에 있더라도 내 말을 듣지 못하겠는가?(史筆宜直書。雖在殿外, 豈不得聞予言!)"

사관 민인생: "신이 곧게 쓰지 않는다면 신의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臣如不直, 上有皇天。)."

<태종실록>, 태종 1년(1401년) 4월 29일. 태종이 왕이 평소에 기거하는 편전까지 사관이 입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자 이를 두고 태종이 민인생과 논쟁을 하는 기록이다.
역사를 기록하고 그 기록을 관리하여 실록을 쓰는 직책. 사극에서 마주 앉아 뭔가(사초)를 쓰고 있는 사람이 바로 사관.
조선 시대에는 역사를 중요시해서 이 직책 또한 중요시되었다. 보통 사관은 춘추관의 관원이 겸직하는데 실력과 가문이 두루 좋은 인재를 뽑았다. 젊은 사관들은 자부심과 사명감이 투철해 자연히 왕과 권력자들에게는 껄끄러운 존재였으며 수난도 많이 당했다. 하지만 후기 들어서면서부터는 사관도 당색에 물들어 사관들의 평가가 편파성을 띄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승정원일기를 작성하는 승정원의 정7품 주서(注書),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 주서의 자리가 비었을 때 임명하는 임시직)도 넓은 의미에서 사관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승정원일기 특성상 '사신은 논한다'로 시작하는 사관으로서 평가는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관의 기록인 사초는 실록 편찬 전까지는 그 누구도 열람할 수가 없다. 심지어 왕이라고 해도. 실제로 연산군이 무오사화 때 이를 읽어보고 사관들을 대거 숙청하였다.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쫒겨난 이후에는 더더욱 사관들이 강건해져서 왕이 실록 얘기를 꺼내기만 해도, "연산이다.. 연산이 했던 짓이다...!" 라며 치를 떠니 감히 임금들이 행할 수 없었다. 더불어 사관들조차도 기록을 적은 왕이 승하(昇遐)한 후에야 실록 편찬의 목적으로 열람이 가능하다.
조선왕조 실록 중종 14년(1519년) 4월 22일의 기록을 보면 신료들이 남성인 사관이 드나들 수 없는 규문에서 기록을 담당할 여사(女史)를 둘 것을 청하기도 했다.
사관 중에서 가장 네임드를 꼽으라면 역시 태종 시대의 민인생으로 실록을 쓰려고 고위 관료만 참석할 수 있는 연회 때 몰래 따라가고, 얼굴을 가리고 태종의 사냥을 쫓아가는 등 거의 사관이라기보단 스토커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다. 그러다가 태종이 편전입시를 허락하지 않아 휘장 안에 숨어 엿본 것이 발각나 귀양을 가 결국 그 전설의 막을 내린다. 조선왕조실록과 사관들의 비범함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그 기록인 '왕께서 말에서 떨어졌는데 사관보고 이를 쓰지 말라고 하였다'도 바로 태종 때의 기록이다.(태종실록 7권, 태종 4년 2월 8일 기묘 4번째 기사)
참고로 고려 시대에도 있었다. 역할은 조선과 비슷했다. 실록조선왕조실록을 참조하자.

3.1. 인터넷 은어


인터넷의 사건을 나무위키에 기록하는 위키러(이른바 '나무위키니트')들을 위키 외부에서 지칭하는 별명.
여성시대 해명글 조작 사태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을 다루던 나무위키의 문서들이 무도갤에 알려졌고, 이에 무도갤러들이 나무위키니트들을 사관이라 부른 것이 그 유래이다.
이후 나무위키니트의 모에화이루어졌다[1]. 오늘의유머에서 내리는 최고 형벌이 모에화형이라 저게 진짜 칭찬인지 헷갈릴 수 있겠지만, 오유인들에겐 최고 칭찬도 모에화기 때문에...
사실 사관의 이미지가 퍼지기 전인 리그베다 위키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기록하던 습관은 줄곧 이어져 오고 있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든지 아니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라든지... 특히나 해당 문서에 대한 반달리즘이 시작되면 더 악착같이 다 기록하고 보존해 놓아서, 예수쟁이/사건사고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 같은 문서들의 경우 오히려 반달 전보다 더 방대하고 세세한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래도 반달이 계속되면 반달 방지를 위해 동결처리로 묶어버려서 더 이상의 기록이 불가능할지언정 훼손되지 않게끔 해 두곤 했다. 단지 여성시대 사건 이전에는 이것을 두고 "니트들의 잉여력 발산" 이라며 자조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아카이브까지 이용해서 확실하게 기록을 남겨놓는지라 그 덕분에 박제사라는 별칭도 생겼다.
나무위키 입장에서는 상당한 홍보 및 이미지 마케팅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좋다구나 하고 사관 행세를 하고 다니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부여하는 특별한 호칭은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은 남들과는 다르다는 착각에 빠지게 해서 완장질이나 친목질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지성을 자칭하며 스노비즘에 빠졌던 과거의 폐해는 지금도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다.
일부 타 웹사이트에서는 위키러들이 사관 사관 거리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웃기지도 않는 별칭을 달고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하하거리는 꼬라지가 보기 좋지는 않기 때문. 애당초 사관이라는 별칭을 수여한 디씨인사이드를 비롯한 여타 커뮤니티에서도 이미 위키니트들이 사관을 자칭하는 것이 건방지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디씨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여성시대와 싸우던 적극적으로 싸우던 갤들 한정일 뿐이고, 그 무도갤러들중 위키 기여활동 사실을 밝히거나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중이짓 내지는 자화자찬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무위키 내에서도 사관이라는 호칭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유저들이 예전부터 줄곧 있어왔다.[2]
무엇보다 사건/사고를 기록하는 것만이 나무위키를 이용하는 위키러들의 목적은 아니다. 나무위키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정보의 제공이다. 나무위키에는 수십만 개에 달하는 문서가 있으며, 그 수집한 막대한 정보를 토론을 통해 가공하는 것이 주활동이다. 사관이란 단어는 해당 사이트들에서 흔히 나오는 말처럼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이는 위키러 전체를 표상하기엔 적절치 않고, 나무위키에 대한 오해가 담긴 표현이며, 자칫 이러한 오해를 확대시킬수도 있는 단어이다. 그러니 사관이란 단어에 위키러 전체를 대표하는 의미를 부여하거나 재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위키 작성은 돈이 나와서 하는 것도 아니고, 위키니트들이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작성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발적인 취미생활로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무위키 측에서 사관이라는 호칭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걸 알았는지, 더 민망한 호칭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3]
문재인 정부출범 이후부터는 일 단위로 세세하게 행적을 기록하게 되면서 사전적 의미에도 부합하는 사관일을 하게 되었다.
...라고 하는데 세세하게 비판은 빼거나 변명 쩔어주게 덧붙여 주면서 기록하고 있다. 이런 짓을 사관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관을 모독하는 행위다.
물론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선발된 사관들만이 기록할 수 있었던 실록"[4] 과 달리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적는 위키 특성상 특정인물을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사람들이 "반대 그 자체만을 위한 프로불편러적 시각으로"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입장의 논리에 일방적으로 함몰되어 편향되게 적어주는 경우가 매우 많다. 심지어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위키에 링크를 찍고 집단으로 난입하는 경우들도 자주 발생한다.[5]
반면 나무위키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사관이라는 표현을 쓴다. 물론 반어적으로 비꼬는 의미. 특히 이는 나무라이브에 팽배해 있는 정서이기도 하며, 나뮈병이라는 표현과 대체되면서 쓰인다. 사실, 사관은 나무위키처럼 객관적인 정보에 사담을 끼워넣는 일따윈 절대 하지 않으며, ...등의 표현도 절대 써선 안되는거다.


4. 四關


한의학에서 양팔의 어깨 관절과 팔꿈치 관절, 양다리의 대퇴 관절과 무릎 관절을 이르는 말. 또는 수양명대장경의 원혈(原穴) 합곡(合谷)과 족궐음간경의 원혈(原穴) 인 태충(太衝)을 말한다. 임상이나 학부에서는 이쪽의 의미로 더 잘 쓰이는 듯. 사관의 사전적 의미는 4개의 관문이라는 뜻으로 양손의 합곡은 기(氣)를 주(主)하고, 양발의 태충은 혈(血)을 주(主)한다. 한의학에서 임산부를 제외한 여러 환자에게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혈위이기도 하다.

5. 寺觀


도관을 이르는 말.

[1] 위키니트들이 사관으로, 나무위키는 실록으로 모에화되었다. 뒤쪽은 아카이브 링크.[2] 실제로 여성시대 관련 문서 토론방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주제 중 하나가 사관드립을 삭제하자는 것이다.[3] 심지어는 위키니트들 스스로 자폭하는 드립으로도 쓰는 중이다.[4] 조선시대 사관들은 전문적인 유학자로서의 소양과 학문 능력을 갖춘 엘리트 인재들이다. 이들을 선발하는데는 조건 또한 까다로웠는데 학문의 깊이는 기본으로 전제한 상태에서 사관이 될 인물이 속한 가문에서 발생한 뇌물과 같은 부정축재여부조차도 조사가 들어갔다.[5] 로그인 사람들만 기록하게 하는 것도 사실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되진 않는다. 이미 이러한 반달은 예전부터 존재했으며 나무위키는 이들로 인해 수많은 반달 사례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