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r2019031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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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10대 중앙 종합 일간지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국민일보
세계일보
문화일보
순서는 창간일자 순.

동아일보
東亞日報 | THE DONG-A ILBO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Dong-a_Ilbo_logo.svg.png
 
정식명칭
주식회사 동아일보사
(東亞日報社 | THE DONG-A ILBO)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창간일
1920년 4월 1일[1]
창업주
인촌 김성수
경영진
김재호 대표이사 사장
임채청 대표이사 부사장, 편집·인쇄·발행인
이희준 부사장
업종
신문발행업, 정기간행물출판업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중견기업
주소
본사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 (서린동)
충정로
사옥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 29 (충정로3가)
링크
파일:동아닷컴.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개요
2. 기업의 정신
2.1. 사시
2.2. 사훈
2.3. 사가
2.3.1. 구 버전
2.3.2. 신 버전
3. 사옥
4. 역사
5. 논란과 비판
5.1.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5.2. 기자 대규모 해고
6. 역대 임원
6.1. 상임고문
6.2. 명예회장
6.3. 회장
6.4. 부회장
6.5. 대표이사 사장
6.6. 대표이사 부사장
6.7. 부사장
7. 역대 법정등록인
7.1. 발행인
7.2. 편집인
7.3. 인쇄인
7.4. 출판편집인
8. 역대 주요 간부
8.1. 편집감독
8.2. 주간
8.3. 주필
8.4. 편집/논설상임고문
8.5. 논설고문
8.6. 논설주간
8.7. 논설위원실장
8.8. 수석논설위원
8.9. 수석해설위원
8.10. 편집고문
8.11. 편집국장
8.12. 출판국장
9. 로고 및 심벌마크
10. 기타
11. 자매지 및 정기간행물
12. 주요 대회
13. 사라진 대회
14. 계열사
15. 공익재단
16. 제휴 신문사
17. 관련 문서
18. 관련 문헌




1. 개요


東亞日報, Dong-A Ilbo
한국의 조간 종합일간신문. 1920년 4월 1일에 창간되었다. 자세한 건 이곳을 참고. 현재 발행되고 있는 중앙 일간지 중에서는 서울신문(1904년 창간), 조선일보(1920년 3월 5일 창간)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래 된 일간지다.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함께 조중동이라 불리며 3대 보수지이자 3대 신문사이다. 대한민국 언론 삼대장 그렇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구독부수가 급속하게 감소하는 추세인 데다가[2](2012년 기준으로 발행부수 90만 부, 유료부수 70만 부)[3] 채널A도 TV조선만큼 화끈하지 않은 데다가 물론 선정성은 쌍벽을 이룰 수준이라지만 JTBC처럼 개혁적인 논조를 취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비교적 존재감에서 밀리기는 한다. 그러나 사실 80-90년대 조선일보가 급속한 성장세로 구독부수 1위를 기록할 정도가 되기 이전까지는 한국일보와 더불어[4] 구독부수에 있어서 1, 2등을 다퉜을 정도로 영향력이 강한신문이었고 대표적인 야당지였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 기준으로 유료부수에서 중앙일보를 이기고 2위를 차지했다.
전라도 지역의 만석꾼인 김성수[5]가 설립하였다. 그래서인지 옛날에는 "전라도 사람은 껌은 해태 껌을 씹고 신문은 동아일보 본다"는 말도 있었다.[6] 초대 사장은 박영효가 맡았으나[7] 1920년 평양 만세운동 사건조선총독부로부터 기사에 관한 제재를 받게되어 책임을 지고 사임하면서 후임으로 김성수가 사장이 되었다. 초대 주간은 장덕수. 후에 송진우가 사장을 맡았다.
노조는 미가맹이다.[8]

2. 기업의 정신



2.1. 사시


> * 본보는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함
> * 본보는 민주주의를 지지함
> * 본보는 문화주의를 제창함

2.2. 사훈


긍지와 책임, 인화와 협력, 창의와 성실



2.3. 사가



2.3.1. 구 버전


작사는 춘원 이광수, 작곡은 김영환이 맡았으며, 1926년부터 제정되어 59년을 사용해왔다.
(1절)삼천만 가슴속에 졸던 자유혼
깨어라 소리치어 자유의 소리
나날이 새힘자라 새는 날마다
영원히 외치도다 자유의 소리
(2절)이 붓대 보았는가 정의의 붓대
의 아닌 것 보고는 못 참는 붓대
차라리 의에 싸워 꺾일지언정
곧고 곧은 그 절개 꺾지 못하네
(3절)횃불은 들렸도다 진리의 횃불
삼천만 우리 강산 두루 비치러
옛 역사 새 정신 타는 광명은
천만대 내리 전할 진리의 횃불
(4절)원컨대 복이 되어 사랑의 꾸리[9]
끝없는 실을 끌고 동포의 가슴
낱낱이 들어나어 삼천만혼을
짜리라 새 조선의 빛난 깃발로
(후렴)동아일보 동아의 종소리 자유종 소리
삼천만 자유혼의 외치는 소리
만국에 울려라 만세에 울려라

2.3.2. 신 버전


1985년 창간 65주년을 맞이해 제정되었으며, 작사는 강인섭, 작곡은 김성태, 편곡은 장일남이 맡았다.
(1절)동녘의 빛이어라 민족의 길 밝힌 등불
삼일정신 받들어 새벽을 헤쳐오다
밝히리라 온누리에 자유의 횃불
누구도 영원한 그 앞을 막지 못하리
(2절)나라가 없을 때도 깨어있던 종소리
진리와 함께 가는 보람찬 길이로다
외치리라 온누리에 민주의 소리
누구도 의로운 그 붓은 꺾지 못하리
(3절)아~ 세계로 뻗어가는 겨레의 기상
시대에 앞장서서 문화의 발을 간다
알리리라 진실이 무엇인가를
천 년 뒤 만나도 살아있는 글자기를
(후렴)동아일보 겨레의 얼 나날이 새로와라
나라 위한 바른 말 역사에 전하리라

3. 사옥


파일:external/www.thebareun.co.kr/976_1(0).jpg
사진은 종로 미디어센터 사옥이다.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00310060217067.jpg
건축적으로는 동아일보 미디어센터 빌딩 옆에는 1926년에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마코토가 설계한 구사옥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 근대 건축물과 현대 건축물이 나란히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구사옥은 현재 일민미술관과 신문박물관으로 사용되고있고 국내에 남아있는 언론사 건축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참고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돼있기도하다. 구사옥은 없고 신사옥만 번듯한 조선일보, 일찍 폐간되어 농협으로 사용되는 구사옥만 남아있는 조선중앙일보[10]와는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충정로 사옥이 있다.

4. 역사


1920년 4월 1일에 전라도 지역의 만석꾼의 아들인 김성수가 설립하였다. 초대 사장은 박영효가 맡았으나 1920년 평양 만세운동 사건 때 조선총독부로부터 기사에 관한 제재를 받게되어 책임을 지고 사임하면서 후임으로 김성수가 사장이 되었다. 초대 주간은 장덕수. 후에 송진우가 사장을 맡았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발행되었던 신문들 중 살아남은 몇 안되는 신문이라 한국에서 발행된 신문들 중에서 역사가 긴 편에 속하기 때문에 한국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의 중심에 있던 신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1980년대 조선일보와 사이좋게 서로 친일신문이라고 싸웠다. 결국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 씨가 반협박 비슷하게 중재하면서 일단락.
창간때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는 일제의 문화 통치에 의해 창간된 한국어 신문 3개 중 유일한 민족지 노선이었다.[11] 그렇기 때문에 일제의 검열에 저항하여 맞서기도 하였으나, 1920년대 후반에 가서는 논조가 상당히 온건해진다.
일제강점기의 손기정일장기 말소사건은 (원문) 교과서에도 종종 등장하는 유명한 사건이며,[12] 실력양성운동의 일환으로 브나로드 운동[13]을 전개하기도 했다. 또 지금은 없어진 박문사(博文寺, 現 장충동 신라호텔 면세점 부지)에서 일제는 이등박문을 처단한 안중근을 단죄한다는 목적으로 안중근의 동생 안정근이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쇼를 벌였는데, 이 만행을 유일하게 보도하지 않았다.
덕분에 평소 언론에 별 관심없는 사람들은 동아일보에 대해 무척 호의적인 첫인상을 가지고 있다. 이를 두고 동아일보는 스스로 자신들이야말로 민족정론지라고 주장하는데 1920년대 후반 이후의 동아일보의 모습을 보았을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주장이다. 일례로 일장기 말소사건 당시 사장 송진우는 '소수 기자들의 실수였으며 이는 사측의 입장과 무관하다.'라며 정간을 해제해달라고 사정하였고, 속간이 되면서 "지면을 쇄신하고 대일본제국의 언론기관으로서 공정한 사명을 다하여 조선 통치의 익찬을 다하려 하오니"라며 일장기 말소에 대해 사과하였다.
폐간을 모면한 뒤 송진우는 사장직에서 물러나고 모든 활동을 그만둔채 칩거생활을 지냈다. 1937년 속간된 이후의 동아일보는 친일 어용 기관지로 전락했다. 이를테면 학도병 권유문도 올렸다는 흑역사가 존재한다. 그와 더불어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광고를 자주 게재하였다.
파일:external/www.mediaus.co.kr/7810_12751_4218.jpg
사옥에 내선일체, 보도보국이라는 간판이 걸려있기도 했다.
그러나 1940년 8월 11일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따라 한국어 신문들은 모조리 폐간당하게 되면서 조선일보와 함께 동아일보도 폐간 당하게 된다.
5년 뒤인 1945년 12월 1일에 다시 복간되었다. 1945년 12월 말에 동아일보에서 대서특필로 다룬 신탁통치 오보사건은 한국 근현대사를 완전히 바꿔났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대사건이었다. 쉽게 말해서 분단의 시초가 된 사건이며, 이 사건으로 좌우익은 찬탁 반탁으로 나뉘어져 싸워 결국 찬탁하는 북한과 반탁하는 남한으로 분단되게 하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일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작 당시 사장이었던 송진우는 이를 오보로 시인했고 극렬한 반탁운동을 삼갈 것을 촉구하다가 반탁세력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 이전에, 김일성이 일으킨 보천보 전투를 대대적으로 호외보도하는 바람[14]에 민중들 사이에 김일성 신화가 생기게 만들어 윗동네 세우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나중에 와서 보면 여러모로 씁슬한 흑역사가 있다.(...)[15][16]
1950년대 이후로는 미군정 시절과 6.25 전쟁을 거치며 살아남은 우익 신문중 경향신문과 함께 대표적인 야당지로 자리매김한다. 반독재를 내걸며 이승만 정권과 맞섰는데, 사실 대한민국 정부 수립당시까지만 해도 이승만에게 우호적이었으나, 실상을 알게된 후로는 민주당을 지지하며 이승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된다.
이러한 행보는 박정희 정권 때도 이어지지만 이승만 정권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치밀한 언론 탄압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대표적인 탄압이 바로 동아일보 광고 사태. 김대중 납치사건 등에 반발한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내면서 투쟁하자 정권의 외압으로 동아일보의 광고면이 전면 백지화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당시 시민들이 기자들을 지지하며 동아일보에 개인광고를 내주는 등 지원을 했으나 결국 경영진의 굴복으로 기자들은 해직되고 회사도 친 정권적 성향으로 변하게 되었다. 해직된 기자들은 전두환이 물러나 민주화가 된 시점인 1988년에 한겨레신문을 창간하게 된다.
외압과는 그다지 관련은 없지만 서울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하면서 광화문 사옥이 헐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17],
같은 보수 언론으로 평가받는 조선이 주로 북한 같은 안보문제를 다루고, 중앙이 경제문제를 다루는데 비해 동아는 문화 방면을 더 다룬다. 창간 당시 사시(社是)가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였는데 일제강점기 당시에 검열이 심하니까 민족주의, 민주주의보다는 문화주의가 강조되어 발행되었다. 딱히 큰 공연 없이도 항상 2면 이상을 문화면에 할애한다.
아예 노선이 확고한 조선일보나 기업들 입장을 대변하는 중앙일보와는 달리 이렇다 할 노선이 없어서 기회주의적이라고 비난받기도 한다.
2018년 1월 26일부로 지령 3만 호를 맞이하였다.

5. 논란과 비판


동아일보의 문제점으로 주로 지적되는 것은 진영논리, 편향적인 색깔론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예전부터 인식되어와서 아예 조중동으로 함께 묶여서 취급당할 정도였다. 다만 동아일보보다 더 극우적으로 강경한 논조를 쏟아내는 조선일보의 존재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있다. 때문에 동아일보가 문제되며 비판받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기사들과 색깔론을 내세운 편파적인 논조는 사람들이 괜히 조중동으로 묶어서 싸잡아 취급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5.1.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수사 초기 박 경정은 한창 조사를 하던 검사와 수사관에게 뜬금없이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면서 박근혜 정부의 권력 지형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정윤회 씨의 전 부인이자 고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 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허위로 결론 난 ‘정윤회 동향 문건’만큼이나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근거를 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독]박관천의 황당한 ‘권력서열’ 강의

동아일보의 희대의 자충수이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평가되는 기사 보도. 길게 언급할 필요도 없이 2016년 10월 최순실 특검이 결정된다. 새누리당조차도 당시에는 박관천 경정의 발언에 대해 정치 공작, 음해성 발언, 배후 음모설을 주장해왔었지만 결국 2016년 10월 26일 긴급 총회를 열어 특검을 수용한다.
당시 진보 언론을 제외한 다른 언론들에서도 해당 폭로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이였지만 동아일보처럼 크게 이슈화 하면서 비판하진 않고 이러이러한 발언을 했다. 다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다 식으로 기사를 내보내는 정도에 그쳤다.

5.2. 기자 대규모 해고


1975년 3월 당시 정권의 요구에 굴복 200여명 가량의 용역을 동원벽을 부수고 5일째 공무국에서 단식중인 기자 23명을 끌어냈다. 이후 해당 기자들의 대부분은 해고되었다.
여기까지였다면 동아일보로서도 정부의 압박에 의해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겠지만 문제는 이후 동아일보는 이후 동아일보 출신 해직 기자들에게 끝끝내 사과하기를 거부한다. 여기에는 과거와 달리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해 우호적인 논조를 고수하는 현재 동아일보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

6. 역대 임원



6.1. 상임고문


  • 김상기, 김성열 (1989~1993)
  • 이채주, 이종석 (1997~1998)
  • 송수항 (2000~2003)
  • 어경택 (2003~2006)

6.2. 명예회장



6.3. 회장


  • 고재욱 (1971~1975)
  • 김상만 (1977~1981)
  • 이동욱 (1981~1983)
  • 김상기 (1983~1989)
  • 김병관 (1993~2001)
  • 오명 (2001)
  • 김학준 (2008~2010)

6.4. 부회장


  • 김상기 (1977~1981)

6.5.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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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대표이사 부사장


  • 임채청 (2017~ )

6.7. 부사장


  • 장덕수 (1921~1937)
  • 고재욱 (1961~1965)
  • 김상만 (1965~1971)
  • 김두익 (1971~1973)
  • 이언진, 김상기 (1973~1975)
  • 이동욱 (1975~1977)
  • 김성열 (1983~1985)
  • 김병관 (1985~1989)
  • 권오기 (1989~1993)
  • 송수항 (1999~2000)
  • 김병건 (1999~2001)
  • 김재호 (2006~2008)
  • 최맹호 (2010~2015)
  • 이희준 (2017~ )

7. 역대 법정등록인



7.1. 발행인


  • 이상협 (1920~1921)
  • 한기악 (1921~1924)
  • 설의식 (1924)
  • 김철중 (1924~1927)
  • 양원모 (1927)
  • 김석중 (1927~1930)
  • 송진우 (1930~1936)
  • 백관수 (1937~1940)
  • 임정엽 (1940)
  • 김승문 (1945~1947)
  • 국태일 (1947~1961)
  • 김상만 (1961~1969/1971~1977)
  • 고재욱 (1969~1971)
  • 이동욱 (1977~1981)
  • 김상기 (1981~1983)
  • 오재경 (1983~1985)
  • 김성열 (1985~1989)
  • 김병관 (1989~1999)
  • 오명 (1999~2001)
  • 김학준 (2001~2008)
  • 김재호 (2008~2016)
  • 임채청 (2017~ )

7.2. 편집인


  • 이상협 (1920~1921)
  • 한기악 (1921~1924)
  • 설의식 (1924/1945~1947)
  • 김철중 (1924~1927)
  • 국기열 (1927~1930)
  • 송진우 (1930~1936)
  • 백관수 (1937~1940)
  • 임정화 (1940)
  • 고재욱 (1947~1966/1971~1976)
  • 우승규 (1966)
  • 천관우 (1966~1969)
  • 이동욱 (1969~1971/1976~1981)
  • 권오기 (1981~1995)
  • 김병관 (1995~1996)
  • 오명 (1996~2001)
  • 이현락 (2001~2002)
  • 김학준 (2002~2008)
  • 김재호 (2008~2016)
  • 임채청 (2017~ )

7.3. 인쇄인


  • 이용문 (1920~1921)
  • 최익진 (1921~1924)
  • 조의순 (1924~1933)
  • 김병석 (1933~1935)
  • 황영모 (1935~1938)
  • 장석태 (1938~1940)
  • 이언진 (1945~1975)
  • 김성칠 (1975~1983)
  • 김병관 (1983~1985/1995~1996/1997~1999)
  • 최준철 (1985~1987)
  • 한갑수 (1987~1988)
  • 신용순 (1988~1989)
  • 김광희 (1989~1995)
  • 오명 (1996~1997/1999~2001)
  • 김학준 (2001~2006)
  • 김재호 (2006~2008)
  • 최맹호 (2008~2016)
  • 임채청 (2017~ )

7.4. 출판편집인


  • 이재호 (2009~2012[18])

8. 역대 주요 간부



8.1. 편집감독



8.2. 주간


  • 장덕수 (1920~1921)
  • 설의식 (1945~1947)

8.3. 주필


  • 장덕수 (1921~1923)
  • 홍명희 (1924~1925)
  • 송진우 (1925~1927)
  • 김준연 (1935~1936)
  • 고재욱 (1946~1949/1951~1955/1955~1965/1971~1974)
  • 김삼규 (1949~1951)
  • 천관우 (1966~1968)
  • 이동욱 (1968~1971/1974~1977)
  • 권오기 (1981~1989)
  • 이채주 (1994~1997)
  • 이현락 (1999~2000/2000~2001)
  • 배인준 (2010~2015)

8.4. 편집/논설상임고문


  • 김학준 (2000~2001)

8.5. 논설고문


  • 이종석 (1994~1997)
  • 김학준 (1999~2000)
  • 황호택 (2016~ )

8.6. 논설주간


  • 홍승면 (1974~1977)
  • 김성한 (1977~1980)
  • 박권상 (1980)
  • 권오기 (1980~1981)
  • 김진현 (1989~1990)
  • 이채주 (1990~1993)
  • 남중구 (1998~1999)
  • 최규철 (2002~2005)
  • 배인준 (2006~2010)
  • 황호택 (2012~2016)
  • 김순덕 (2016~ )

8.7. 논설위원실장


  • 우승규 (1964~1965)
  • 김진현 (1985~1989)
  • 남시욱 (1989~1991)
  • 이종석 (1991~1994)
  • 정종문 (1994~1995)
  • 민병문 (1995~1997)
  • 남중구 (1997)
  • 김종심 (1997~1999)
  • 어경택 (1999~2001)
  • 최규철 (2001~2002)
  • 이규민 (2002~2003)
  • 전진우 (2003~2005)
  • 배인준 (2005~2006)
  • 이재호 (2006~2009)
  • 황호택 (2009~2012)
  • 김순덕 (2013~2016)
  • 박제균 (2016~ )

8.8. 수석논설위원


  • 홍승면 (1972~1973)
  • 송건호 (1973~1974)
  • 권오기 (1980)
  • 민병문 (1994~1995)
  • 남중구 (1995~1997)
  • 김종심 (1997)
  • 최영훈 (2015~2016)

8.9. 수석해설위원


  • 이동수 (1971~1974)
  • 권오기 (1974~1977)

8.10. 편집고문


  • 이광수 (1927~1929)
  • 고재욱 (1949~1951/1955)
  • 우승규 (1966)

8.11. 편집국장


  • 이상협 (1920~1924)
  • 홍명희 (1924~1925)
  • 이광수 (1926~1927/1929~1933)
  • 김준연 (1927~1928)
  • 주요한 (1929)
  • 설의식 (1935~1936)
  • 백관수 (1937~1939)
  • 고재욱 (1939~1946/1947/1951~1952/1952~1953/1954~1955/1958~1960)
  • 임병철 (1946~1947)
  • 김삼규 (1947~1949/1950~1951)
  • 장인갑 (1949~1950)
  • 곽복산 (1952)
  • 민재정 (1953~1954)
  • 우승규 (1956~1958)
  • 김영상 (1960~1962)
  • 천관우 (1963~1965)
  • 변영권 (1966~1969)
  • 홍승면 (1969~1971)
  • 박권상 (1971~1973)
  • 김성한 (1973~1974)
  • 송건호 (1974~1975)
  • 최호 (1975~1977)
  • 권오기 (1977~1980)
  • 이웅희 (1980)
  • 신용순[19] (1980~1983)
  • 이채주 (1983~1986)
  • 남시욱[20] (1987~1989)
  • 장행훈 (1989~1990)
  • 김중배[21] (1990~1991)
  • 홍인근 (1991~1994)
  • 이현락 (1994~1997)
  • 정구종 (1997~1999)
  • 박기정 (1999~2000)
  • 최규철 (2000~2001)
  • 김용정 (2001~2002)
  • 어경택 (2002~2003)
  • 이규민 (2003~2005)
  • 임채청 (2005~2008)
  • 심규선 (2008~2012)
  • 최영훈 (2012~2013)
  • 김차수 (2013~2016)
  • 김정훈 (2016~2018)
  • 천광암 (2018~ )

8.12. 출판국장


  • 김상기 (1965~1966)
  • 조병륜 (1966~1970)
  • 김성한 (1970~1973)
  • 홍승면 (1973~1975)
  • 임순묵 (1975~1980)
  • 안재준 (1980~1981)
  • 이채주 (1981~1983)
  • 남시욱 (1983~1987)
  • 장행훈 (1987~1989)
  • 김중배 (1989~1990)
  • 이준우 (1990~1991)
  • 이정윤 (1991~1994)
  • 이대훈 (1994~1995)
  • 정구종 (1995~1997)
  • 어경택 (1997~1999)
  • 김종심 (1999~2001)
  • 민병욱 (2001~2005)
  • 최맹호 (2005~2006)
  • 고승철 (2006~2008)
  • 황의봉 (2008~2009)
  • 이재호 (2009~2012)
  • 권순택 (2012~2014)
  • 박태서 (2014~2016)
  • 박성원 (2016~ )

9. 로고 및 심벌마크


파일:external/zikto.com/donga-mb3bdmk798q4xrukefhqluxr4iz3kmqz1kk2fre360.png
1920년 창간 당시부터 사용해왔던 오래된 로고이며 타원 속에 한자 '東(동녘 동)'이 가로세로로 반복된 형태이며 45도로 기울여 보면 亞(버금 아)자 형태도 드러나는 그 당시엔 보기 드물게 꽤 복합적이고 모던한 형태의 로고. 1920년 이후 단 한 번도 바뀌거나 폐기된 적이 없는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심벌마크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심벌마크를 교체해서 각각 C자형 로고J자 로고를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서 조중동 중 유일하게 심벌마크를 폐기하거나 변경한 적이 없는 사례를 가지고 있다.[22]
동해상사고속의 로고가 동아일보 로고와 너무 유사하다. 차이점이래봐야 바깥 원에 끊어진 부분이 있으면 동아일보, 없으면 동해고속, 이 정도. 여담이지만 두 회사가 서로 비슷한 로고로는 효성그룹축협이 있었다.

10. 기타


1926년 이완용 사망 직후 이완용의 매국 행위를 증오하는 명대사를 연달아 날리기도 했다. 그 명대사는 이러하다.

‘구문공신(口文功臣) 이완용은 염라국에 입적하였으니, 염라국의 장래가, 가려(可慮)’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신료 이완용이 지옥에 들어갔으니 장래에 지옥마저도 팔아먹을지 걱정된다.)

-

1926년 2월 12일[23]

동아일보 1면 횡설수설 기사 중.

도 갔다. 도 필경 붙들려 갔다. 팔지 못할 것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누린 자, 책벌을 이제부터는 영원히 받아야지.

-

1926년 2월 13일[24]

동아일보 1면 사설 기사 중.[25]

1931년부터 매년 3월에 마라톤대회를 열고 있는데 이 대회가 국내 대표적인 마라톤 대회 중의 하나인 동아마라톤대회다. 1982년부터는 국제마라톤대회로 확대돼 치러지고 있다. 1947년부터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주최하고 있으며 1956년부터 2016년까지 국수전이라는 프로바둑기전도 주최하였다.
자매언론인 신동아가 최근 미네르바 낚시사건을 저질러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한편, 라디오 방송국이었던 동아방송(DBS)도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서울 지하철 1호선시청역~종각역 사이의 드리프트(…)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자세한 것은 서울 지하철 1호선 항목 참조.
파일:external/www.museum.seoul.kr/img_07_97.gif
1970년대 중반경의 사옥 모습. 바로 뒷쪽 큰 건물은 당시의 광화문 우체국이다. 왼쪽에 건물이 헐린 곳은 지금의 교보빌딩 자리이다.
사실 동아일보 사옥이 헐릴 뻔한 게 이때 한 번이 아니었다. 이순신 장군상 앞부터 시청 뒤편까지 광장을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이때는 정부로부터 여의도 부지를 받아서 이전할 뻔했다. 물론 계획이 사라지면서 안 헐렸지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는 심사위원이 예심에서 떨어진 응모작을 표절하여 작품을 써 발표한 희대의 막장 사건이 일어났었다. 이건 동아일보의 문제라기 보단 문단의 문제인데, 문단에선 특유의 친목질, 쉴드를 가동해서 결국 표절한 조경란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고 조선일보에서 주최하고 이문열, 신경숙 등의 빵빵한 작가들이 심사하는 동인 문학상까지 받았다.
90년대 특종 기사 중 하나를 꼽자면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을 날려버린 여자화장실 몰카 설치 폭로가 있다. 몰카에 대한 인식을 확립시켜 준 사건이라는 의미도 있다. 잘나가던 백화점 하나를 그렇게 순식간에 날려버렸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매우 대단했다. 이후 외환위기와 겹쳐 좆망 테크를 탔고, 지금은 현대백화점 신촌점이 되었다.
딱 수능날이던 2010년 11월 18일엔 위키백과를 디스했는데, 위키백과에 북한군들이 주민번호를 도용해서 가입한 뒤 편집한다는 추측[26]을 A5면(!)에 싣는 병크를 저질렀다가 신나게 까였다.
그리고 2011년 7월 16일에 또 위키피디아를 디스했다. 제목은 北 편들고 南 깎아내리는 위키피디아. 게다가 이번에는 조선일보도 가세했다.
동아일보에서는 전국 경영학도를 대상으로 DBR(Donga Business Review)을 무료배포하고 있다. 한 권에 12,000원이나 하는 책이니 많이 이용하자(...). 경영학 실제 케이스와 연구분석사례들이 나와 있다. 대학에 있는 경영학과 건물에서 배포하는 듯.[27]
페이스북#이 보통 일간지 페이스북과는 컨셉이 조금 다르다. 어설프지만 개드립(...)을 구사해보려고 하는 듯.
대대손손 4대에 걸쳐 회사의 대표이사직을 이어받고 있다. 김성수의 장남 김상만, 김상만의 장남 김병관, 김병관의 장남 김재호[28]
박권상,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비롯해 역사학자 천관우, 송건호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 김종철 전 연합뉴스 사장, 김근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이웅희 전 문화공보부 장관, 황선필, 김중배 전 MBC 사장, 최시중 초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 윤양중, 김종심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이재호 초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이낙연 국무총리 등 쟁쟁한 인물들이 동아일보 출신이다.
2019년 북미정상회담 보도에 난데 없이 자사 기자의 외모 자랑하는 자뻑성 기사를 지면을 내 다른 의미로 화제가 됐다.#

11. 자매지 및 정기간행물


제작업무는 출판국에서 담당한다.
  • 스포츠동아
  • 어린이동아: 구 소년동아일보
  • 신동아
  • 여성동아
  • 주간동아: 구 NEWS+
  • 동아연감

12. 주요 대회


  •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 서울국제마라톤대회(구 동아마라톤)
  • 공주국제마라톤대회
  • 경주국제마라톤대회
  • 서울달리기대회
  • 동아국악콩쿠르
  • 동아무용콩쿠르
  • 동아뮤지컬콩쿠르
  • 서울국제음악콩쿠르

13. 사라진 대회


  • 국수전 (1956~2016)
  • 동아사이클대회 (1958~1997)

14. 계열사



15. 공익재단


  • 일민문화재단
  • 동아꿈나무재단

16. 제휴 신문사



17. 관련 문서



18. 관련 문헌


  • 민족과 더불어: 동아일보 80년사 (2000)
  • 동아일보 대해부(전 5권) - 문영희, 강기석, 김종철, 김광원 공저. 안중근평화연구원. 2014.
[1] 1940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폐간, 1945년 해방 이후 복간[2]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와 구독부수에서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안났는데 2012년 기준으로 조선일보가 175만 부, 중앙일보가 126만 부를 기록한 데 반해 동아일보는 유료부수. 무료부수 다 합해도 100만 부 아래다. 다만 2016년 기준으로는 중앙일보와 큰 차이는 안 나고 유료구독부수 기준으로 오히려 중앙일보를 추월한 것으로 나온다. 다만 이건 동아일보의 구독자수가 늘어서는 아니고 그냥 중앙일보 구독부수가 빨리 줄어들어서 2위에 올랐을 뿐이다. 사실 조선일보도 증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1위는 1위인지라.[3] 더군다나 이 수치도 이른바 부수 밀어주기 관행으로 인해 상당부분 부풀려졌다는 것이 중론이다.[4] 1990년대 초반가지만 해도 한국일보의 위상은 상당해서 1990년대 초반에도 구독부수가 상당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망테크를 타기 시작해서 후발주자인 한겨레 신문보다도 못 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5] 고려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이승만 정부시절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대한민국 부통령직을 지냈고 한국민주당 수석총무와 민주국민당 최고위원을 지내기도 하다. (엄밀히는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여 고려대학교를 창립한 것이지만.) 때문에, 형제지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고려대학교와 동아일보는 그렇게 서로 밀어주고 당겨줬기 때문에 이 둘의 커넥션은 끈끈한 편.[6] 이 말도 2000년대 이후 동아일보의 논조가 보수 성향으로 바뀌면서 사어가 되었다.[7] 일본에게 설립허가를 받기위해서 내새운것이다.[8] 원래는 언노련 소속이었지만 2000년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화면서 탈퇴.[9] 둥그런 실타래를 뜻하는 순우리말.[10] 다만, 현재 조중동과 직접적인 연관이있는 홍진기 교수의 중앙일보는 중앙일보빌딩(흑갈색건물로개국 초기 JTBC의 사옥으로도 쓰였던 그 건물) 옆에구 사옥이 존치 중이며, JTBC빌딩(DMCC 타워)가 세워지기 전까지 구 사옥에 임시로 중앙일보가 세들어사는 케이스는 있긴 있었다.[11] 그 당시 조선일보와 시대일보는 친일 노선이었다.[12] 이 사건을 가장 먼저 일으킨 신문은 여운형조선중앙일보였다.[13] 브 나로드란 '민중속으로' 정도의 뜻을 가진 러시아어다. narod는 영어로 치면 people정도의 의미로, 현 러시아의 유명 웹호스팅 서비스인 나로드 러시아(http://narod.ru)의 이름이기도 하다.[14] 이 보도 나고 당연히 일제에 의해 정간당했다. 그리고 김성수가 조선총독부로 달려가 굽신굽신해서 돈을 상납해서 다시 복간.[15] 물론 이건 당시 동아일보 탓이라기보다 해방 직후의 정치권 탓이겠지만.(물론 당연히 김일성도 포함.)[16] 심지어 남북 교류가 활성화 됐을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천보 전투를 호외보도한 기사를 새긴 금판을 기증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급정색했지만.[17] 그래서 나온 것이 그 유명한 종각드리프트. 만약 원안대로 추진했으면 아예 철거되어 몇 년씩 정간당하는 사태가 생겼을 것이다. 당시 윤전기가 진동에 약했는데 지하철을 그대로 지으면 윤전기가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아무리 당시 정권이 저항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건 충분한 언론탄압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18] 초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임명 후 퇴사.[19] 퇴사 이후 1993년에 강원일보 사장 역임. 1996년 작고.[20] 퇴사 이후 문화일보 사장 역임.[21] 퇴사 이후 한겨레신문 사장, MBC 사장 등을 역임함.[22]
파일:chosun_old_logo.gif
과거 조선일보는 사명(社名)의 머리글자를 본떠서 만든 로고를 사용했으며, 로고를 자세히 보면 '조선'이라는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이 로고는 1920년부터 2010년까지 쓰였다. 현재의 로고는 2010년 창간 90주년에 즈음하여 바뀌었다.
파일:joongang_old_logo.jpg
중앙일보 역시 사명의 머리글자를 본뜬 로고를 사용했는데, 한자 中(가운데 중)자가 삼각형으로 모인 형태였다. 이 로고도 자세히 보면 '中央(중앙)'이라는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이 로고는 1965년부터 1995년까지 쓰였다. 현재의 로고는 1995년 창간 30주년에 즈음하여 바뀐 것으로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겠다.'라는 의지를 표현한 것인데, 주황색 원은 눈과 입, 알파벳 J자는 귀를 뜻한다.
[23] 이완용이 죽고 난 다음 날의 기사다.[24] 희대의 매국노 이완용이 죽고 난 후 이틀 뒤의 기사다.[25] 현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는 이 기사를 볼 수 없다. 조선총독부가 위 사설을 포함해 당시 동아일보의 ‘이완용 비난 부고 기사’들을 모조리 압수하고 이를 삭제해버렸기 때문이다.[26] 위키백과는 실명제가 아니기에 주민번호는커녕 휴대전화 인증도 필요 없다.[27] 배포처 :건국대학교 - 경영관 2층 경영학과 사무실 앞. 고려대학교 - LG-POSCO 경영관 3층 수당학술정보관. 서울대학교 SK경영관 (58동) 1층. 성균관대학교 - 경영관 4층 경영경제대 행정실. 연세대학교 - 신경영관 4층 경영대학 행정실 앞. 서울시립대학교 - 미래관 5층 경영대학 행정실 내. 간혹 미래관 3층 경영경제전문도서관 대출데스크에 비치하는 경우도 있으나 요즘은 최신호를 잘 안 가져다가 놓는듯. 포항공과대학교 - 무은재 기념관 101호 앞, 충남대학교 - 경영학부 사무실(경상관 233호) 앞. 한국외국어대학교 - 경영학부장실 앞. 전국에 있는 경영학도들의 열렬한 추가바람.[28] 동생인 김재열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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