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r20180326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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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12183a><#12183a> 아시아 축구 연맹(AFC) 회원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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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中国国家足球队
정식명칭
中国国家足球队[1]
FIFA 코드
CHN
협회
중화인민공화국 축구협회 (CFA)
연맹
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연맹
동아시아 축구 연맹 (EAFF)
감독
마르첼로 리피 (Marcello Lippi)
주장
정즈 (Zheng Zhi)
최다출전자
리웨이펑 (Li Weifeng) 112경기
최다득점자
하오하이동 (Hao Haidong) 41골
첫 국제경기 출전
VS 핀란드 (0:4 패), 핀란드 헬싱키 (1952년 8월 4일)
최다 점수차 승리
VS (19:0 승), 베트남 호치민 시 (2000년 1월 26일)
최다 점수차 패배
VS 브라질 (0:8 패), 브라질 헤시피 (2012년 9월 10일)
별칭
龙之队 (용의 팀), 万里长城 (만리장성),
国猪 (궈주) [2]
월드컵
출전 1회 (2002)
아시안컵
출전 11회, 준우승 2회 (1984, 2004)
동아시안컵
출전 5회, 우승 2회 (2005, 2010)
올림픽
출전 2회 (1988, 2008)
담당일진
대한민국
유니폼

어웨이
상의
빨강
노랑[3]
하의
빨강
노랑
양말
노랑[4]
노랑[5]
1. 개요
1.1. 역사
1.2. 중화민국 시절 (1913-1949)
1.3. FIFA 탈퇴기(1950~1979)
1.4. FIFA 복귀 이후 (1980-2002)
1.5. 2002년 이후
2. 안습의 역사
3. 중국 축구가 약체인 이유
4. 미래의 가능성
5. 그래도 여자축구 대표팀은...
6. 역대감독 (2000년대 이후)
7. 역대전적
8. 관련 문서


1. 개요


메인 컬러는 빨간색. 아르헨티나(하늘색 줄무늬), 네덜란드(주황색), 크로아티아(빨간색 체크무늬) 등과 함께 종목 불문하고 유니폼 보면 저거 중국이구나 할 정도로 전 종목 컬러가 뚜렷한 팀 중 하나이다.[6]
감독은 2016년 1월 1일 기준으로는 알랭 페랭이었으나,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아시아)에서의 부진을 계기로 2016년 1월 8일, 전격 경질되었다. 이후 외국인 감독들과 지속적으로 접촉을 시도하다가 2016년 2월 3일, 결국 가오홍보가 다시 감독직에 앉았다. 그러나, 그 역시 성적부진으로 그해 가을에 사임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명장인 마르첼로 리피가 새 감독을 맡았다.
2010년대 후반 들어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벤치마킹해서 약한 실력을 강력한 경기장으로 커버하고 있다. 그 미친 라파스에스타디오 에르난도 실레스 스타디움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꽤나 골치아픈 쿤밍투오동 스포츠 센터 스타디움의 고지대에서 경기를 벌인 바 있다.

1.1. 역사



1.2. 중화민국 시절 (1913-1949)


중화민국이 대륙에 있던 시절부터 축구는 인기스포츠였다. 신해혁명으로 건국된 지 2년만인 1913년 아시안 게임의 전신인 극동챔피언쉽 게임 (Far Eastern Championship game)에 축구대표팀을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중국의 라이벌은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이었다. [7] 1931년 중화민국은 FIFA에 가입하였다.
1936 베를린 올림픽에도 축구 대표팀을 보냈는데 영국 축구대표팀에 2-0으로 패했다.[8] 이 당시 출전한 선수중에 홍콩 배우 알란 탐의 아버지인 담강백이 있는데, 이분은 아시아 축구왕이라고 불리던 선수였다. 이분은 중국이 공산화되자 홍콩에 정착했다.

1.3. FIFA 탈퇴기(1950~1979)


중국이 본토가 공산화되고 축협 고위직을 점하던 국민당 고관들이 대부분 대만으로 도피하자 1952년 새로 축협이 구성되었다. 1952년 대만의 중화민국을 대신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FIFA에 재가입했다. 하지만 피파가 대만을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회원국 자격을 인정하자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피파를 탈퇴했고, 중국 축구 국대는 국제대회에 나서지 못하고 공산권 우방국들과의 친선전에만 나서게 된다. 더구나 1967년 문화대혁명이 발생하면서 축구 및 다른 스포츠는 "자본주의 오락"로 단죄되어 많은 축구팀이 해체되고 국가대표팀도 당연히 해체되었다. 많은 선수나 지도자들이 "혁명의식이 부족하다"며 시골 오지로 끌려가 삽질을 했다. 이렇게 10여년간 중국 국내에서 공식 경기가 전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안그래도 고립되어 저하된 중국의 축구실력은 10여년간 계속된 문화대혁명 때문에 더 떨어지게 된다.
1971년 유엔중화인민공화국을 유일한 합법정권으로 승인하자, 피파도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국대로 선언하였고, 중국이 들어오면서 축출된 중화민국은 후에 차이니스 타이페이라는 이름으로 재가입한다. 그리하여 1979년 다시 중국은 피파에 재가입하고 국제교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1.4. FIFA 복귀 이후 (1980-2002)


1980년부터 각종 국제대회 및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 참가하기 시작했으나, 번번히 떨어졌다. 동북아 4개국 대항전인 다이내스티컵에도 매번 참가했으나, 우승은 한 바 없었다.
2002년에 보라 밀루티노비치 호를 내세운 중국 국대는 대한민국일본은 공동 개최국 자격이었기에 지역예선에서 빠지면서 2002년 월드컵에 겨우 참가했으나[9], 조별예선에서 브라질, 터키, 코스타리카 등에 소속된 C조에서 승점자판기 역할을 하면서 3패로 광탈하였다.

1.5. 2002년 이후


2004년에는 자국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에서 일본에게 결승전에서 3-1로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4년 안도라를 상대로 0대0 비긴적도 있다. 축구는 인구로 하는것이 아니다.
200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2차예선 4조에 포함, 홍콩, 말레이시아, 쿠웨이트와 1위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5승 1패로 쿠웨이트와 동률을 이뤘으나 승자승 원칙으로 최종 3차예선에 올라가지 못한다. 만약 올라갔다고 해도 한국, 사우디, 우즈벡, 쿠웨이트 (A조) [10]로 구성된 최종 3차 예선에서 사우디나 한국을 뚫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2010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3차예선 1조 (중국, 카타르, 이라크, 호주)에 포함되었으나, 1승 3무 2패의 조 최하위로 4차최종 예선에 올라가지 못하고 탈락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201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3차예선 A조 (중국, 싱가포르, 요르단, 이라크)에 포함되었으나, 3승 3패 3위로 4차 최종 예선에 올라가지 못하고 탈락하였다.
2018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그동안 번번히 2-3차 예선에서 고배를 마시던 전통을 깨고 최종예선까지 올라왔으나 한국, 이란, 카타르, 시리아, 우즈벡이 포함된 A조에서 5위로 마감하였다. 하지만 가오홍보사퇴한 이후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맡으면서 경기력이 급상승, 한국, 카타르, 우즈벡을 이김으로써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었다.

2. 안습의 역사


우선 월드컵 진출이 단 1회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1회 월드컵도 2002년 한일 월드컵인데, 중국은 아시아의 강호들인 대한민국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써 예선전도 치르지 않고 출전한 덕분에 그 남은 자리를 겨우겨우 통과한 것이다. 중화민국과의 정치적인 문제로 출전 금지를 당한 적도 있었지만, 1970년대 이후 중화민국이 상임이사국에서 퇴출되고 전세가 역전되면서 더 이상 정치적인 문제로 출전 금지를 당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아시아권에서조차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축구 실력도 2 ~ 3류급 국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처음으로 진출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적으로 진출하고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같은 강호들을 피하고 상대들이 싸그리 약체, 그나마 상대적으로 강호(?)도 아랍에미리트가 고작이던 환상의 꿀조를 만나 운 좋게 겨우 진출했을 뿐이다. 이 대회에서 C조에 배정받았으나 브라질, 터키, 코스타리카 등을 상대로 무득점 9실점, 3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였다. 최종 순위는 뒤에서 2위[11]. 특히, 비록 이 대회의 우승국이긴 했지만, 지역 예선에서는 에콰도르에게까지도 밀릴 정도로 죽을 쑨 브라질에게는 0-4로 압살을 당했다. 뭐, 충분한 변명은 되는 게 브라질의 경우는 원래 전통적으로 남미 지역예선을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 것이 일상다반사다. 브라질도 간신히 올라와서 본선 무대에 진출하면 극강의 힘을 쓰는 '의도적으로 힘을 아끼다 쓰는건지' 아니면 '징크스'인지 그렇긴 하다. 어쨌든간에 브라질은 당시 우승팀이었으니 중국도 0-4로 압살당한 게 그렇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다. 오히려 거기서 5골 이상이나 안 먹힌 게 선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터키도 2002년 이 대회에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고 또 다른 돌풍의 팀이었던 대한민국, 그리고 개최국의 이점인 일본도 떨궈내고 우승국 브라질과도 조별예선과 준결승전(4강전) 2번을 만났는데, 조예선에서는 대한민국인 심판오심으로 1-2로 패배했고, 준결승에선 0-1로 제법 엄청나게 선전한 팀이므로 이런 팀한테 0-3 압살당한 것 역시 그렇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고 나름 중국치곤 선전했다고 봐야 할 듯... 하지만 코스타리카전은... 뭐... 답이 없다. 그냥 못해서 패배한 것이다. 결국 이 조의 순위는 승점자판기였던 중국을 얼마나 잘 털었느냐에 따라 갈린 셈이었다. 당시 코스타리카는 완초페, 폰세카 등을 앞세워 인상적인 공격축구를 했다. 터키와도 접전 끝에 1:1로 비겼으며, 브라질전에서도 막판에 무너지면서 탈락하긴 했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화력을 뽐낸 바가 있다. 괜히 완초페가 2006 월드컵 개막전에서 독일을 괴롭혔던 게 아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월드컵 때 중국이 못한 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후술하는 걸 보면... 중국이 올림픽에 나가면 그 많은 인구의 인해전술 덕분에 미국과 더불어 스포츠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축구만큼은 요상하게 다른 종목들과는 달리 매우 허약하다. 실제로 올림픽에 나가면 중국이 우루과이보다 열등한 종목이 축구가 유일하다.
게다가, 2004년에는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스페인 전지훈련에서 FC 바르셀로나에게 0:6 참패를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 당시 순지하이라든지 몇몇 유럽파 주전은 없었다고 해도 당시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을 대비한 전력을 모두 소집했다는 점에서 변명할 게 없었다. 게다가 당시 주말에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와 엘 클라시코을 앞둔 바르셀로나가 중국전에 호나우지뉴, 에드가 다비즈 등 핵심 주전을 출전시키지 않고도 손쉽게 대승을 거두는 통에 더더욱 망신을 당했었다.[12]
2004년 AFC 아시안컵 준우승에 힘입어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진출하겠다고 선수단과 팬들은 자신했는데, 쿠웨이트 원정에서 0-1로 패한 것이 끝내 발목을 잡아 5승을 거두고도 2차 예선에서 미끄러졌다. 하필이면 같은 조의 말레이시아홍콩이 승점자판기였던 탓에 쿠웨이트와 같은 5승 1패를 거두고 결국 다득점에서 14점을 기록해 15점을 거둔 쿠웨이트에게 밀려 탈락했다. 그리고 2010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에서는 호주·이라크·카타르 등과 묶이는 죽음의 조 편성이 나오는 바람에 광탈크리를 맞고 말았다. 당시 호주와 안방경기를 벌일 당시 일부러 1900미터 높은 고지에 위치한 경기장[13]에서 경기를 했지만[14] 결과는 조 꼴찌로 탈락하고 만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이라크·요르단·싱가포르 등과 한 조에 묶여서 비교적 무난하게 최종예선까지 진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4년 전 카타르와 이라크에게 고전하던 것을 생각하면 중국 축구팬들도 어렵다고 평했고, 예상대로 호구 싱가포르에게만 2승을 거뒀고 마지막 6차전에서 요르단을 이겼지만, 이미 최종예선으로 진출 확정이 된 요르단이 마지막 경기는 쉬엄쉬엄 진행한 탓에 이긴 승리였기에 결국 3위로 또 다시 광탈하고 말았다.
게다가 아시안컵에서도 2007, 2011년 8강조차 가지도 못 하고 연속으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고 있다. 두 대회 모두 조별예선에서 만난 복병 우즈베키스탄에게 덜미를 잡히고 탈락하면서 아시아 대회에서도 별것 아니라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 6월에 가진 스페인과 친선경기에서 의외로 0-1로 지는 통에 이걸로 당시 스페인에게 (2012년 5월 30일 친선경기) 1-4로 대패한 한국보다 낫다고 우쭐거리긴 했지만 까고 있네! 우린 스페인과 2번 무재배도 해봤다고!! 1년만인 2013년 6월 6일, 또 우즈베키스탄에게 평가전에서 1-2로 패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이라면 2007년 친선경기(중국 안방경기)에서 3-1로 이기긴 했다.

그러나, 며칠도 안 가서 가진 경기에서 대굴욕을 당하는데 바로 2013년 6월 15일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무려 1:5 스코어로 대참패를 당했다.태국역대전적은 그동안 12승 3무 2패였으니 중국의 우세였다. 하지만, 태국 선수진들은 대부분이 23살 이하 올림픽 대표팀급이었지만, 중국은 1진급 선수들이 대다수였다. 게다가 그나마 얻은 1점도 보면 그냥 심판의 노골적인 홈빨오심으로 만들어진 페널티킥에서 나온 것이다. 누가보더라도 어이없는 헐리웃액션.
결정적으로 친선경기가 열린 장소조차도 중국 홈 경기였음에도 아시아 2~3류팀을 상대로 그것도 태국에게 이런 대패를 거뒀기에 현지 반응은 폭발적으로 분노했다. 여담으로, 태국은 AFC 아시안컵에서 우승은 커녕 1972년 자국 대회에서 3위를 거둔 걸 빼면 언제나 1라운드 아니면 지역예선에서 언제나 광탈이었고, FIFA 월드컵 본선진출 경험도 전무하다. 대체로 태국은 아시아에서 3류 정도 실력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중국이라고 뭐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경기 당시의 동영상을 봐도, 경기가 끝난 후 처참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욕설과 야유가 터지면서 자국 선수들에게 물병과 오물을 내던지고 분노하는 치우미들(중국 축구팬들의 별칭)의 폭발이 확실히 보였을 정도였다. 심지어 축구광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도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참패하는 소식에 노발대발했다는 기사도 실렸을 정도였다.#
이렇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진출이 3차 예선에서 탈락한 이후,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하며 날로 입지가 위태롭던 스페인 출신의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15]은 이 대패로 인해 계약 기간이 아직 1년 남짓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광속으로 경질당했다.[16]
하여튼 이 패배를 잊지 못한 중국은 시진핑 황제한테 온갖 개갈굼을 먹고 나서 2014년 10월 10일 태국과 재평가전을 가져서 안방에서 3:0으로 이기며 일단 설욕은 했다. 하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16강전에서 태국에게 0:2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월드컵 2차예선에서 부탄을 원정경기에서 부탄 팬들의 엄청난 야유에도 불구하고 6:0으로 가볍게 이기는가 했는데... 전승절에 또다시 안습전설을 만들어내며 시진핑을 빡치게 만든다. 사실 최약체 부탄을 이긴 것도 자랑도 아니긴 하다. 전승절 이후 11월 또 다시 시진핑을 홧병걸리게 만들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알랭 페랭 국대 감독은 경질되었고, 벌써부터 이번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포기하고 2022 카타르 월드컵이나 노리자고 이러고 있는 판국이다. 그리고, 후임 감독으로는 2010년 동아시안컵에서 공한증을 깨는데 성공했던 가오홍보 감독이 재선임되었다. 다만, 월드컵 지역 2차 예선까지만 맡기고 이후에는 외국인 사령탑을 다시 선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조 1위 자리를 카타르에게 압도적으로 넘긴 터에 홍콩에게 고전 끝에 2위를 차지한다고 쳐도, 꼴찌 부탄 전의 득점을 빼고 골득실을 계산한다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최종예선조차 못 가고 탈락할 가능성이 높았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카타르를 잡고 북한필리핀에게 역전패 당하는 기적으로 간신히 최종예선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월드컵 본선의 길은 멀기만 하다.
아니나 다를까, 최종예선 3차전에서 최약체 시리아... 한테 안방에서 0-1로 패했다. 중국은 이 결과로 A조 5위로 떨어시면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진출에 적신호가 켜졌다...결국 감독 교체 초강수를 두었고 한국 격파를 포함 최종전까지 PO티켓 획득 가능성을 남기고 최종전도 이겼으나, 워낙 초반에 잃은 게 많고, 한국과 이란이 모두 승리하지 못해서 또 낙방했다.

3. 중국 축구가 약체인 이유


사실, 중국이 축구를 잘해야 할 이유는 많다.
  • 축구를 좋아하는 열성팬인 치우미들이 매우 많다.
  • 14억에 달하는 인구를 자랑하므로 축구를 잘하는 23인을 모으기가 다른 나라보다 쉽다. 스포츠가 제대로 발전할 정도의 부와 생활수준을 가진 계층을 추려내고 한족보다 푸대접을 받는 소수민족을 제외해도 스포츠 빅마켓이라는 미국 인구 수의 3배 가까운 수준이며 축구 인기가 열성적인 대륙 유럽의 인구를 2배 이상 앞선다. 세계축구 4대 본좌국인 브라질 - 독일 - 이탈리아 - 아르헨티나 4개국 인구를 다 합쳐도 4억이 안된다. 그나마도 브라질 인구가 2억이고.
  • 중국 슈퍼 리그라는 거대한 축구리그가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 슈퍼 리그에는 디디에 드록바, 에세키엘 라베찌 등 쟁쟁한 선수들도 뛴 적이 있다.
  • 돈이 많다. 축구에 투자할 자금이 넉넉하므로 그만큼 축구 발전이 용이하다.
  • 중국의 정치가, 지도자 중에도 축구광이 매우 많다. 국가정책으로 현재 축구굴기라고 부르며 축구발전을 위해서 온갖 역량을 쏟는 중이다. 덩샤오핑의 소원이 살아생전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었고, 현재 중국 주석 시진핑도 축구광으로 유명하다.
  • FIFA에서도 중국의 거대한 시장을 노리고 있어서, 진심으로 중국 축구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오죽하면, 2016년에 FIFA회장인 잔니 인판티노FIFA 월드컵 본선진출 티켓을 40~48장으로 늘리겠다는 말을 한 배경으로 중국의 월드컵 진출을 뽑을 정도다... 정확하게는 FIFA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 시장을 염두에 둔 발언이지만, 중국의 비중이 큰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의 부재
중국은 올림픽에서 메달따기 용이하고 적은 비용으로도 성과를 보기 쉬운 개인종목 위주로 엘리트 체육을 육성하였다. 대표적으로 육상, 수영, 체조 등등. 운동신경이나 신체조건이 좋은 선수들은 대부분 그쪽으로 갔고, 축구같이 실력을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고 선수가 아니라 리그를 키워야하는 종목의 육성은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소극적이었다. 이장수가 지적했지만, 중국의 등록선수는 인구에 비해서 매우 적으며, 2000년대까지는 등록선수가 한국보다도 적었다. 학교체육을 중심으로 축구를 발전시킨 한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학교 축구부도 그다지 많지 않다. 중국은 자국 대표팀이 여러 굴욕을 당한 2010년대 들어서야 유소년 시스템을 정비하는 중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체육부가 구성되지 않은 일반 학교에서 재능이 특출난 유망주들을 발굴하는 식으로 선수를 수급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 1980년대에야 겨우 시작된 현대적인 축구 문화
중국의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축구는 정치격변때문에 전통이 깡그리 단절되고 1980년대에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다보니 모든 면에서 미숙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장수의 증언에 의하면 중국 선수들은 경기 전날에도 술판을 벌이거나 평소 흡연을 하는 일이 잦았다고 하며, 감독이 된 후 이를 금지시켰다고. 최강희도 선수시절 그랫는데..
  • 2004년이라는 비교적 늦게 출범한 현대적인 축구리그
K리그가 1980년대 J리그가 1990년대 시작한 것에 비해서 중국 슈퍼 리그는 2004년에야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중국에는 아마추어나 세미프로 리그는 있었지만, 본격적인 프로리그는 2000년대 들어서야 시작된 것이고 초창기의 모든 면이 시행착오의 연속일 수밖에 없듯이,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 문화적인 문제
라 리가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베이징 궈안상하이 선화의 감독을 역임한 그레고리오 만사노는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축구가 잘 안되는 이유로 상명하복 문화를 들었다. 그리고 이런 문화때문에 중국 선수들이 감독의 권위에 순종적이고 잘 따르지만, 현대 축구 전술을 중국 선수들에게 이해시키는게 힘들었다고 한다.# [17]

이러다 보니 덩샤오핑도 평생 소원 중 하나였던 자국이 월드컵 본선에 가는 것도 보지도 못하고[18] 1997년에 사망했을 정도다. 덩샤오핑이 5년만 더 살아 99세만 찍었어도... 하늘의 도움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출전했지만, 한 골도 못 넣고 광탈했다(...). 물론 당시 대회 우승국에 3위팀인 브라질과 터키가 있는 나름 딴에 중국 입장서는 죽음의 조 중 하나에 편성된 셈이므로 변명거리는 된다. 중국 축구가 이상할 정도로 약하다는 사실은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지 구글에는 "Why is Chinese soccer so bad"(왜 중국 축구는 개판초라한가?)라는 연관검색어가 다 뜰 정도... 참고로 Korean이나 Japanese를 넣으면 아무 것도 안 나온다. 월드컵 시즌을 맞아 타임지에서 중국이 왜 축구를 못하는지 분석까지 할 정도다.
또한 중국 특유의 중국 최고의 만악의 근원 만만디 문화 역시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방해를 하고 있다. 게으르다는 것이 의심될 정도의 지나친 여유로움 역시 중국이라는 나라의 발전에서 모든 분야를 전체적으로 방해를 하는데 스피드가 생명인 축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축구인들 거의 전부가 국공내전 이후 중화민국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중국축구협회가 와해되고 재창설 후 다시 FIFA에 가입한 해라는 게 무려 1980년이었으니 그 만만디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지나치게 날림으로 해도 문제지만 중국 축구의 경우는 되려 지나치게 느려터져서 문제다.
그나마 인구 수에서 세계적으로 유일한 라이벌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보다 우위이긴 하다.
참고로, 인도 프로축구 리그의 경우에도 최근에야 해외 유명 스타급 선수를 몇 명 영입시키며 리그 활성화와 대외적 인지도 홍보에 나서고는 있는데 초창기라 아직 인도 축구가 갈 길이 멀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이다. 뭐 인도도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아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올라가기도 했지만... 하지만 이마저도 무려 60여년 전의 일이다.
물론 이 외에도 방글라데시(러시아보다 인구 많음),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도 들 수 있다. 특히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은 국가 영토 면적대비로 보나 절대치로 보나 인구수가 제법 큰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인지도가 딸려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인구 많은 국가 생각하면 깜빡 잊고 넘어가는 나라들 중 하나다(특히 인도네시아). 러시아는 그래도 구 소련 시절에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가고 유로컵도 우승한 적이 있는 강호였고 현재도 2002년과 2014년에 본선에 진출할 정도로 덩치값 정도는 하는 축구 실력이 있다. 더불어서, 러시아의 경우에는 인구가 위 국가들처럼 인구가 억대 이상 찍기는 하지만 2억 이상 찍는 나라가 아니고 오히려 면적 대비로 따지면 인구가 많은 나라도 아니며 멕시코, 일본 등과 비슷한 인구밖에 안 되니까 이 정도면 그럭저럭 평균 정도는 하는 셈이다.
사실 인구 1억이 넘고도 축구를 못하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다. 아시아에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이 있다. 축구를 잘하고 못하고는 인구에 달린 것이 아니라, 축구 인재를 선발하고 교육시킬 수 있는 시스템과 이런 인재들의 경기감각을 키울 수 있는 리그의 존재인데, 중국은 두가지 모두 초창기이며, 공산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피파를 탈퇴하면서 국제축구계와의 교류가 단절되었고, 문화대혁명으로 그나마 있던 축구계 지도자나 선수들이 모두 시골로 끌려가 삽질하고 있었기 때문에 1980년대 이전에는 아예 이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구와는 아무 상관 없는 게 대한민국과 인구가 비슷한 아르헨티나는 세계 축구 4대 본좌 반열이고 미국과 인구가 비슷한 브라질 역시 세계 축구 4대 본좌 반열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말해서 중국축구는 1980년부터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중국에는 인구는 많지만 축구지도자들이 많지 않았으며, 이런 틈을 타서 1990년대부터 문화적,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 축구자들을 대거 영입했으나, 가장 중요한 유소년 레벨의 지도자는 1990년대부터야 양성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좋은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수의 경우 고등학생 정도가 되어야 본격적인 선수의 길로 들어가고 있다. 중국 슈퍼 리그가 출범하고 나서 구단별로 현대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갖추고는 있지만, 이것도 몇몇 부자구단에 한정되어 있고, 2000년대 우후죽순 처럼 생긴 중국의 프로 구단들은 이런 시스템을 갖춘 구단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초창기에 보이는 여러 시행착오나 삽질을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많은 인구와 축구열기에 비해서 의외로 축구를 하는 유소년들이 적다는 문제도 있다고 한다. 한 자녀 정책으로 인해서 자녀들을 힘들이고 코치들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돈도 많이 들어가는 스포츠 선수로 키우려 하지 않고 대체로 공부를 시키려는 경향으로 축구선수가 되려는 꿈을 꾸기가 어렵다고 한다. 중국에서 감독을 했던 이장수 감독도 "중국 유소년 축구인구는 겨우 몇 천명 수준으로 한국보다 적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스웨덴의 에릭손[19] 감독도 "중국의 유소년 축구 인구가 터무니 없이 적다."라는 말을 했다. 심지어 잠시 감독을 맡았던 코트디부아르보다도 적어보인다고 했다. 참고로 중국의 하루 출생아 수가 대략 5만명이다(...) 1년 동안 신생아만 1600~1700만명이 태어나는데 유소년 축구 인구는 고작 저것 뿐이다. 일일 출생아 수보다 유소년 축구 인구가 적은 현실은 시궁창
게다가, 중국은 학교에서도 농구 코트나 테니스 코트같은 실내체육관은 많아도 축구골대가 없는 학교도 많고 애초에 학교의 설립기준을 축구를 할 수 있는 학교운동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농구장을 기준으로 설계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인프라가 부족해 축구를 접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이로 인해, 축구를 좋아하고 관람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지만, 실제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적어서 유망주들을 발굴하기가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축구발전도 매우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다.
거기다가 축구를 잘하려면 자국 리그가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중국의 본격적인 프로리그인 슈퍼리그는 한국보다 20여년 늦은 2004년에야 출범했고, 압축성장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따르듯이, 마인드는 정체상태인데 온갖 현질이 난무하다보니 엄청난 시행착오가 따랐다. 이러니 리그에서 오가는 돈은 유럽의 그 어떤 리그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인데, 투자된 돈에 비해 전력은 그다지 향상시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남자 축구계에서는 세계 수위권의 강팀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정작 여자 축구를 죽쑤는 것도 이러한 요인이 작용되어서이다. 남자부에서는 리오넬 메시, 곤살로 이과인, 세르히오 아게로, 에세키엘 라베시, 앙헬 디 마리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카를로스 테베스, 마르코스 로호 등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 반면 여자부에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게 현재 아르헨티나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인 외모만 여자 이과인 에바 나디아 곤잘레스 정도가 고작인 게 아르헨티나의 축구다. 그나마 에바 곤잘레스도 팀의 주장인 데다가 175cm의 훤칠한 키에 얼굴이 매우 예쁘게 생겨서 알려진 거지 실력은 여자 축구라고 치고도 하위권이다. 실제로도 남자 축구부가 전승 우승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축구부는 3전 전패로 조별리그 탈락했으며 3경기를 통털어 여자 축구부에서 골을 넣은게 루드밀라 마니클러가 캐나다 전에서 넣은 1골이 유일했다. 심지어는 남자부였으면 간식거리조차 못되는 중국에게마저 일격을 당했다.
독일의 경우는 조직력이 세계 최강이기 때문에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같은 개인기가 뛰어난 크랙형 선수가 없이도 세계 수위권의 강팀이다. 다만,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미로슬라프 클로제, 루카스 포돌스키, 마르코 로이스처럼 월드 클래스급 크랙형 에이스 선수들이 아주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조직력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 최강급이다. 또한, 분데스리가의 인기도 세계 4대 프로축구리그로 불릴 정도로 축구열기가 열광적인 국가다.
이렇다 보니, 중국은 쉽게 축구가 발전하지 못하고 FIFA 랭킹도 개판인지라 보통 100위권이고 제일 좋았던 시절이 1998년 37등까지는 올라갔었으나[20] 그거 빼고는 늘 70위권 아래다. 2013년 12월자 피파랭킹도 93등, 2015년 2월 피파랭킹은 82위였다. 이 정도면 아시아 상위권인 대한민국이나 일본보다 30~50계단 정도 아래다.
또 다른 이유로는,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국가 내 운동을 잘하는 스포츠 인재들이 올림픽에서 중국이 강세를 보이는 개인종목으로만 몰려서 축구분야에는 인재가 없다보니 부진을 겪는 이유도 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두 나라가 올림픽에선 세계 1, 2위인데 축구에서는 세계 1, 2위가 되지 못하는 이유기 있다. 그나마, 이런 쪽으로 봐도 미국이 중국보다 더 낫긴 하다.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미국이 올림픽 종합 성적만큼은 아니어도 축구도 월드컵에선 다크호스급 이상은 되니까 말이다. 그럼 여자들은 뭐냐? 특히, 미국은 역대 월드컵 성적만으로 따지면 4강안에 든 적도 한번 있었다. 그것이 바로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대회였는데 당시 3위를 기록한 것이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대 최고 기록일 정도다. 단, 미국의 최고성적 3위가 아주 잘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그 당시 월드컵은 지금과 달리 출전 국가가 적고 전반적인 축구 수준이 현재의 축구보다 전술, 전략, 피지컬 측면에서 뒤처지고 상향평준화가 지금처럼 되기 전이라 지금 3위와 옛날 3위는 당연히 같지 않다.
어쨌든 중국이 축구를 못하는 것은 많은 인구와 뜨거운 축구열기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축구문화가 성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4. 미래의 가능성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중국 축구를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 상기했다시피, 중국은 최근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팀도 생겼고, 15억 인구라는 세계 최고의 인구와 수많은 자본을 배경으로 엄청난 시장성을 지닌 국가이다. 미래에는 중국 축구가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다.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서 축구 진흥책을 펼친 것이 2015년부터였고, 당연히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가 1-2년만에 성과를 내기는 불가능하다. 중국측도 50년 후를 바라보고 추진하는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만약 그런식으로 단기간에 국가대표팀의 축구실력이나 리그의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면, 이런 프로젝트 자체가 필요가 없을 거이다. 특히 위에서 기술한 대로, 중국의 현대 축구 역사는 1980년부터 시작했다.
여러가지로 2017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국팀이 선전하고, 마르첼로 리피호 출범후 보여주는 몇가지 긍정적인 모습을 보면, 중국 축구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미 여러 전문가들도 중국축구를 무시하기는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4.1. 마르첼로 리피


2016년 10월 22일 FIFA 월드컵 우승,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횟수가 무려 4회에 빛나는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마르첼로 리피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다. 이전까지의 전적은 1무 3패로 자력진출은 힘든 상황.
하지만 250억 연봉의 리피감독은 중국축구대표팀을 일신하는데 성공한다. 대표적 사례가 창사에서 치뤄진 월드컵 최종예선경기로 공한증의 한국을 1-0으로 꺾어버렸다. 게다가 그 1골도 정교한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리피감독은 가오홍보의 중국대표팀의 색깔을 완벽하게 지워버리고, 공격과 역습이 가능한 팀으로 변모 시켰다.
월드컵 최종예선 전반에서 1무 3패를 기록한 가오홍보호를 물려받은 리피호는 3승 2무 1패를 기록, 중국팀을 일신시키는데 성공한다. 비록 A조 최강이었던 이란에게는 패배했지만, 어떻게 보면 중국팀에게 있어서 이란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한국을 1:0으로 이겼고, 카타르 원정에서는 첫골을 얻어먹고도 2-1로 역전승을 거두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비록 전반기의 부진을 떨쳐내지 못하고 최종예선 5위로 탈락했지만 2위인 한국과 승점 3점차, 시리아와 우즈벡과는 1점차로 아쉽게 탈락했다는 점에서 중국 측으로서는 희망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리피 감독은 "중국팀의 문제는 자신감이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며 패배에 주눅든 선수들의 승리 본능을 일깨워주는데 힘썼다.
U-20국가대표팀이 독일의 4부리그레기오날리가의 남서부지구에 참여하려 했으나, 일부 관중이 경기장에 티베트 깃발를 내건 것에 대해 반발, 1게임 마치고 참여를 포기했다.
2017년 11월, 한국대표팀과 똑같은 상대인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평가전을 가졌다. 0-4, 0-2로 각각 참패했는데, 한국 대표팀이 2-1승리, 1-1 무를 기록한 것을 보면, 중국 국대가 잠시 피파랭킹에서 한국을 앞서긴 했지만 실력면에서 앞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 패배로 다시 11월 피파랭킹에서 한국 국대는 59위, 중국은 60위로 한국이 앞서기 시작했다.
한편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2020년까지 재계약을 했다. 축구감독으로는 무리뉴에 뒤이어 2000만 유로로 세계 2위의 연봉을 받는 리피가 얼마나 중국 축구의 실력을 끌어 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5. 그래도 여자축구 대표팀은...


아시아권에서도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국제무대에 나가지 못하는 중국 축구지만, 여자축구는 세계수준의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한때 여축에서는 미국과 더불어 양강체제를 이루었을 정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지금도 중국 여자 축구는 여전히 세계 수준의 강자다.
하지만 남자 축구에서 나타난 것처럼 여자 축구도 기반이 튼튼하지 못해 2010년 이후로 전력이 흔들리는 중이다. 지역에서 전통의 강호였던 북한과 일본에게 툭 하면 차이기 일쑤고, 왕년에 동네북으로 여겼던 한국 여자 축구도 발전하여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0:1 패배를 당했을 정도. 하지만 이보다 심각한 건 2015년 8월에 열린 U-19 아시아 예선. 3-4위전에서 한국에 0-4로 개발리면서 세계대회 출전권을 잃었다. 하지만 한국도 여자 축구가 발전했다고 하지만, 그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편이기에 중국 여자 축구의 추락을 남의 일이라 여길 수는 없다.
사실 여자축구에 투자 많이 하고 발전을 시킨 국가들이 많지 않다. 아르헨티나만 해도 여자대표팀 피파랭킹은 오히려 중국보다 낮은 40위권이다. 그냥 남자국대 여자국대 둘 다 잘하는 독일, 프랑스 등이 사기캐릭터들인 것이다.

6. 역대감독 (2000년대 이후)



7. 역대전적



7.1. 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 74위
년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1930 우루과이 월드컵
중화민국으로 출전
1934 이탈리아 월드컵
중화민국으로 출전
1938 프랑스 월드컵
중화민국으로 출전
1950 브라질 월드컵
비회원국
1954 스위스 월드컵
비회원국
1958 스웨덴 월드컵
예선 탈락
1962 칠레 월드컵
비회원국(FIFA와 AFC 탈퇴)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비회원국(FIFA와 AFC 탈퇴)
1970 멕시코 월드컵
비회원국(FIFA와 AFC 탈퇴)
1974 서독 월드컵
비회원국(FIFA와 AFC 탈퇴)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비회원국(FIFA와 AFC 탈퇴)
1982 스페인 월드컵
예선 탈락
1986 멕시코 월드컵
예선 탈락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 탈락
1994 미국 월드컵
예선 탈락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 탈락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31위
0
3
0
0
3
0
9
2006 독일 월드컵
예선 탈락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 탈락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 탈락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탈락
2022 카타르 월드컵
?
?
?
?
?
?
?
?
?
합계
본선진출 1회
1/20[21]
0
3
0
0
3
0
9
#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 FIFAAFC에 재가입.

7.2. AFC 아시안컵


AFC 아시안컵 역대 순위 : 5위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승점
홍콩 1956
불참
대한민국 1960
불참
이스라엘 1964
비회원국(AFC 탈퇴)
이란 1968
비회원국(AFC 탈퇴)
태국 1972
비회원국(AFC 탈퇴)
이란 1976
4강
3위
4
1
1
2
2
4
4
쿠웨이트 1980
조별리그
7위
4
1
1
2
9
5
4
싱가포르 1984
준우승
2위
6
4
0
2
11
4
12
카타르 1988
4강
4위
6
2
2
2
7
5
8
일본 1992
4강
3위
5
1
3
1
6
6
6
아랍에미리트 1996
8강
8위
4
1
0
3
6
7
3
레바논 2000
4강
4위
6
2
2
2
11
7
8
중국 2004
준우승
2위
6
3
2
1
13
6
11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2007
조별리그
9위
3
1
1
1
7
6
4
카타르 2011
조별리그
9위
3
1
1
1
4
4
4
호주 2015
8강
7위
4
3
0
1
5
4
9
아랍에미리트 2019
?
?
?
?
?
?
?
?
?
합계
준우승(2회)
11/16
47
17
13
17
76
54
64

8. 관련 문서



[1] 중국국가족구대. 중국에서는 축구를 족구라 한다. 참고로 우리가 족구라 부르는 놀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 fooball의 어원을 보면 족구로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하긴 하다. [2] 대표팀을 지칭하는 国足(궈쭈)와 발음이 비슷한 단어로 국가돼지라는 뜻. 졸전을 펼칠 때 팬들이 야유하는 별명이다.[3] 한때 흰색을 쓰기도 했다.[4] 발표 당시와는 달리 교체 직후엔 빨간 양말을 썼는데, 2017년부터 정식 컬러인 노란색으로 바뀌었다.[5] 발표 당시(빨간색)와는 달리 교체 직후엔 노랑 양말을 써오고있고, 가끔 U-23팀이 빨간색 양말을 쓰던 한다.[6] 아시아의 최강이라는 한국과 일본은 모든 종목 기준으로는 뚜렷하지 않다. 한국의 경우 축구는 빨간색이지만 야구를 비롯해서 파란색을 쓰는 종목도 상당히 많고, 일본은 축구는 파란색이지만, 다른 종목을 보면 빨간색, 검은색도 있는 등 중구난방이다.[7] 지금은 막장이지만 그당시 필리핀은 알칸타라 같은 당대 초대형 축구스타를 배출했던 축구 강국이었다. [8] 당시의 영국 축구팀은 지금과는 달리 지상 최강의 팀이었고 1930년 월드컵 우승국 우루과이를 비웃고 1934년 월드컵 우승국 이탈리아와 직접 맞붙어 양민학살 수준으로 쳐발라버렸다. 당시 영국팀은 월드컵이 너무 질떨어져서 불참하던 그런 팀이었다.[9] 사실 이 당시 피파에서 강호 사우디와 이란을 한 조에 몰아버린 것도 있다.[10] 일본, 이란, 바레인, 북한 (B조)[11] 뒤에서 1위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12] 참고로, 이 해 바르셀로나는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 1군의 가까운 전력을 투입하고도 이운재도 없었던 수원에게 1:0으로 패하였다.[13] 윈난 성 성도 쿤밍(해발 1,891m)에 위치해 있다.[14] 홈&어웨이 방식의 A매치에서 경기장 선택은 홈팀의 권리이다. 물론 2010년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 당시 마라도나는 이걸 오히려 악용하는 바람에 그냥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하지, 뭐하러 로사리오에서? 브라질과의 홈 경기에서 1-3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15]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스페인 감독이었던 그 사람 맞다.## 1970~1980년대 현역 선수시절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동했으며 울리 슈틸리케의 팀 동료였다. [16] 이전 버전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상하이 선화의 감독 물망에 올랐는데 마라도나는 "인구가 이렇게 많은데도 이렇게 축구를 못하는 종자들은 보다가도 처음본다."라면서 거절했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오히려 마라도나는 "인구가 많으니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격려하면서 말한 것이다. 중국 인민망 한국어판 중국 축구를 까기 위해 마라도나의 말을 교묘히 왜곡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 사실 이런 비슷한 말은 한국 팀을 맡았던 데트마르 크라머히딩크도 한 적이 있다. 한국 선수들이 감독말엔 잘 따르지만, 대표팀의 선후배 문화나 서열때문에 창의적인 플레이를 못한다고 한다. [18] 참고로 이분 93살까지 사셨다(...).[19] 2002 한일 월드컵 대회에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그 분이다.[20] 참고로 당시 한국은 17등, 일본은 20등이었다.[21]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