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번즈 (r20180326판)

문서 조회수 확인중...


이름
피트 번즈(Peter Jozzeppi Burns)
국적
영국
출생
1959년 8월 5일, 포트 선라이트
사망
2016년 10월 23일(57세), 런던
(사인 : 심장마비)
직업
음악가, 방송인, 작곡가
학력
중학교 중퇴
가족
아버지 프렌시스 번즈
어머니 에바 번즈
형 토니 번즈
배우자
마이클심슨(2006~)
전 배우자
린 콜렛 (1982~2006)
재산
파산
활동
1979년~2016년
데뷔
1979년 nightmare in wax
장르
댄스 뮤직 하이에너지
레이블
epic japan sony avex
1. 개요
2. 그의 생애
3. 활동/사건
3.1. 1970년대
3.2. 1980년대
3.2.2. YouthQuake 활동시절
3.3. 1990년대
3.4. 2000년대
3.5. 2010년대
4. 음악적 특징
5. 외모 변화 이력
6. 사망


1. 개요


피트 번즈( Peter Jozzeppi "Pete" Burns)는 영국가수이자 방송인이다. 1959년 8월 5일 영국 포트선라이트에서 태어났으며, 2016년 10월 23일 심장마비로 인해 사망하였다.

2. 그의 생애


어머니 에바번즈(Evelina Maria Bettina Quittner von Hudec)(1913~1987)는 2차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귀족이었으며 아버지 프렌시스 번즈(리버풀 출생)는 독일계 영국인 출신 군인이었으며 에바와 프렌시스는 댄스장[1]에서 처음만났다고 한다.
이후 둘은 결혼하여 피트를 47세에 낳았다.

그의 어릴적.

피트의 어머니인 에바 번즈와 피트의 관계는 매우 유별난데,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태인이었던 어머니는 일찍이 피트를 재능 있는 아이를 키우고자 했으며, 그에게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을 표현할 것을 가르쳤다 한다. 그의 자사전에 따르면 어머니와 자신만의 세계를 꾸미며 잘 지낸듯 하다.
그리고 피트에게는 토니 번즈라는 자신보다 11살 많은 형이 있었는데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음반을 같이 듣는것을 좋아했다고한다. 토니도 밴드에 관한 야망이 있었다고한다.
그러나 이후 피트는 어머니가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로 알코올 중독과 수많은 자살 미수에 빠져들고, 아버지는 이를 방조하는 끔찍한 환경에서 자라나게 되었고 훗날 그 시절을 'Hell house'라 회상할 만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2] 그럼에도 이후 피트는 본인을 특별하게 만든 건 어머니였다고 말하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했고, 어머니가 사망하기 얼마전 부모님 및 아내와 가족 사진을 찍기도 했다.

피트 번즈의 자서전에 의하면, 어린시절부터 특유의 독특함 화장 떡칠 으로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문젯거리가 되자 어머니는 그를 집에서 가르치기로 했고, 학교를 자퇴하면서 스스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회상했다. 이후 번즈는 리버풀의 유명 레코드 가게인 Probe의 직원으로 일하며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또한 이때 Probe의 오랜 단골이었던 한 미용사 린 코레트와 사랑에 빠져 곧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결혼식날 한 구경꾼은 "누가 신부냐"라며 비꼬았다고(...)[3]
또한 린 코레트 측의 부모는 피트를 딸의 별난 게이 친구 정도로 생각했으며, 본래는 피트를 상냥한 사람이라 여기며 좋아했으나 둘의 사이를 알게 된 뒤로 피트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린의 아버지는 언제나 함께 축구나 관람할 정도의 사위를 원했다고.
이후 피트 번즈는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고 Nightmares in wax(원래이름: 'Rainbows Over Nagasaki')라는 이름의 밴드로 활동하다 Dead or Alive로 이름을 바꾸고 나서 1984년 kc 션샤인의 대표작인 That's The Way를 리메이크해 영국차트 22위에 오르며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고 Youthquake에 수록된 곡 You spin me round를 1984년 발표하고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80년대를 주름잡은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특히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어 일본방송에 출연하는등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후 Mad, Bad, and Dangerous to Know와 Rip it up, Nude[4] 등을 발표하며 일본과 영국에서 활동했다.
이후 피트가 성형중독에 빠지게 되고 Dead or Alive멤버들이 탈퇴하는등 위기를 맞긴했지만 90년대에는 Fan the Flame , Nukleopatra 등을 발표하면서 그럭저럭 나름의 인기를 얻으면서 게속 활동했다. 그러나 이때 밴드는 음악방송에도 출연했지만 주로게이 클럽이나 게이 퍼레이드에 참여한 영상이나 활동이 더 많다.
이후 7번째 앨범 Fragile이 일본에서 또다시 큰인기를 얻으며 avex rave에서 콘서트를 했는데 자그마치 32000명이 모였다. 이후 일본이나 게이퍼래이드 등에 참여하면서 꾸준한 밴드활동을 이어가다가 2004년 보컬 피트 번즈의 입술필러 부작용으로 입에서 고름이 나오는 등 빨대로 음식을 먹어야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아지고 이 때문에 밴드 활동을 사실상 하지 못하게 된다.
2006년 경 몇번 활동을 하긴 했으나 이후로는 피트 번즈 혼자 활동한다.
아내 린 콜렛과 피트 번즈 두 사람은 26년간 부부 생활을 지속했으나, 2003년 쯤 번즈가 생전의 동성 애인인 마이클 심슨과 눈이 맞아 외도를 시작했고 2006년 둘은 이혼했다. 다만 린은 마이클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전했으며, 이후에도 세 사람은 친하게 지내었다.
또한 Dead Or Alive의 드러머인 스티브 코이와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로서 생전에 함께 했는데, 베이시스트 마이크 퍼시, 키보디스트 팀 리버가 탈퇴하는 와중에도 스티브 코이만은 밴드의 멤버로 남아 프로듀싱과 재정을 맡았고 2006년 번즈가 구치소에서 출감할 때 그를 픽업하기도 했다.
여장에 가까운 화려한 옷차림과 몸짓 때문에 게이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양성애자다.[5] 심지어 트렌스젠더라는 소문도 있었으나 호르몬 치료를 받은 적은 있지만 성별 재지정 수술을 받은 적도 없고 자기를 여자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 적도 없으니 트렌스젠더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1996년 인터뷰에서 본인은 스스로가 남자라는 사실을 즐기며, 여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참고로 더 스미스의 보컬 모리세이와는 80년대에 절친으로 지냈으며, 둘의 우정을 다룬 기사가 "A Friendship Made In Heaven"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잡지 Smash Hits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훗날 번즈가 모피를 입으면서 둘의 관계는 깨지고 말았다.[6]

3. 활동/사건



3.1. 1970년대


그는 학교를 중퇴하고 많은 뮤지션들이 드나들던 리버풀의 유명한 음반판매점 Probe record에서 일을 했으나 피트는 고객들을 학대하거나 내쫒는것으로 유명했고 결국에는 probe Record에서 나오게된다. 이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1979년 리버풀, 피트 번즈는 pete willy, julian cope,등과 nightmares in wax라는 그룹을 결성한다. 그들은 여러개의 곡을 냈지만 단 한곡도 정식앨범으로 나오지 않았다.

당시의 활동사진.

당시 nightmares in wax가 발표한 곡 중 하나인 Flowers. 아직 피트의 미숙한 보컬실력이 보인다.
이때까지만해도 밴드는 유명하지 못했고 알아주지도 않는 하류밴드였다.

3.2. 1980년대


본격적인 피트 번즈의 음악활동과 그의 전성기
1980년대 그는 그룹이름을 nightmares in wax에서 Dead or Alive로 바꾸고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이 때 멤버들을 조금씩 교체했다. Lloyd와 Reid는 1980년 3월에 밴드를 떠났고 Hurst는 한 달 정도 뒤에 밴드를 나간다. 이후 Burns와 Healy Sue James, 기타리스트 Adrian Mitchley와 드러머 Joe Musker를 영입해 라인업을 조금씩 갖춰갔다.
이때부터 피트 번즈의 양성적 인 패션을 선보였고 컬쳐클럽의 보이 조지랑 자주 비교되었다.
1982년, Dead or Alive가 발표한 노래 'The Stranger'가 영국 인디차트 7위를 석권하면서 이목을 끌게되었다. 이때, 에픽 레코드가 Dead or Alive의 앨범 발매를 도왔다
1982년, 'It's Been Hours now' 를 발표했다. 이 노래를 발표하고 나서 Dead or Alive는 멤버 스티브 코이와 팀 리버를 영입하고 점점 전성기 시절의 라인업을 갖춰간다.
이 노래는 에픽 레코드의 앨범이 릴리스되기전 마지막 곡이다.

1983년 6월 4일 SOPHISTICATED BOOM BOOM 에 수록된 곡 'misty circle' 을 발표했다. 이 노래는 Dead or Alive가 처음으로 에픽 레코드가 릴리스 한 곡이지만 순위는 uk차트 100위권 으로 크게 주목 받지는 않았다.당시 멤버 라인업은 스티브 코이(드러머), 마이크 퍼시(베이스), 팀 리버(키보드,색소폰), 웨인 핫세(기타)로 구성되었다. 웨인 핫세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전성기 시절 라인업을 갖춘 곡이다.

1983년 10월 9일 SOPHISTICATED BOOM BOOM에 수록된 곡 What i want 를 발표하는데 이때 처음으로 전성기시절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으며, 피트 번즈가 처음으로 보이 조지처럼 땋은머리가 아니라 레게머리(?)를 보인곡이기도 하다. 가장 높았던 순위는 UK차트 89위.

특유의 양성적인 이미지와 화장 때문에 컬쳐 클럽의 보이 조지와 비교를 받기도 했는데, 피트 번즈 본인은 보이 조지와의 비교를 거부하며 인터뷰 등을 통해 보이 조지에 대한 독설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선 보이 조지 또한 부정적 반응을 내보였는데, 피트의 대표곡인 you spin me round를 따라하며 피트를 조롱하기도 했다.
보이 조지가 먼저 메이저 팝씬에서 유명세를 얻었기에 피트 번즈는 보이 조지의 카피캣으로 오인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본인은 "난 1977년부터 이런 모습을 하고 다녔다. 그러므로 난 결코 '카피캣'은 아니다."라 주장했다.[7]
또한 보이 조지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거대한 모자와 땋은 머리는 사실 피트 번즈가 앞서 선보인 것으로, 보이 조지도 이를 인정하기는 했다.
여담으로 8~90년대 당시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훗날 관계가 완화된 것으로 보이며, 피트 번즈가 사망한 후 보이 조지가 그에 대한 인터뷰를 했으며 번즈의 장례식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1984년 1월 24일 SOPHISTICATED BOOM BOOM에 두번째 수록곡 I'D Do Anything을 발표했다. 피크포지션은 UK차트 79위. 이때도 주류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딱히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1984년 3월 17일 Dead or alive의 대표곡이자 'SOPHISTICATED BOOM BOOM'에 수록된곡 영국의 밴드 kc 앤 션샤인의 1975년 발표한 노래 That's The Way를 리메이크 했다. 이 곡이 나오고 나서 Dead or alive는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uk차트 22위에 오르며 대표 곡이 되었다. 곡을 발표하고 나고 얼마 뒤, Dead or Alive의 첫번째 정식 앨범 'SOPHISTICATED BOOM BOOM'을 발표한다, 앨범을 발표하기 전 웨인핫세는 그룹을 떠났다.
최근 E채널에서 자신의 테마인 That's the way에 맞게 이 노래를 종종 삽입한다. 작년 피트 번즈가 사망한 것 때문인지는 미지수.
그리고 이 다음곡이 엄청난 성공을 하게되는데...


3.2.1. You Spin Me Round의 흥행


1984년 11월 17일 1985년 Dead or Alive피트 번즈하면 떠오르는 곡이자 대표곡, 기념비적인 곡 You Spin Me Round를 발표한다.
프로듀서는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이 맡았고, 작사는 멤버들이 참여했으며 탈퇴한 웨인 핫세도 참여했다.
노래는 이후 발매된 앨범' Youthquake(젊음의 전율)'에 수록되었다. 노래는 Dead or Alive스톡 에이트켄 워터맨 둘 다 처음으로 Uk차트 1위를 석권한 노래다. 순위는 top 40에서 2개월을 머물다 1985년 3월 처음 1위에 올랐으며, 스위스, 독일, 캐나다 등에서 1위를 했으며, 빌보드 차트 11위를 석권해 미국에서도 큰인기를 누렸다. 이후에도 사람들은 1980년대의 명곡으로 손꼽기도 한다. 이후 2006년 다시 uk차트 5위에 오르기도 했다.[8]
2007년 피트 번즈의 말에 따르면 노래는 Luther Vandross의 'I Wanted Your Love'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노래를 만들때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데 음반제작사가 노래에 대해 혹평을 하고, 제작장비를 지원해주지 않아 2500파운드를 직접 대출해 노래를 제작했다고 한다.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도 음악 대금값을 갚기 위한 날만 기다렸다고...
You Spin Me Round 발표 후 밴드와 피트 번즈 모두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데 특히 일본에서 큰인기를 얻기 사작했고, 이후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는데 계기가 된다. You Spin Me Round는 1위를 석권한 뒤에도 인기가 식지않았고 수개월간 top20에서 머물기도 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어서인지 일본에서도 여러번 모습을 보였다.
이후 앨범은 30만장 이상을 판매하며 골든 레코드에 등록되었다.
대표곡이다 보니 여러 번 리메이크 되었고 Dead or Alive도 1996년, 2003년 두번 리메이크를 하였다. 그러나 에전보단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고 이후 피트 번즈가 CBB4에 출연하면서 영국 차트 5위에 올랐다.

3.2.2. YouthQuake 활동시절


You Spin Me Round 발매 이후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이 제작한 밴드의 두번째 앨범 YouthQuake 두 번째 타이틀 곡 Lover Come back(to me)을 발매한다. 장르는 신스팝, 하이 에너지, 팝. You Spin Me Round의 인기에 힘입어서 앨범은 영국 차트 11위를 석권하고, 남아공 3위, 아일랜드 6위 등 큰 인기를 얻었다. You Spin Me Round 이후 다음으로 발표된 앨범이라 큰 관심을 얻었다.
1985년 5월 1984년~1985년도의 곡을 모은 dead or alive의 히트 앨범 YouthQuake를 발매한다.
앨범은 크게 히트를 쳤고 영국 차트 9위 일본차트 31위를 달성한다.
이후 1985년 6월 In Too Deep(영국차트 14위,아일랜드 12위)를 발매하고
1985년 9월 My Heart Goes. Bang(Get Me To The Doctor[일본 차트 12위,영국차트 23위])를 차례대로 발매한다.
피트 번즈는 이때부터 이전의 록 음악이 아닌 하이에너지/신스팝 계열로 바뀌었고 스타일도 이전의 머리가아닌 새로운 머리를 선보이며 안대를 착용 하기도했다.
그 다음 1986년 Dead Or Alive는 세번째 앨범 Mad Bad And Dangerous To Know를 만들었다. Brand New Lover,Something In My House,I'll Dave You All My Kisses,Son Of A Gun,Hooked On Love곡을 발매했다
이때 Dead Or Alive에서는 댄서 제임스 하이드(James Hyde),아담 페리(Adam Perry)도 합류했다
그 뒤 Dead Or Alive는 일본으로 진출해서 큰 인기를 얻게 됐다

3.3. 1990년대


1990년대 피트 번즈Dead or Alive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그 이유로는 기타리스트 마이크 퍼시(Mike Percy)와 피아니스트 팀 리버(Timothy John Rever)가 탈퇴하면서 밴드는 스티브 코이피트 번즈 2인조 체제로 돌아서게 되고(얼마 안 있어 객원멤버를 영입했다.) 음반사와의 마찰로 Dead or Alive의 앨범을 영국에서 발매할 수 없게 된다.
앨범영국에서 발매할 수 없게 되자,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일본에서만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다행히도 전에 발표한 곡 Turn a round Count 2 Ten이 17주 연속 1위를 한덕에 하이에너지/신스팝이 쇠퇴하던 시절인 90년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90년 12월 13일 5번째 정규 앨범 Fan The Flame(part 1)을 Epic Record에서 일본에서만 발매한다.
총 8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곡은 Your Sweetness(Is Your Weakness), Unhappy Birthday, Gone 2 Long, Total Stranger, Lucky Day, What Hav U Done(2 Make Me Change), And Then I Met U, Blue Christmas로 구성되었다. 이 앨범의 특징은 전 앨범과 달리 하이에너지/신스팝분위기가 줄어들었고 이중 Unhappy Birthday, Gone 2 Long은 다음 6번째 정규앨범 Nukleopatra에 포함되었다, 이후 정식은 아니지만 후속 앨범 Fan The Flame(Part 2)이 발매됬다.
이는 미국 투어 등 여러 행사에서 사용되었다. 피트 번즈는 자신의 자사전에서 이 앨범을 불법 유통한 자들과 그것을 산 자들을 매우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Your Sweetness(Is Your Weakness)는 일본 차트 3위를 기록했고, Unhappy Birthday는 일본 차트 14위, Gone 2 Long은 18위를 기록했다. 앨범은 일본 오리콘 차트 27위를 기록했다.

3.4. 2000년대


1990년대에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한채 활동을 하다 2001년 일본에 리믹스 앨범 및 새 앨범을 내어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2003년에 대표곡 you spin me round를 리메이크, 방송활동을 할 예정이었으나 2004년 입술 필러의 부작용으로 일상생활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겨우 재건수술을 받고 이탈리아에서 요양하다 2006년 쇼프로그램 ‘셀레브리티 빅 브리더에 출연하며 성공적으로 재기하였다.

3.5. 2010년대



왼쪽부터 피트 번즈, 마이클 심슨, 린 코레트.(2007~2009년


4. 음악적 특징


That's the way
Something In My House
Lover Come Back(To Me)
Misty Circles[9]
위에서 언급했듯, 호리호리한 외모와 달리 마초적이고 굵은 보컬을 자랑한다. 블랙 유머가 섞인 오묘한 가사 또한 특징.
본래 사이키델릭 락 계열의 밴드 Nightmares In Wax로 활동했으나 Dead Or Alive로 개명하고, 오래가지 않아 하이에너지 계열로 선회했다. 이러한 이유로 1집 Sophisticated Boom Boom 때만 해도 고딕 분위기가 섞여있었으나 2집 Youthquake부터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의 프로듀스를 받아 대중적인 사운드의 음악을 선보였다.
80년대 한 방송에서 기자를 상대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앨범들을 소개했는데[10] 필 스펙터, The B-52s, 더스티 스프링필드 등의 레코드를 소개하며 자신의 음악적 감흥 및 앨범 표지와 헤어스타일에 대한 애착을 선보였다. 여기서 소개된 가수들은 모두 여자였기 때문에 기자가 의아함을 표했는데, 본인 말로는 남자 가수에겐 한번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5. 외모 변화 이력



성형 중독 전후(1985년/2012년)
성형 중독과 부작용 둘 다 나타난 안타까운 케이스.
무려 4살때 거울을 보며 얼굴을 고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에는 물감으로 화장을 하고 다니다 결국 자퇴하고 20대 초반에 가수 생활을 시작하며 독특한 메이크업을 하다 80년대 초반 박치기를 당해 코가 한 쪽으로 약간 비틀어졌는데, 돈을 벌기 시작하며 코를 성형했고 치열도 교정하였다.
그러나 코 수술이 대실패로 끝나 재수술을 해야했으며, 이를 커버하기 위해 80년대 후반 들어 점점 성형을 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90년대 들어 입술 필러, 광대뼈 보형물, 얼굴 윤곽술 등을 하더니 2000년대부터는 일주일에 2번씩 2년 가까이 크고 작은 성형을 했다.(이미 90년대에 80년대의 외모는 없어졌다.) 그러다 2004년 부작용으로 재수술을 받은 뒤, 그 후로는 재건 수술 위주로 성형하였다.
도톰한(?)입술에 큰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결과물은 2003년 모습을 보자. 사실 저렇게 성형을 많이 할 생각이 없었고 자신이 원하는 얼굴상이 있었지만 항상 수술이 마음에 안 들거나 계획대로 된 적이 없어 본의 아니게 많이 하였고,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외적인 결과에 큰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1981년 경 (성형 전, Nightmares In Wax 시절) 눈동자가 매우 영롱하다

1985년. 이 시점에서 이미 치열 교정을 받았으며, 이 시기에 처음 코 성형을 하게 된다. 잘생기고 카리스마있는 매력적인 얼굴이였다. 개성있는 외모였는데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이 시기가 외모의 황금기이다.. 성형을 하지 않고 나이먹은 그의 모습은 어떨까 상상해보는 팬들도 있었다.

1989년. 이때부터 얼굴이 많이 바뀌기 시작, 이미 입술 필러와 눈 수술, 추가 코수술을 받았다.

1995년경. 헤어스타일 변화와 조금씩 고친 모습. 이때는 비교적 여자로써도 자연스럽게 이쁜 모습이였다. 차라리 여기서라도 성형을 멈췄더라면.

2001년.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이때 입술 필러를 지속적으로 하였다.

2002년. 얼굴 윤곽이 달라지고 전체적으로 매우 인공적인 얼굴이 되었다. 이때부터 성형 중독이 심해졌다.


조커?
2003년. 실제 얼굴은 심하게 망가졌지만 사진에서는 짙은 화장+뽀샵..
아래 사진은 비슷한 시기에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
http://motherboardsnyc.hoop.la/fileSendAction/fcType/0/fcOid/189451354778556198/filePointer/189451354778647721/fodoid/189451354778647719/imageType/LARGE/inlineImage/true/pete_burns_no_makeup%5B1%5D.jpg
2004년, 얼굴 여기저기서 멍이 들고 입술이 크게 부풀어올라 고름이 나오는 등 부작용이 생겨 재수술을 받은 뒤, 현재는 재건 수술 위주로 성형하는 듯하다. 이때 입술을 제거해야 한다는 진단도 있었으나 다른 방법으로 재수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이탈리아에 가서 재수술을 받았으며, 회복기간인 2년 동안 외출도 제대로 못하고 음식도 빨대로 겨우 먹었다고 한다.
http://img.spokeo.com/public/900-600/pete_burns_2006_03_06.jpg
2006년 재건 수술 후. 이때가 번즈가 가장 여자 같았을 때였다. 이후 이 얼굴이 2009년까지 거의 유지되었다. 그런데 같은 해, 게이 바에서 동성 애인 마이클 심슨의 외도를 목격하고 그를 폭행했다가 구속되어 2달간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2009년 신장 결석이 발견되었고 영국에서 제거수술을 받았고, 그는 입술 성형 부작용에 시달리다 수술을 맡은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45만 파운드(한화 약 9억 원)의 손해 배상금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2010년 쯤부터 진통제 중독으로 얼굴이 심하게 붓기도 했었다. 그후 부풀어 오른 얼굴을 어느 정도 되돌려 놓았다.
2009년도에 성형외과 의사로부터 보험금 9억을 타는데 성공했으나 얼굴 복원 수술 및 자신의 물욕으로인해 이 9억을 다 써버려 결국 2014년 파산 선고를 받았다.
2016년 2월 영국에 한 방송에 출연했는데, 뭔가 얼굴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이 이전에는 약간 얼굴이 울퉁불퉁하고 입술이 많이 부자연스러웠다.(해당 항목 맨 위 2012년 사진 참고)

2016년 방송 출연 전에 찍은 모습. 이때 이전보다 얼굴을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밀랍인형 아니야?

2016년 5월경 외출모습이 포착되었는데, 술병을 든 어떤 여성과 걷고 있었다. 패션은 분홍색 티와 검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가다가 중간에 반바지를 벗고 앞의 가방으로 가리는 하의실종을 보여준 듯하다.
팽팽히 얼굴을 당긴 수술의 후유증인지 피부가 많이 상했으며 몇년 전에 비해 체중이 엄청 늘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2016년 9월 경 Celebrity Botched Up Bodies 2016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 얼굴을 단단히 고정시키던 필러 일부분을 제거하며 좀 더 자연스럽게 얼굴이 변했다. 아직 그때의 얼굴로 돌아가기에는 무리지만, 심각하게 망가진 치아, 잇몸도 치료헀다. 위 사진은 필러제거 전의 모습.
그러나 위 모습이 피트 번즈의 마지막 모습이 되고말았다.

비교적 최근 사진인데, 메이크업을 지운 얼굴인 듯.근데 이게 더 나아보인다.
사실 얼굴 말고도 가슴에도 보형물을 넣은것으로 추정되며 2010년경 피어싱을 하거나(위의 2010년 사진 참고) 2000년대 들어 온몸에 문신을 하는 등 몸 꾸미기에도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2000년대 부터 가발을 쓰는 것 같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는 수많은 가발을 가지고 있었으며 생전 그는 가발을 써도 별 이상이 없는 나이였다. 그가 화려한 옷을 입듯 외모 치장을 위해 가발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는 짧은 본래 머리카락이 있었고, 그 위에 가발을 착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아내였던 린 콜렛, Dead Or Alive의 드러머 스티브 코이[11]는 자연스럽게 나이든 모습이 되었다.

6. 사망


2016년 10월 23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57세.
미트스핀 드립과 성형 논쟁으로 듫끓던 그의 생전 뮤직비디오 댓글란은 피트 번즈를 추모하는 RIP 댓글로 가득찼고, 그를 2000년대 이후 유명해지게 했던 Celebrities Big Brother 4의 영상 댓글에도 그를 추모하는 댓글이 대폭 늘어났다. 다만 몇몇 악플러들이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그의 뮤비에서 미트스핀 드립이나 그외의 악플을 다는 고인 모독을 시전하고 있다. 이는 인간적으로도 해선 안될짓이고 자칫하다간 법적 책임을 물 수도있으니 주의하자.
피트의 매니저는 트위터로 피트의 부고를 밝히며 "우리는 우리의 특별한 스타를 잃었다. 그는 진정한 몽상가였으며,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였다."라 덧붙였고, 끝에는 피트의 전처인 린, 남자친구 마이클 및 수십년간 함께 해온 멤버이자 절친인 스티브 코이의 이름을 담았다.

[1] 정확히는 tea dance라는 차를 마시면서 춤을 추는 곳[2] 집에 돌아오면 곳곳에 자해의 흔적이 널려 있었다고.[3] 당시 피트는 양성적인 패션으로 활동했기 때문 [4] 일본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은 곡인 Turn around count 2 ten이 수록된 앨범[5] 단지 그가 국내에서는 미트스핀 노래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피트 번즈=게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피트는 이미 미트스핀은커녕 인터넷이 존재하지조차 않던 시절부터 끝없이 게이로 여겨져 온 인물이다(...) 북미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테레오 타입적인 게이의 대표상.[6] 피트는 2006년 유명 리얼리티 쇼인 Celebrities Big Brother에서도 고릴라 모피로 만든 코트를 입었다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퇴장당할 위기에 처한 바 있다 당시 피트는 '나는 동물을 사랑해 그렇지만 모피도 사랑한다고' 라고 발언하기도 했다.[7] 번즈는 커리어 내내 보이 조지 관련으로 굉장히 민감했는데, 인터뷰 중에도 보이 조지가 언급되면 기분이 확 가라앉으며 정색하곤 했다.[8] 피트 번즈의 cbb4 출연 후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기 때문에[9] The Mission, Sisters Of Mercy로 유명한 웨인 핫세가 이 당시 멤버로 활동했으며 영상에도 등장한다.[10] 리포터에게 쪽지를 건네곤 현재 가진게 없으니 직접 사오라고 시키는 비범함을 보인다(...)[11] 피트 번즈의 애인이었다는 소문도 있으나 사실 무근이다. 여성팬들에겐 피트 번즈와 맞먹는 수준의 인기를 얻었던 멤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