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r20190312판)

 


1. 개요
2. 의의
3. 한계
4. 각국의 사례
5. 민족주의는 우파의 사상인가?
6. 관련 문서


1. 개요


, Ethnic nationalism
민족주의란 현실적 또는 잠재적 '민족'을 구성한다고 믿는 한 주민을 위해서 자율성, 통일성, 정체성을 달성하려고 유지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운동이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민족들의 발흥'을 뜻하지 않으니 민족주의='민족들의 발흥'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다.[1]
주로 전근대적 계급세계가 사라지고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발흥으로 탄생한 사상이다. 한국의 경우 통일 신라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집단 의식이 이후 고려 시기에 형성된 게 시초이며[2] 이것이 구한말 서양의 내셔널리즘을 들여와 민족주의로서 사상화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제국의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저항적 민족주의 성격을 띄며 때문에 기본적으로 중국과 일본에게 우호적이지 못하다는 특징이 있다.[3] 광복 후에도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저항적 민족주의는 민족주의 자체가 여러 이유로 비판을 받는[4] 현재에도 알게모르게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2. 의의


"민족주의란 한 국가가 발전하고 한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이다."

쑨원

"내 몸이 남의 몸이 될 수 없음과 마찬가지로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 없으며,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보다 완전한 영원함은 없다."

백범 김구

"민족이란 인간의 육신을 구성하는 장기와도 같다. 민족이 고통에 처했을 때는 마치 우리들 스스로가 고통에 처한 것처럼 노력해야 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5]
어느 문화권이든, 어느 국가이건 간에 전통적으로 민족주의는 특정 집단에 동질성을 부여해 발전의 동력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무기로서 찬양되어 왔다. 이는 전통적으로 민족주의 정서가 강력했던 동아시아의 중국은 물론,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나타나는 선민사상이나 근세 이후 유럽이 제국주의를 바탕으로 급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역설적으로 제국주의의 피해를 입던 후발 주자들이 독립적인 국가를 형성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선민사상이니 제국주의니 하는 단어만으로는 부정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중국의 한족거란족, 여진족, 몽골족, 만주족에게 끊임없이 중원 본토를 빼앗기면서도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신들의 민족국가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민족주의가 있었고,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라는 어두운 시기를 이겨내고 자신들의 국가 이스라엘을 세울 수 있었던 건 우리는 특별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우리가 우월하니 타인에게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차별적 사상이 아니라, 우리가 우월하니 우리는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단결력을 불러일으킨 쪽이면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할 만 하다.
더불어 유럽이든 아시아든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 근대 국가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민족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근대 유럽인들이 자신들을 봉건 영주같은 개념이 아니라 공동의 정체성을 가진 특정 민족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단결하여 성장할 수 있었고, 위에서 언급한 쑨원도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물어뜯기는 과정에서 중국이 살아남으려면 중국인의 민족의식에 호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삼민주의 역시 그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사상이다. 오늘날의 대표적인 강대국인 러시아중국 모두 실제 단일민족 국가는 아님에도 성장기나 국난시에 슬라브 민족 혹은 중화민족 같은 민족주의 정서에 호소했던 바 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들 중 급성장을 이루어낸 케이스의 대다수는 단일민족국가로 민족 중흥의 가치를 강조했던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에도 구한말 조선의 개화파들부터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개발독재기 군사정권 모두 한민족을 강조했다. 물론 이러한 민족주의가 민족을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불합리한 개인의 희생들을 묻는 역효과를 낳기는 하였으나, 더 큰 역사적인 틀에서 본다면 한국인들의 단결을 이끌어내 독립은 물론 오늘날의 발전된 선진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었음을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3. 한계


[image]

"내셔널리즘은 소아병적이다. 내셔널리즘은 인류가 앓는 홍역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6]

"내셔널리즘은 자기기만에 가려진 권력욕이다."

조지 오웰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그들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다."

카를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에서

어두운 역사가 증명하듯 민족주의는 그 특성상 쇼비니즘전체주의를 잉태하기 쉬운 사상이다.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슬라브, 집시, 유태인를 포함한 타민족을 "열등인류(Untermenschen)"로 취급하여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반인륜적 범죄들을 저지른 히틀러가 대표적인 예.
민족주의를 부르짖은 국가들이 대체로 국민들을 그들의 군인 및 노동자로 잘 써먹었던 덕택에, 2차대전의 참상을 목도한 오늘날 서구권에서 내셔널리스트란 단어는 비교적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1세기에는 이런 배타적 민족주의에 맞선 대응책으로 열린 민족주의 담론이 활발하게 대두되기도 한다지만 열린 민족주의건 이타적 특성을 보이는 민족주의건 "우리 민족 ≠ 다른 민족" 이라는 사고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언제든지 전체주의나 파시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때문에 전 인류가 모두 하나라고 생각하는 반민족주의 진영에서는 단 한치의 민족주의적 관점도 인류를 분열시키는 근원이 될 수 있다 보아 상당히 경계하고 있다. 민족주의로 인한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인해 피바다가 되었던 인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부상한 사상이 반민족주의이기 때문.
그러나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동아시아나, 종교로 국민들을 세뇌하는 중동 지역은 민족주의의 영향력이 아직까지 강하다.
한중일 모두 정치적 목적으로 민족주의를 써먹는 사례는 흔하며[7], 중동에서도 부패한 왕실이나 정부에서 이슬람이라는 공동체적 가치와 반미 프로파간다를 위한 아랍 민족의 단결 운운하며 민족주의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비단 서구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라 할 수 있는 인권, 평등, 자유 등의 가치조차 서구적 색채로 규정지어 배척하며, 국민들로 하여금 지배층의 부패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이러한 민족주의를 열심히 써먹고 있다.

4. 각국의 사례


Nationalism이 처음 생긴 프랑스는 오랜 세월 동안 한 국가를 중심으로 통일되어있었던 반면 어느정도 연속적이기는 하나 언어가 오크어오일어로 나뉘었고, 바스크브르타뉴 등 언어가 아주 다른 소수집단이 있었기 때문에 (물론 프랑스인 대부분을 하나의 종족집단으로 볼 수는 있지만) 혈통적인 민족 중심보다 국민 중심의 내셔널리즘을 형성하였다. 반면 독일에서는 'ethnic group'을 중심으로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터키의 경우, 공화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범국민적인 존경을 받고 있으며 그가 제창한 튀르크 민족주의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넓게 퍼져 있다. 현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은 보수 우파에 이슬람주의와 민족주의를 더한 성향이며, 반대로 케말 본인이 창당한 공화인민당은 1960년대 이후 좌파 사회민주주의 성향을 띠게 되면서 좌익 민족주의의 대표주자로 급부상했다. 이외에도 이름부터 민족주의행동당인 극우 민족주의 정당, 반대로 공산주의에 가까운 급진 좌파이면서 민족주의 성향을 띠는 군소정당 애국당(VP) 등이 존재한다.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권은 이민자 국가라는 특성상 단일민족국가란 것이 애초부터 성립될 수가 없었다. 물론 아시아계 미국인이나 흑인들이 차별받았던 것은 사실이나, 이는 미국 민족주의라기보다는 인종차별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중남미는 과거 제국주의나 미국의 영향에 의한 반감때문에 Nationalism이 상당하나 한국, 일본과 달리 서구권에서는 극우로 간주되는 Ethnic nationalism에 기반하지는 않는다.
동아시아에서는 초기에 서양의 개념 Ethnism이 종족주의로 번역되고 Nationalism이 민족주의로 번역되었던 바 있다. 동아시아의 경우 유럽과는 달리 비교적 정적인 국경선 내에서 각 민족이 민족국가를 형성해왔으며, 때문에 한국과 일본 모두 (엄밀히는 사실이 아닐지라도) 단일민족국가 신화를 유지하는 편이다.[8] 중국 역시 다민족국가라고는 해도 한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며, 정치적으로 중화민족이라는 허구적 존재를 띄워준다. 때문에 한중일 모두 민족주의 정서가 강한 편이고, 국가주의민족주의가 구별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동아시아에는 두 개의 중국두 개의 한국/조선이 있다는 것.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자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하여 귀화한 디아스포라들이 귀국해서 국적을 취득 혹은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거나, 귀화 절차를 다른 외국인보다 쉽게 해주는 나라들도 왕왕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 중국, 대만, 이탈리아, 알바니아. 특히 중국은 홍콩마카오를 반환받을 때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중국계 주민들에게 일괄적으로 중국 국적을 부여하였다. 물론 호불호와는 별개지만 또한 중국이나 대만은 일반적인 외국인에 대한 귀화제도가 없지만, 중국에서 나가 사는 화교들에 대해서는 국적회복 방식으로 귀화가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대만의 경우 할아버지 대에 청나라나 중화민국 국적자가 있으면 국적회복의 방식으로 대만 국적을 준다.

5. 민족주의는 우파의 사상인가?


일반적으로 민족주의는 우파, 혹은 극우와 같이 노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유럽에서는 마르크스 이후 세계주의를 지향해왔던 좌파 사회주의 세력과 대비되어 우파는 민족주의를 강조한 바 있다.
좌파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있기는 하다.(여기서 민족은 nationalism을 말한다) 제국주의에 고통받는 약소민족 민족주의는 좌파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배격했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와 달리 20세기 들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이 나타난 것이 그 예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런 약소민족은 제국주의 국가가 약화되거나 사라져버리면 민족주의형 독립운동가들이 독재자로 타락하거나, 혹은 ethnism 특유의 인종주의, 극단적 정체성 정치와 배타적 정서 때문에 내부의 약자, 소수자 탄압이나 제노포비아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중 제일 극단적인 사례가 짐바브웨이며, 한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구권에도 내셔널리즘 nationalism과 민족주의 ethnism는 구분한다. 예를들면 르펜이나 트럼프는 일단 겉으로는 nationalist지만 히틀러는 ethnism이라고 보며 nationalism 속에는 좌파가 존재하더라도 ethnism 자체는 거의 white nationalist나 나치의 게르만주의 등 극우적인 이념으로 연결된다.
한편 이러한 분류는 국가마다 다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남한북한이라는 정치체에 대한 충성심과 한민족이라는 민족에 대한 애족심이 교차하여 상당히 복잡한 스탠스를 지닌다. 우선 한국의 주류 정치세력 중에서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내셔널리즘을 공공연하게 거부한 세력은 단 하나도 없다. 한국은 건국 이래 좌우익 세력이 모두 민족주의를 내세워온 역사가 있고 최근에는 우익 세력이 민족주의에서 멀어져가서(뉴라이트 등) 오히려 좌익 계열에서 민족주의가 더 두드러지기도 한다. 특히 NLPDR 등은 명백히 좌익 성향인데 서구에서 보기에는 극우와 통할 만한 강경 민족주의를 내세우기도 한다. 인터넷 문화로 예를 들면, 루리웹이나 오늘의 유머 등지가 경제적으로는 재벌에 부정적이고 복지를 중시하며, 북한에 대해서 평균 국민 감정 대비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데 반해,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상당히 적대적인 성향을 보인다. 인터넷 진보 세력의 경우 이슬람 계열 난민 문제에 대해서 극렬히 반대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6. 관련 문서



[1] 앤서니 D. 스미스 지음 ; 김인중 옮김, 『족류 상징주의와 민족주의: 문화적 접근방법』, 아카넷, 2016, 141쪽[2] 민족이라는 개념은 근대에 가서야 나오게 되지만 "외부와는 다른 하나의 한반도 고유 토착 세력" 정도의 의식은 이때 형성되었다.[3] 혹자는 미국에게도 우호적이지 못한 사상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그렇고.[4] 민족주의의 어두운 역사와 세계화에 방해가 되는 특성, 제노포비아같이 외국에게 배타적 성격을 띄게 될 가능성이 높은 점.[5] 동일한 문구가 내셔널리즘 항목에도 인용되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쑨원이나 김구의 경우 민족주의에 가깝고, 아타튀르크의 경우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국민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쑨원의 경우 (청나라만주족이 아닌) 한족이 권력을 장악해야 중국이 산다고 이야기했을 만큼 강경한 한족 내셔널리스트였고, 백범 김구 역시 백범일지를 읽어보면 한민족의 부흥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반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경우 "자신을 터키인이라 믿고 터키의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모든 사람은 터키인"이라 규정했으며, 이러한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터키라는 새로운 '민족국가'에 대한 애국·애족심을 심으려 했던 사람이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의 아나톨리아 외부 영토 상당수를 자의적으로 포기했던 것, 엔베르 파샤로 대표되는 범튀르크주의와 미묘한 노선 갈등을 겪었던 것도 이 때문이고. 물론 이는 민족국가의 성격이 강한 동북아시아와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는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유럽~중동의 정치적 특성 차이 때문이 가장 클 것이다.[6] 아인슈타인은 국제 유대인 활동에 열심이었다. 해당 발언 또한 자신보고 독일인이냐 유대인이냐 묻는 기자에게 짜증을 내며 한 발언.[7] 중국 시진핑의 중화민족 부흥, 일본 극우세력의 여러 정치적 행보를 예로 들 수 있고 한국 역시 패권적 행보를 보이지 않을 뿐 좌우 모두 영향력 강화를 위해 민족주의를 강조해왔다.[8] 민족의 범위를 어디로 설정해두냐의 차이가 있긴 하나, 유전자적인 의미의 민족을 의미한다면, 한국 역시 단일민족국가가 아니다. 한국인은 스키타이 등의 북방 유목민족과 한반도 남부의 토착민족간의 혼혈을 통해 발생한 민족이며, 한반도에 국가가 형성된 이후에도 중국이나, 여진, 거란 같은 유목민족들, 일본, 심지어는 아랍과 인도에서 끊임없이 인구가 유입되고 유출되면서 단일민족의 색채는 없어졌다. 가야 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본 역시 한반도에서 건너간 외래 민족과 아이누로 대표되는 토착 민족들이 아이누 정벌 과정에서 피가 섞여 현재의 일본인 유전자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후에도 류큐 왕국을 병합하여 오키나와 현으로 삼는 등을 통해 단일민족국가의 색채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