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 (r20180326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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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적인 의미
2. 후한 말의 서예가


1. 일반적인 의미


  • 葬地 : 장례를 지내는 땅. 매장을 할 때 이 단어를 쓴다. 시신을 묻으려면 땅이 필요하니까.
  • 障子 : 방과 방 사이의 칸을 막아 끼우는 문.
  • 長旨 : 서울특별시에 있는 장지동(長旨洞). 자세한 내용은 송파구 항목 참조.
  • 長指 : 다섯 손가락 중에서 가장 긴 셋째 손가락. 즉, 중지 손가락. 발가락의 경우는 엄지 발가락을 장지라 한다.
  • 壯紙 : 두껍고 질기며 질이 좋은 종이.

2. 후한 말의 서예가


張芝
생몰년도 미상
중국 후한 말기의 서예가로 자는 백영(伯英). 주천 출생[1]으로 장환의 아들이자 장창, 장맹의 형이며, 장초에 탁월한 삭정(索靖)은 넛손자(그의 누이의 손자)다.
두도(杜度), 최원(崔瑗)의 서법을 배웠다고 하며, 그때까지는 별 볼일 없는 초서의 한 가지였던 장초(章草)에 뛰어나 장초를 서법 예술의 최고봉으로 끌어올려 독립적으로 감상할 가치가 있는 예술로 발달시킨 인물이다.
이 공으로 위나라의 위탄으로부터 초성(草聖)이라고 떠받들어졌으며[2], 당나라의 장회관은 장지의 장초를 장초가 아니라 금초라 하며 장지를 금초의 창시자라고 했다.
그의 생애에 관해서 알려진 점은 매우 적은데, 속세의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은거하면서 오로지 서예의 도만 닦다가 초평 연간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으로 그의 서예에 관련된 유명한 일화로 죽간, 종이를 살 돈이 아까워서 베, 집안의 옷, 비단이 있으면 거기에 글을 썼다가 글을 쓴 뒤에 물을 빼고 삶아서 빨았다고 하며, 연못가의 작은 돌에도 글씨를 쓰고서는 물로 씻기를 수없이 되풀이하여 마침내 연못의 물이 먹물로 까맣게 변하였다고 하는 고사 임지학서의 유래가 되었다.
이 고사로 인해 후세에 서도를 배우는 것을 "임지(臨池)의 기(技)" 라고 이르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게 너무 유명해진 이야기기라 웬만한 서예가들도 다 이야기를 써서 왕희지, 한석봉 들도 모두 이와 관련된 일화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일종의 서예가들 사이의 클리셰라 할 수 있다. 덕분에 서예가가 사는 곳 하류에서는 빨래를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제(?)였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일종의 환경파괴
왕희지의 아버지가 장지가 서법 연습을 한 이야기를 꾸준히 들려줬다는 얘기가 있으며, 왕희지는 장지를 높이 평가했을[3] 정도라 실력이 매우 뛰어날 것이라고 추측되지만 그의 저서인 필심론 등 5편은 이미 실전되어 진적이라고 남겨진 순화각첩, 관군첩, 연면 대초 등의 작은 후인의 위작이거나 모작이라 추측되어 그의 것이라고 확신되는 유묵(遺墨)은 추량평선첩(秋凉平善帖), 월의첩(月儀帖)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 물론 이것도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장화의 박물지에 따르면 홍농 출생으로 장지와 장창, 원자연, 최식, 최원 등이 초서를 잘 썼다고 하는데, 그 바로 다음에 내용이 조조도 이들만큼 초서를 잘 썼다는 기록으로 조조를 띄우는 것에 사용했지만 정작 조조는 이들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나무위키의 뇌피셜이고 장지,장창 형제는 서예의 대가라 조조가 아끼고 교류했으며 막내 장맹은 조조에게 출사하였다
그의 제자로는 강허(姜詡), 양선(梁宣), 전언화(田彥和), 위탄 등이 있고 초서에 능했다고 한다.
남북조시대 유송의 화가 육탐미가 장지의 초서를 배웠다는 표현이 나오거나 이익이 지은 성호사설의 10권에서도 장지 를 언급하면서 임지학서에 대한 표현이 나올 정도로 유명했다.
[1] 무제기에는 홍농 출생이라고 나오는데, 이는 아버지인 장환이 출생지를 조정으로부터 옮기는 것을 허락받았기 때문이다.[2] 특히 이 삼국시대에는 장지의 필체가 붐을 타고 널리 퍼져 고위관직자들의 묘에서도 장초가 발견될 정도 였다.[3] 물론 장지를 찬양할 때 종요도 같이 찬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