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r20180326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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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et
1. 개요
2. 인터넷의 역사
2.1. ARPANET의 탄생
2.2. ARPANET의 탄생 이후
2.3. WWW의 탄생
2.4. 한국에서
3.1. 인터넷과 WWW
4. 하이퍼링크, 하이퍼텍스트
4.1. HTML과 W3C
5. 인터넷의 기원에 대한 떡밥
6.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전 행사
7. 인터넷 혁명
8. 인터넷의 파급효과
9. 나라별 인터넷 속도
10. 인터넷 관련 용어
11. 관련 문서


외국 인터넷에 대한 것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영상.[1]

인터넷은 인간이 발명해 놓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최초의 발명품이며,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무정부주의에 대한 실험이다.

- 에릭 슈밋


1. 개요


인터넷(Internet)은 인터넷 프로토콜 스위트(TCP/IP)를 기반으로 하여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를 일컫는 말이다.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거대한 정보의 바다인 셈이다. 인터넷[2]하면 흔히 이라고 줄여 부르는 월드 와이드 웹만 생각하기 쉽지만 인터넷은 월드 와이드 웹, 전자 메일, 파일 공유(토렌트, eMule 등), 웹캠, 동영상 스트리밍, 온라인 게임, VoIP, 모바일 앱 등 다양한 서비스들을 포함한다.
1969년 미국 국방부에서 군사 목적으로 만든 UCLA스탠퍼드 대학교 등이 보유한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ARPANET이 시초였다. 지금은 상대방을 만나지 않아도 컴퓨터 한 대와 랜선, 그리고 돈만 있으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21세기 최고의 가상 공간으로 발전했다.
대한민국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인터넷 통신망을 구축해 국내 초고속 인터넷망의 기초를 닦았지만 외국에 다녀본 사람이 아닌 이상[3] 아무도 그런 걸 신경 쓰진 않는다. 자세한 것은 [4] 1999년케이블인터넷ADSL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초고속 인터넷이 크게 보급되었다. 특히 ADSL이 인터넷 보급에 큰 역할을 했는데, 이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첫 정보통신부 장관이었던 배순훈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5]의 결정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김대중은 동케이블(...)로 인터넷망을 구축하려 했는데, 배순훈 전 장관이 이를 극구 만류하고 광케이블을 설치하도록 설득하였다. 이 때 만약 그냥 동케이블을 깔았으면...망했어요
관공서에 인터넷이 설치되려면 인프라의 설치가 선행되어야 하고, 또한 관공서는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사는 웬만한 지역마다 있기 때문에 모든 지역에서 그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다. 민간인들은 이 인프라를 통해 인터넷을 설치하기가 쉬워지고 이를 통해 인터넷망의 보급이 촉진된 것이다.
더불어 하나로텔레콤과 두루넷, 메가패스 등의 인터넷 제공 업체의 탄생은 인터넷의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6] 당시에는 IMF 시절인지라 정보통신 산업으로 경제를 다시 살리는 게 중요 정책 중 하나였다. 벤처 열풍, 국민PC 등등.
인터넷은 컴퓨터 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의 최종 발전체이긴 하지만, 정보 공유는 물론이며 소통의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곳이 과연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다시금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왜냐하면 수많은 악플과 병크, 찌질이들이 인터넷 어딘가에 남모르게 돌아다니고 있는 데다가, 불법 공유로 인해 오프라인 콘텐츠 시장이 개발살나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역기능이다.[7] 그리고 또다른 대표적인 역기능 중 하나는 바로 인터넷 중독이다. 그만큼 우리 삶에 인터넷이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현재는 인터넷 없이 컴퓨터를 도저히 못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히려 컴퓨터를 지배해 버린 상태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서 위키위키도 생겼고 위키니트도 생겼고... 반달도 생겼다.
반면 인터넷의 순기능에 대한 예시로, 2010년에 인터넷이 노벨평화상 후보가 되었다! 만약 인터넷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면 최초로 '사람 및 단체가 아닌' 무형의 기술이 상을 받는 사례가 된다. 그래서인지 노벨 위원회도 일단은 후보이지만 받을 리는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중. 인터넷이 상을 수상하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관련 캠페인까지 벌어졌으나 결국 2010년 노벨평화상은 류샤오보가 가져갔다. 다만 후보에 오른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인권 탄압이나 사회 문제 등에 있어서 주의를 환기하고 해결에 힘을 보태는 데 인터넷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 것이다. 인터넷의 이러한 순기능은 최근에 와서도 점점 커지고 있으며 이미 그렇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귀가 안들리는 청각장애인들에는 또 하나의 소중한 존재 중 하나가 인터넷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라디오가 큰 의미를 가졌던 것처럼 인터넷이 청각장애인들에게 그 역할을 하는 셈. 자유롭게 정보를 받고 의견을 개진하는 데 있어 이만한 것이 없다. 현재 장애인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기기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으니 그 장점이 점점 커질 것은 당연지사.
장하준 교수에 의하면 인터넷은 대단한 발명품이긴 하나 세탁기에 비하면 아직은 인류에게 끼친 영향이 적다고 한다. 물론 점점 빨라지는 기술의 발전과 스마트폰의 대중화, 사회 문제에 있어 커지는 영향력을 보면 인류의 대표적인 발명품 중 하나가 되는건 시간문제다. 1999년, 영국에서 독방에서 100시간 생존 게임 실험을 한적이 있는데 인터넷만으로 생활하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나왔다. 이게 1999년에 나온 실험 결과다!#
이보다 앞서서 널리 퍼진 PC통신은 무려 30년 전인 1980년대에 퍼진 프랑스미니텔이 대표적이나, 이 성공이 역설적으로 인터넷 보급을 막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결국 2012년 6월 30일 서비스 중단. # 항목 참조.

2. 인터넷의 역사




2.1. ARPANET의 탄생


1969년 미국 국방부 산하의 고등 연구국(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ARPA, 현재의 DARPA)에서 핵전쟁 하에서도 안정적인 정보 교환을 위한 네트워크 연구에 착수하였다.[8] 그 결과 기존의 회선 방식보다는 패킷 방식이 안정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또는 EUCLA)와 스탠퍼드 연구소(Stanford Research Institute, SRI),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 바버라(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또는 EUCSB), 유타 대학교(University of Utah) 이상의 4곳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최초의 패킷 스위칭 네트워크인 ARPANET이 탄생하였다.

2.2. ARPANET의 탄생 이후


ARPANET은 초기에 NCP 패킷 송출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1983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현재와 같은 TCP/IP 패킷 송출 방법[9] 으로 전환하였다. 원래 군사적인 목적[10]이었던 ARPANET에 눈독을 들이는 기업이 늘면서 이 때 일반인을 위한 ARPANET과 군사용의 MILNET으로 분리되어 현재의 인터넷 환경의 기반을 갖추었다. 한편 미국 국립과학재단(NSF)도 TCP/IP를 사용하는 NSFNET라고 하는 새로운 통신망을 1986년에 구축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NSFNET는 전 미국 내의 5개소의 슈퍼컴퓨터 센터를 상호 접속하기 위하여 구축되었는데 1987년에는 ARPANET를 대신하여 인터넷의 근간망(backbone network)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인터넷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2.3. WWW의 탄생


1989년 3월,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Organisation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11], CERN[12])의 소프트웨어 공학자 팀 버너스리 경(Sir Timothy John “Tim” Berners-Lee, OM, KBE)[13]에 의해 전 세계의 대학 및 연구소들끼리의 상호 연구를 잘 하려면 정보를 신속하게 교환할 수 있지 않아야 하겠나, 해서 문서뿐만 아니라 소리, 동영상 등을 망라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전문 열람 소프트웨어로 열람하는 방식을 생각해 내게 된다. 이것이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WWW)의 탄생이다.
참고로 세계 최초의 월드 와이드 웹 사이트는 http://info.cern.ch/hypertext/WWW/TheProject.html 이며, 1991년 8월 6일에 오픈한 사이트로서 월드와이드웹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여담으로 세계 최초로 인터넷에 업로드된 이미지는 이것이다:

CERN 연구소 여성직원들 몇명이서 만든 코믹 밴드 "Cernettes"의 사진.

2.4. 한국에서


한국에서는 1982년에 서울대학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구미 전자기술연구소가 TCP/IP를 이용하고 1200bps 전화선을 통해 연결한 SDN이 인터넷의 시초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것은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연결된 인터넷 망이었다. 그것도 자체 개발로. 그리고 이 연결을 주도했던 전길남(Kilnam Chon) 박사는 세계 인터넷 개척자 30중 한 명으로 인터넷 소사이어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4] 관련 만화관련 기사
1983년에는 UUCP[15]를 이용해서 네덜란드와, 1984년에는 미국의 CSNET과 연결했다. 그런데 이 시절에는 회선 유지비가 비싸서 CSNET 유즈넷의 자료를 마그네틱 릴에 백업받아서 우편으로 한국에 가져올 정도였다고 한다. 회선비용도 부담이었지만 당시에는 전송 속도가 너무 느려서 대용량 자료는 이런 식으로 전달받는 게 일반적이었다.[16][17] 1986년에 IP 주소를 할당받은 이후에는 카이스트, 서울대학교, ETRI 등 초창기 인터넷을 사용하던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IP와 도메인을 할당하다가, 1994년부터 KT의 KORNET, 데이콤인터넷, 아이네트의 누리넷 등이 일반 기업 및 개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연구기관이 아닌 일반인들도 점차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첫 서비스는 지금처럼 포탈 서비스 뜨고 그런 것은 물론 아니고 광활한 터미널 화면에 프롬프트만 깜빡이는 화면이 제공되는 것이었으므로 실질적으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사용하기 힘들었다. 1995년부터 누리넷이 대중매체에서 흔히 알려진 PC통신의 모습인 쉬운 사용자 환경으로 제공하면서 인기를 끌어 일반인 사용자가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9년 ADSL, 2002년 VDSL, 2005년 100Mbps 광랜, 2014년 1Gbps 기가 인터넷을 거쳐 인터넷 사용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3시 50분 ~ 7시까지는 인터넷 속도가 급격히 줄어든다. 인터넷 회사들의 대다수 서버가 점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의 인터넷은 ActiveX를 쓰는 곳이 많아서 크로스 플랫폼이어야 할 인터넷의 본질과는 다르게 플랫폼 의존성(x86[18] Microsoft Windows)이 있다. 그래서 iOS/안드로이드가 촉발한 대모바일시대가 오면서 현 한국 인터넷 환경에 대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명실상부한 갈라파고스화의 예시라고 볼 수 있다.

3. 월드 와이드 웹



3.1. 인터넷과 WWW


워낙 WWW가 대세이기에 WWW를 인터넷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WWW은 다음 세 가지의 기능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 통일된 웹 자원의 위치 지정 방법. 예를 들면 URL(Uniform Resource Locator). 두 번째, 웹의 자원 이름에 접근하는 프로토콜(protocol). 예를 들면 HTTP. 세 번째, 자원들 사이를 쉽게 항해할 수 있는 언어. 예를 들면 HTML. 따라서 메일 등은 SMTP나 IMAP 등의 프로토콜을 사용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WWW는 아니다.

4. 하이퍼링크, 하이퍼텍스트


우리는 너무 흔하게 사용하여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하이퍼링크(Hyperlink)이다. 앞에서 상술한 인터넷의 역사, 특히 WWW 문단을 보면 원래 WWW은 학술 자료 열람용이었다고 되어 있는데 영미권의 학술 자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용이다. 한 자료가 얼마나 권위가 있냐를 따지거나 심지어 한 대학을 평가할 때도 이 인용 횟수를 따질 정도이니까. 특히 이러한 인용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 바로 구글의 페이지 랭크이다. 각설하고, 이러한 인용은 책에서 각주나 책 뒷장에 몰아 실릴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하이퍼링크이다. 즉, 하이퍼링크는 애초에 인용을 전자식으로 각색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하이퍼링크를 담고 있는 것을 하이퍼텍스트라고 부른다.

4.1. HTML과 W3C


하이퍼링크, 하이퍼텍스트와 함께 WWW를 특징 짓는 것이 바로 HTML이라는 언어이다. 이 언어는 하이퍼텍스트를 사용하고 표시해주는 언어로써, 팀 버너스리가 WWW 개념의 시초가 된 엔콰이어(Enquire)를 창안한 이래로 1994년, W3C(World Wide Web Consortium)를 창립하여 현재까지 HTML에 대한 규격을 만들어오고 있다. 최근의 HTML5 지원이니 뭐니 하는 것도 W3C에서 작업하고 있는 것. 참고로 이것이 팀 버너스리가 1991년 8월 6일 최초로 만든 웹 사이트이다.

5. 인터넷의 기원에 대한 떡밥


보통은 인터넷의 시작을 ARPANET으로 잡는데, 인터넷(Internet)이라는 단어 자체가 말해주듯이 각 지역 네트워크(Local Area Network, LAN 즉 인트라넷)을 연결(International Network)하기 위해서 출발했기 때문이다.[19] [20] WWW을 인터넷의 시작으로 잡는 경우에는 단순히 인터넷이 컴퓨터 상호 간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웹 사이트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후부터 일부 소수의 전문가, 얼리 어뎁터 집단의 점유물이 아닌 대중 전반의 정보 교류로 확장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WWW을 인터넷의 시작으로 보는 쪽에서는 '현재의 웹 사이트가 없는 인터넷을 과연 인터넷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 그리고 '군사적 목적으로 시작한 ARPANET을 인터넷의 시초로 잡는다면 좀 슬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유럽 쪽의 의견에 손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WWW보다는 ARPANET을 인터넷의 시작으로 잡는다.[21] 이러한 인터넷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미국 VS. 유럽의 자존심 싸움으로도 번져, 소설 <천사와 악마>에도 나오듯이 미국유럽 간에 인터넷의 기원에 대한 의견 대립은 꽤나 골이 깊은 편이다.[22] 이는 인터넷의 시작을 어느 쪽으로 잡는지에서부터 인터넷의 정의에 관한 문제로써, 개인마다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다. [23]
다만 rmtp(미디어 전송, 스트리밍이나 인터넷 TV,올레TV같은 VOD),voip(인터넷 전화,보이스톡 같은 음성전송), dns(도메인 주소를 ip로 전환해줌)등과 같이 인터넷인지도 모르고 우리가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 집단에서는 아무래도 ARPANNET 손을 들어줄수 밖에 없다. 특히나 이러한 프로토콜이 오늘날 실제 인터넷 트래픽의 대부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24]

6.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전 행사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전 행사에서, 영국은 팀 버너스리를 소개하여 인터넷의 뿌리가 WWW임을 표명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한순간에 논란이 종식될 리가 없지만, 행사의 한 부분을 버너스리, 한 인물에게 집중하면서까지 강조를 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소개한 측면도 있지만, 단순히 컴퓨터 네트워크(ARPANET)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인터넷은 WWW부터 시작한다는 영국, 더 나아가 유럽 쪽의 의견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7. 인터넷 혁명


인터넷의 태동은 소위 '인터넷 혁명' 이라고도 한다. 혁명이라는 단어에서 의미하듯 인터넷 시대로의 진입은 이제껏 인류사회에 없던 거대한 변화를 이루어냈다. 불과 20년전만 해도 외국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수단은 국제 전화라든가 편지 등의 수단 뿐이었고, 그마저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인류는 침대에 누워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사람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항공술의 발달 이후 태동한 '지구촌'의 개념을 더욱 현실화 시켜주었다. 때문에 농업 혁명, 산업 혁명과 함께 인터넷 혁명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8. 인터넷의 파급효과


  • 인터넷으로 인하여 오프라인에서의 범죄를 저지르기 어려워졌다. 인터넷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범죄를 저지르면 멀리 떨어진 나라로 도망가서 조용히 짱박혀 살면서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땡이었으나 이젠 그게 불가능하다. 한 번 범죄를 저지르면 현상수배서가 인터넷에 올라오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다 열람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범죄자는 도망갈 곳이 없다. 홍석동 납치 사건의 경우도 범인들을 체포하는 데 인터넷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인터넷 특화 범죄가 많아졌다.
  • 인터넷으로 인하여 재택근무에 해당하는 직렬의 직업이 많이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쇼핑몰, 스트리머, 웹툰 작가 등의 직업이 인터넷으로 인해서 생겨났다. 물론 웹툰 작가는 만화가가 업그레이드된 직업이긴 하지만 나머지는 순수 인터넷으로 인해 생긴 직업이다.
  • 인터넷의 기능 중 하나인 업로드다운로드 덕분에 누가 특정 정보를 업로드(올려놓기)으면 어디에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또다른 사람이 그 올려놓은 정보를 해당사이트에 접속한 후 거기서 집어다가 자기 컴퓨터에 다운로드(가져가기)를 해서 유용하게 사용한다. 중요한 것은 정작 다운로드를 받은 사람이 다운로드를 받은 물건을 재미나게 사용하는데 정작 그걸 업로드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혜택은 보는데 누구 덕분에 혜택을 보는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 각종 서류 및 문건 관리가 훨씬 쉬워졌다. 회사의 예를 들면 기존에는 문서화시켜서 캐비닛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디스켓이라 하더라도 자료를 들고 돌아다니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나 인터넷이 생김으로 인해서 인터넷 사이트 및 개인 계정에 문건을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빈 손으로 돌아다니더라도 언제든지 문건을 열람할 수 있으며 분실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최근 스팀을 비롯한 ESD도 등장하면서 게임이나 소프트웨어의 물리적 장치(CDDVD 등)가 훼손되거나 분실하여도 개인 계정만 잘 관리한다면 인터넷이 되는 어디서든 실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 구인 구직도 집에서 할 수 있으며 더군다나 하루에 몇십 곳의 업체에 이력서를 넣는 게 가능해졌다. 그 결과 좀더 다양하게 비교 분석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결국 구인 및 구직자들이 자기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상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 물건을 구매하는 것조차 집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각종 구매사이트나 여행사, 각종 역이나 공항 사이트에 접속해서 인터넷 구매를 해두면 굳이 물건을 사러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 생판 얼굴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대화하는 게 가능해졌다. 심지어는 나이도 국적도 직업도 성별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힘을 합쳐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스페인에서 서로 상대방의 이름도 직업도 아무것도 모르는 고전 게임 덕후들끼리 모여서 스트리트 오브 레이지 리메이크라는 게임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게임이 또 대박이 났다. 또한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라는 가수와 빌리 해링턴이라는 배우가 대한민국에 알려진 이유 역시 인터넷이다.
  • 전문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졌다. 간혹 인터넷에는 제대로 된 정보가 없다는 말이 존재하지만 이는 위키나 SNS때문에 생긴 편견이지 인터넷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요즘은 RISSDBpia, 최종병기급인 구글 학술검색의 존재로 인해 인터넷이 '훨씬 양질의 자료'들을 '훨씬 빠르고 편하게' 구할 수 있다.
  • 극우[25]극좌[26] 를 비롯한 정치극단주의, 종교극단주의[27], 사이비 종교, 자국혐오, 매국노[28], 파시즘[29], 전체주의, SJW, 민족차별주의, 성차별주의[30], 국수주의, 비뚤어진 애국심등을 비롯한 모든 유형의 극단주의 중 하나 이상을 가진 자들이 인터넷에서 보장되는 익명성을 악용하여 쉽게 활동할 수 있으며, 여러 극단주의자들이 난립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판국에 극단주의자들 중 한 집단이 인터넷 여론과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될 경우, 그들의 의견과 가치관이 인터넷 여론의 주류가 되고 그들의 가치관과 의견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치관과 의견이 인터넷에서 위축되거나 말소되는 최악의 상황이 나올 수 있다.[31]

9. 나라별 인터넷 속도


순위
국가
2016년 2분기 평균 속도
(Mbps)

속도 등락
(전분기 비교)
속도 등락
(전년 비교)
-
세계 평균
6.1
-2.3%
14%
1
대한민국
27.0
-7.2%
17%
2
노르웨이
20.1
-5.8%
55%
3
홍콩
19.5
-1.9%
15%
4
스웨덴
18.8
-8.8%
19%
5
스위스
18.3
-1.9%
17%
6
핀란드
17.6
-0.6%
26%
7
라트비아
17.5
-4.5%
23%
8
싱가포르
17.2
4.5%
27%
9
일본
17.1
-5.7%
5.1%
10
아이슬란드
17.0
-2.6%
49%
순위
국가
2016년 2분기 최고 속도
(Mbps)

속도 등락
(전분기 비교)
속도 등락
(전년 비교)
-
세계 평균
36.0
3.7%
2.5%
1
싱가포르
157.3
7.1%
44%
2
홍콩
114.3
3.6%
21%
3
대한민국
110.1
6.3%
33%
4
바레인
100.9
32%
-12%
5
카타르
97.8
9.6%
36%
6
마카오
94.5
10%
51%
7
인도네시아
91.9
-17%
335%
8
대만
88.8
6.9%
23%
9
일본
85.3
0.9%
14%
10
루마니아
84.2
2.2%
22%
소스
전반적으로 인터넷 속도가 빠른 지역은 이와 같다. 1위인 대한민국이 2위인 노르웨이를 여유롭게 따돌리고 있다.
국내 지역별 속도는 2016년 10월 기준 다음과 같다.
순위
광역자치단체
100Mbps 회선 다운로드 속도
(Mbps)

지역
1Gbps 회선 다운로드 속도
(Mbps)

-
전국
79.6
전국
316.4
1
세종
92.3
울산
371.9
2
인천
90.1
전남
367.1
3
전북
88.5
제주
355.7
4
충남
88.3
대전
353.7
5
강원
83.5
광주
342.8
6
충북
82.0
충북
337.6
7
경기
80.7
강원
336.7
8
대전
79.5
대구
333.1
9
서울
78.6
세종
326.0
10
광주
78.5
경북
311.4
11
경북
78.4
인천
303.8
12
전남
77.8
충남
303.3
13
제주
75.6
경남
294.6
14
부산
72.3
경기
293.5
15
대구
71.8
전북
284.7
16
울산
71.2
부산
280.0
17
경남
71.0
서울
275.5
출처 인터넷 품질현황
하지만, 다운로드 속도만 가지고 인터넷 속도를 빠르다고 단정하는 건 100% 함정이다. (요는 대칭형 VS 비대칭형 문제)

10. 인터넷 관련 용어



11. 관련 문서



[1] 단, 케이블방송 과점 문제는 대한민국도 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케이블 SO가 아니면 대안이 없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그들의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는 IPTV, 광인터넷 등의 수단이 있다는 것이다.[2] 인터네트워크(internetwork)에서 나온 이름이다. 하지만 인터넷과 인터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개념이며, 이를 구분하기 위해 인터넷은 Internet 또는 INTERNET과 같이 고유명사로 표기한다.[3] 몇몇 나라를 빼면 한국 인터넷이 굉장히 빠른 걸로 유명하다. 일단 위에 있는 영상을 보자. 그나마 보급도 원활하고 속도도 양호한 일본은 별 차이 없긴 하지만, 100메가급을 즐기기 위해선 한국 인터넷 요금보다 두 배 이상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4] # 김영삼 대통령의 "초고속 정보 통신망" 추진 링크 참고. 1994년부터 2001년까지 7년간 추진된 셈이다.[5] 여담으로 이 분은 대우전자의 사장 출신이기도 했다.[6] 그리고 한국 최고의 인터넷 제공 업체를 종결낸 승리자는 메가패스, 즉 KT가 되었다(...) [7] 그러나 인터넷 때문에 생겨난 시장들이 돌리는 돈이 더 크므로, 전체적으로는 인터넷 덕분에 시장이 윤택해진 게 사실.[8] 로런스 "래리" 로버츠(Lawrence "Larry" Roberts)는 ARPANET을 탄생시킨 과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린다.[9] 빈트 서프(Vint Cerf)는 TCP/IP 프로토콜 탄생에 기여한 사람으로, 래리 로버츠처럼 인터넷의 아버지라 부른다. [10] 상술하였듯이, 핵전쟁 하에서도 안정적인 정보 교환이 목적[11]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약자는 CERN인데 풀네임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를 챘을 터인데, 원래 CERN은 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이었으나 명칭을 변경하였다. 다만 약칭 CERN은 그대로 인정하기로 한 것.[12] CERN은 쎄른, 쎄~ㅎ은, 체른이라 읽을 수 있다는데 CERN이 위치한 스위스 제네바에서 독일어식 발음인 체른으로 주로 읽는 바람에 체른이 일반적이라 한다.[13] 이 연구를 통해 대영제국훈장 2등급에 서임되어 기사 작위를 받았다.[14] 이분은 현재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부총장으로 재임 중이다. 실질적으로 한국의 인터넷 개발을 주도했음에도 학계의 파워 게임에 밀려 학계 주류에는 들지 못하고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하다 정년퇴임을 하자마자 게이오에서 덥썩 물어간 것. 그러나 현재 한국의 성공한 벤쳐 1세대 중 상당수는 이분이 카이스트 재임 시절 키워낸 제자들이다.[15] Unix to Unix Copy Protocol. 유닉스 시스템끼리 서로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간단한 프로토콜이다.[16] 오래된 PC통신 세대도 보통 2400bps 모뎀을 떠올리는 정도지만 저시절엔 300boud 모뎀을 사용했고 애러체크가 잘되는 프로토콜인 zmodem도 나오기전이다. 1메가에 10시간 그것도 국제전화 요금!!! 전송 에러가 났으면 망함..[17] 21세기에도 페타바이트급 대용량 데이터는 물리적인 저장 매체에 담아서 배송하는 쪽이 전송 속도가 더 빠르다. Amazon Web ServicesSnowball이 대표적인 데이터 배송 서비스이다. 전파 망원경에서 외부로 관측 자료를 보낼 때도 하드 디스크를 배송한다.[18] AMD x86-64기반 윈도에서 돌아가기는 하나, 이건 WoW64로 에뮬레이트를 거쳐서 그런 거고 네이티브 64비트 ActiveX는 2018년 시점에서도 전무하다.[19] ARPANET이 군부대, 연구소,기업 대학에 있던 각 인트라넷을 서로 연결하기 위해 개발된 인프라였다.[20] 특히 지역네트워크를 지칭하였던 도메인(domain),지역네트워크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지점을 Gateway(관문)이라고 부르는 등 당시의 구축된 인터-네트워크 개념이 오늘날 그대로 남아 있다.[21] 특히나 현재에도 광범히 하게 사용되는 이메일(smtp),ntp,ftp,dns등과 같은 서비스는 http(www)이전 부터 널리 사용되었다[22] 물론 천사와 악마의 배경이 WWW를 창안했다는 자부심을 갖는 CERN이 배경이여서 더욱 부각된 면이 있기는 하다.[23] 특히 유럽 미국간의 자존심 대결을 떠나 email을 비롯 gopher(웹이 등장하기 전에 검색엔진+html역할을 하였다),mailing service(푸싱서비스 및 오늘 날의 불법 파일 공유 역할), gml,sgml(html의 전신),irc(인터넷 채팅) 같이 www이 등장 이전부터 인터넷을 사용했던 소수들과 오늘날의 www 형태의 인터넷을 처음 접하는 다수간의 인터넷에 대한 관점에 대한 차이도 있을 수 밖에 없다.[24] 전문가들 특히 네트워크 분야 종사자들에게 있어서는 http(www)은 수많은 다양한 프로토콜중에 하나일뿐이다.[25] 예를 들면 나치즘네오 나치.[26] 예를 들면 스탈린주의.[27] 종교극단주의 중에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사례는 이슬람 극단주의이다.[28] 예를 들면 친일반민족행위자, 종북주의자가 있다.[29] 좌파 파시즘, 네오 파시즘, 에코 파시즘 포함.[30] 남성우월주의페미나치.[31] 일본의 경우 2010년대 이후 우경화로 넷우익과 극우들이 인터넷 여론의 주류가 된 상태이고, 한국의 경우 한 집단에 의해서 인터넷 여론이 독점되는 상태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극우와 종북주의자, 페미나치, SJW등을 비롯한 여러 유형의 극단주의자들이 난립하고 있다고 하지만 1997년 IMF 사태 이후를 시작으로 하여 이명박근혜 정부의 수많은 실정과 독재정권으로부터 비롯된 병폐의 지속,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국수주의가 대세였던 과거와 달리 자국 혐오가 인터넷 여론의 주류가 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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