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 (r2019031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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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3월을 뜻하는 일본어 어휘
2. 시대명
3. 인명
3.1. 실존인물
3.2. 가상인물
4. 일본의 음식점
5. 철도역


1. 음력 3월을 뜻하는 일본어 어휘


弥生(やよい). 일본에서는 동네 이름으로도 쓰인다. 아래 나올 도쿄도 야요이초가 그 사례
이런 지명은 국내에서 일제시대의 흔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데, 미생정역(야요이쵸)이 대표적인 흔적이다. 2009년까지 이 미생정역 자리에서 1978~2009년 동안 존재했던 효창역 인근에는 미생동 건널목이라는 이름의 건널목이 있었으며 당시 위치는 푸르지오 아파트의 작은 문이 있던 자리다. (이 작은 문에는 과거 계단이 있었다)

2. 시대명


일본의 역사 日本の歴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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弥生時代やよいじだい
일본청동기 시대이자 철기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대[1]로 BC 5~3세기부터 AD 3세기까지 가리킨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가 처음 발견된 곳이 1884년 도쿄도 야요이초[2]였기 때문에 이 토기를 연구한 도쿄대학 인류학과에서 야요이토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몬시대와 마찬가지로 토기에 따라 시대를 구분한 셈. 한반도처럼 이 시기의 야요이 토기는 민무늬 토기가 보편적이다.
야요이 시대의 대표적 유적들로는 후쿠오카 현 이타즈케 유적, 시즈오카 현 도로 유적, 시마네 현 고진다니, 가모이와쿠라 유적 등등이 있으며 경작이 시작되어 농업 관련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농업 생산물을 뺏기 위해 전쟁이 시작되어 전쟁에 대비한 환호취락이 발달했는데 이는 한반도 남부에서도 흔히 보이는 유적이다. 매장 문화는 조몬시대와 많이 바뀌어 옹관, 석관, 목관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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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을 짓기 시작하고 청동제 무기[3], 제구[4]가 출현했으며 안정적인 수경경작이 가능해지는 등 이전 시대였던 조몬에 비해 급격하게 문명이 발전했기 때문에 큰 논란이 있어왔다. 그동안 야요이 시대의 유물들이 한반도의 유물들과 비슷한 점[5]과 한반도에서 가까운 북규슈과 서남쪽 혼슈 지방을 중심으로 야요이 문화가 전개되었다는 점을 들어 조몬시대를 거친 일본인들이 한반도에서 발달된 문화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농경 문화를 가진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와 채집 생활을 하던 조몬문화의 원주민을 밀어내고 일본을 장악했다는 쪽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이것은 야마구치 현과 사가 현에서 조몬인과 다른 형질의 인골이 발견되면서부터 생각된 것인데, 이후 북규슈 간몬(關門) 지역 일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인이 정착하여 야요이 문화가 성립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6] 야요이인은 신체적 조건에서 조몬인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그들은 평균 신장이 큰 데다가 사지의 뼈가 길고 가늘며 얼굴형이 상대적으로 긴 편이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일본인은 한반도 이주민의 후계자며, 아이누족은 조몬인의 후예로 추측되기도 한다.
큐슈 북부에 발견되는 야요이 유골과 고대 한국인의 DNA 유사성이나 한반도와 유사한 유물 등 강력한 증거들이 뒷받침되고 있다. 고고학적으로 무덤양식이나 청동기 등 유물을 통해 본다면 야요이인과 가장 관련이 깊은 세력은 삼한이다. 다만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비롯한 중국의 사서에 의하면 한과 왜는 분명히 구분된다고 적혀 있다. 일단 언어부터 다르고 기록된 단어를 봐도 실제로 다르다.[7] 왜(문신을 새기는 문신의 문화는 정확히는 조몬, 에조인들의 문화였다. 즉, 야요이인이 이주, 정복하기 전 일본의 선주민들의 문화였던 것이다.)에는 문신이 성행했으나 한에는 그러한 문화가 없었다.[8] 일단 곡옥 같은 공통의 유물로 봐서는 왜가 한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은 확실하나 언어, 의복, 문화 등으로 봐서는 둘은 분명 구분된다.[9] 또한 위의 기사는 mt-DNA 하플로그룹만 갖고 내놓은 결과인데 이는 오로지 모계 계통만 나타내며, 종합적으로는 상염색체나 Y염색체 하플로그룹의 연구 결과도 함께 있어야 종족의 계통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플로그룹 문서 참조.
아무튼 이 야요이 시대를 통해 일본에는 금속 도구들과 농업이 널리 퍼져 나가고 소국들이 세워지기 시작하였으며, 고훈 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일본의 전설적인 인물인 야마타이의 히미코가 이 시대에 활동했다고 알려진다.
최소한 Y하플로로는 베트남인과 일본인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거기다 현대 일본인의 모계염색체는 정확히 한국인의 모계염색체와 일치하며 부계염색체인 Y염색체도 한국인과 75% 이상이 일치한다. 일부에서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과 연관이 있다고 말하지만 이렇다 할 관계는 발견되지 않았고 애초에 민족관의 유전적 관계를 결정하는 건 부계염색체만이 아니다. 결국 유전적 특성으로 보나 Y염색체, 모계염색체로 보나 한국인과 일본인은 굉장히 유사하며 이는 현대 일본인이 고대 한반도 출신의 후예라는 걸 입증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미 미국 등에서는 이를 사실로 인정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민족 감정 때문에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다. 일부의 주장처럼 삼한이 왜와 문화적으로 정체성이 구분된다는 게 왜 세력이 한반도 출신이라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 동이전에 보면 한반도 남부의 삼한과 고구려 부여 세력인 예맥족 역시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인명


말 그대로 '삼월이' 같은 느낌의 이름이다.
에로게/미연시에서 가장 많이 쓰인 이름이라고 한다. 다만 독음 랭킹으로는 6위인데, 이 기준에서의 1위는 카오리이다.

3.1. 실존인물



3.2. 가상인물



4. 일본의 음식점


정확한 이름은 やよい軒(야요이켄) 홈페이지. 일본에서 대중적인 일반 음식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밥천국. 대부분 24시간 운영하지만, 점포 상황에 따라 심야에 1시간 정도 닫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 지역에 점포가 있으며, 일본의 가정식 위주, 낫토, 가라아게, 가츠동, 돈가스, 햄버거 스테이크 등을 판매한다.
위의 가상인물 중, 타카츠키 야요이와 엮여서 오사카타카츠키시역 근처에 위치한 타카츠키점은 야요이 생일인 3월 25일만 되면 아이돌 마스터팬덤으로부터 반쯤 성지 취급을 받는다.

5. 철도역


[1] 이전까지는 금속기가 유입되지 않았다가 동시에 유입되었다.[2] 토기가 처음 발굴된 곳에는 야요이 토기 발굴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네즈역도쿄대학 혼고 캠퍼스가 있다.[3] 동모, 동과 등등 그런데 이러한 청동제 무기들은 훗날 제구로 용도가 바뀐다.[4] 청동방울인 동탁. 삼국지의 모 인물과 헷갈리지 말자.[5] 야요이 시대의 석기는 형태, 석재가 한반도의 것과 동일했으며, 철기 및 청동기 역시 거의 동일한 모습을 띠었다.[6] 천선행, <무문토기시대 한일간 지역관계변천>, p.35[7] 한의 경우는 신지, 읍차 등의 지금의 우리로서는 잘 알 수 없는 고대 삼한어가 적혀 있는데 왜의 경우는 ​미미나리(彌彌那利), 비노모리(卑奴母離) 등의 현대 일본어와 연결되는 단어가 분명하게 적혀 있다.[8] 변한이 왜와 가깝기 때문에 그의 영향을 받아 문신 문화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 한반도 남부에 열도로 이주하지 않고 남아있던 왜인이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은 가야의 여러 왕국들이 성립되면서 기록이 소멸하는 걸로 보아 곧 동화된 걸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남부와 가까운 큐슈에도 한인 계통의 유적이 발견된다.[9] 읍루와 부여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비슷하다. 부여와 읍루도 가까이 있긴 했지만 언어와 풍습이 다르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읍루는 후대에 등장하는 말갈의 전신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