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어 모렐 (r2019031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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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테오도어 모렐
(Theodor Gilbert Morell)
연도
1886년 7월 22일 ~ 1948년 5월 26일
국적
나치 독일
1. 개요
2. 생애
2.1. 출생과 성장
2.2. 나치당 활동
2.3. 최후
3. 그가 히틀러에게 처방했던 약
4. 여담



1. 개요


아돌프 히틀러의 주치의. 그리고 히틀러를 마약중독자로 만든 걸로 유명한, 제대로 된 학위와 면허가 있는 돌팔이다. 그러나 그는 나치 독일이 자행했던 악행에 전혀 동조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며, 분명 의사로선 돌팔이었지만 피해자가 생체실험을 당해도 싼 인물인 데다 모렐을 기용하고 신임한 게 본인이니만큼 순전히 자업자득인 관계로, 여느 돌팔이들과는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헤르만 괴링은 비꼬는 투로 그를 '제국 주사부 장관'이라고 부르곤 했다. 마약중독자인 지가 할 말이 아닐텐데?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묘사된 모렐의 모습은 유대인을 닮은 외모에 음식을 소리 내서 먹고 몸에서 암내가 장난이 아니었다는 증언도 나온다.

2. 생애



2.1. 출생과 성장


모렐은 초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그르노블과 파리의 산부인과에서 공부해서 1913년에 박사 학위를 땄다. 1차대전 때는 군의관으로 종군했으며, 종전 후 베를린에서 '구식 치료법에 얽매이지 않는 의사'로 명성을 얻었고, 페르시아루마니아의 국왕이 그를 주치의로 두길 바랐지만 거절했다. 모렐은 후일의 노벨상 수상자 일리야 메치니코프에게 배움을 받기도 하고, 여러 대학의 교수로 활동했으며, 규모가 큰 제약회사의 대주주였고, 1936년에는 베를린의 번화가 쿠담 거리에서 잘 나가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요약하면 평범한 의사의 출세 이야기이겠지만... 어느 날 그에게 아주 특별한 인생의 전환점이 생겼다.

2.2. 나치당 활동


모렐은 1933년에 나치당에 가입했다. 그 후 아돌프 히틀러의 사진사인 하인리히 호프만을 치료해주면서 점차 인맥을 쌓더니, 호프만과 에바 브라운으로부터 히틀러의 주치의로 소개받는다. 당시 피부 발진과 위장 가스로 고생하던 히틀러에게 모렐은 여러 의약품을 조합하여 히틀러의 증상들을 치료했고, 대다수의 나치 지도자들은 그를 높게 평가했으나 하인리히 힘러헤르만 괴링은 그가 돌팔이라고 느꼈다.
모렐은 이후 친위대 출신의 다른 주치의인 카를 브란트와 경쟁했는데, 히틀러는 모렐의 편을 자주 들어주었다. 이게 얼마나 심했냐면 1944년 10월 5일에 카를 브란트가 모렐의 약 처방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내었는데, 히틀러는 이 의견서를 보고 역으로 카를 브란트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을 정도였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를은 아예 총통부 의사직에서 해임당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멸망테크를 타게 된다.
이렇게 모렐은 히틀러 옆에서 치료 활동을 했고, 1944년에 7월에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에도 모렐은 각종 약을 써서 히틀러의 기운을 차리게 했다. 그러나 1945년 4월에 히틀러는 그의 도움이 이제 없어도 된다고 하며 그를 총통 방공호에서 떠나게 해주었다. 그가 얼마나 히틀러에게 신뢰를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가 신뢰를 받은 이유도 간단하게 추측할 수 있다. 히틀러는 말년으로 갈수록 병적으로 사람들을 의심했다. 가까운 모든 사람을 의심한 덕분에 히틀러는 나치 초기부터 동고동락한 괴링, 힘러 등의 측근들이 아니라 권력 서열의 저 아래에 있었던 카를 되니츠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정했다. 측근들이 야심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정치적 욕심을 보이지 않고 자기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렐은 히틀러에게 신뢰할 만한 몇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모렐이 맡은 임무는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것이다. 신뢰를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체코에서 영국 공작원에게 피습당해 심한 패혈증으로 중태에 빠지자, 모렐은 당시 독일에서 개발한 항생제인 술폰아미드의 처방을 권고했다. 항생제 중 페니실린은 당시 독일에선 구할 수 없어서 대신 술폰아미드를 택한 것. 이 처방 자체는 의외로 정상이었다. 하지만 하이드리히의 치료를 맡았던 카를 게프하르트는 이 권고를 무시하였고, 결국 하이드리히는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2.3. 최후


독일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타려던 모렐은 미군에게 체포된다. 그러나 히틀러의 최측근이기는 했지만 카를 브란트카를 게프하르트 같이 의학실험을 핑계로 학살 같은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나치에 열혈 충성했으나 그가 한 일은 히틀러의 건강을 해친관리한 것 뿐이었기에 전범이나 학살자로 취급할 수도 없고, 잡아 가둘 죄도 명분도 없었다. 거기에 당시 모렐은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서 뇌졸중 등 여러 병을 앓던 상황이라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연합군은 모렐을 석방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3년 뒤에 고향 테게른제에서 뇌졸중으로 별세한다. 이처럼 히틀러 주치의로 역사에 남게 되었지만, 히틀러와 가까이 있던 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 어떠한 전쟁 범죄에도 연루되지 않아서, 같이 히틀러와 가까이 있던 자들이 처형당할 때 편히 침대에 누워 숨을 거뒀다.
모렐이 죽고 1주일 후인 6월 2일, 두 쓰레기 쓰레기한테 사과해라 카를 브란트카를 게프하르트는 사이좋게 처형폐기처분된다. 죽기 전에 모렐이 씁쓸하게 남긴 말은 " 친구들이 안 됐군. 나는 침대에서 죽는데..."이었다. 두 인간의 최후는 각 문서 참고.
모렐은 유태인 학살이라든지 다른 인종 학살에 대하여 부정적이었고 인체 실험, 해부는 의사로서 할 짓이 아니라며 전혀 따르지 않았다. 실제로 한 번은 카를 게프하르트가 자신 앞에서 생체실험질한 일들을 자랑하자,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허허 웃으며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다가 몰래 밖에 나가서는 그 잔혹함에 질려 구토하고 말았다. 의사로서 기술적 실력이 있는 나치당 내 다른 의사들은 의사로서 양심적 기본이 안 되어있었지만, 정작 의사로서 기술적 실력이 없는 모렐은 반대로 의사로서 양심적 기본이 되어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

3. 그가 히틀러에게 처방했던 약


모렐은 히틀러에게 하루에 28가지 씩의 알약과 물약, 주사약을 처방했다. 하도 주사를 찔러대다보니 모렐의 진료 기록에는 "주사바늘이 휘었다"는 기록도 간간히 나온다.
현대 기준으로는 주사바늘의 재활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19~20세기에는 위생, 의료부분에서 큰 변혁이 일어난 시기여서 그 때의 의료관습은 지금과 많이 다르다. 가령 군의관들이나 병사들이 멸균 붕대를 처음 지참하게 된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그 전에는 몰라서 살균처리 하지 않은 붕대를 사용했다는 이야기. 이러한 의학적 변화는 주사바늘에도 유효하다. 주사바늘이 1회용 소모품으로 처음 인식된 시기는 히틀러 사후인 1950년대이고, 1회용 주사바늘이 상용화된 시기는 1956년 이다. 주사바늘의 재활용이 당대 기준으로는 상식에 가까웠다는 이야기. 이를 근거로 모렐을 돌팔이 취급하기는 어렵다.
나아가 모렐이 히틀러에게 처방했던 약물들은 그 위험성이 나중에야 알려졌을 뿐, 당대 기준으로 완전히 잘못된 처방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방사성 물질인 라듐을 몸에 좋다고 먹던 시절의 의약품 안전을 지금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1] 다만 당대의 기준과는 별개로 모렐의 처방은 장기간에 걸쳐 사람의 몸을 서서히 망가뜨리는 것이었다. 아래에 나오는 약물의 리스트에는 단기간에는 괜찮을지 몰라도 장기간 처방하면 안되는 약물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흥분제와 진정제를 같이, 장기에 투여한 점이 문제가 된다. 이 처방은 히틀러가 1944~45년에 파킨슨병 징후를 보인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된다.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 나시르 가에미는 저서 『광기의 리더쉽』에서 모렐의 처방이 히틀러의 조울증 증세를 악화시켰다고 단언하며, 난폭하지만 부하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도 알았던 지도자에서 난폭하고 부하들의 말도 듣지 않는 지도자로 바뀌는 데엔 모렐의 처방이 기여했다고 추정했다. 덕분에 전사자의 수가 좀 줄었을지도
  • 브롬화칼륨: 1800년대부터 경련 억제제와 진정제로 쓰였다. 허나 지금은 동물병원의 개와 고양이를 위한 약품으로 쓴다. 테오도어 모렐이 의대 공부시에 썼을 약품이다. 현재 동물에겐 전신 강직성 발작이 불응성일 때 페노바비탈과 병용하는 식으로 쓰인다. 약의 유행이나 안정적인 신물질 개발로 인해 쓰이지 않는 것이지, 처방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여기긴 힘들다.
  • 마전자: 인도산 교목으로 신경 흥분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비장과 위장이 상하는 부작용이 있다.
  • 아트로핀: 유독성 알칼로이드로 경련 완화 효과가 있다. 유독하지만 독가스 해독제로 오늘날 쓰인다. 분량과 쓰일 시점이 문제다. 당장 국군이 운용 중인 신경작용제 해독제인 KMARK-1은 이것과 옥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 나트륨 바르비탈: 진정제 및 수면제다. 단, 호흡 곤란 또는 쇼크 시에 투입하면 위험하다.
  • 시네프린 타르타르산: 광귤 열매에서 추출하는 물질이다. 한국에선 식욕 억제 효과로 왠지 인기가 높지만,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이므로 부작용이 심하고 과다 복용시 사망할 수도 있다. 그 탓에 일각에서는 금지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는 약물이다.
  • 카밀레: 영어로 하면 캐모마일, 쉽게 말하면 국화차다. 이 사람이 히틀러에게 처방한 약물 중 몇 안 되는 멀쩡한 성분.
  • 테스토스테론: 남성호르몬의 일종. 가장 흔히 알려진 남성호르몬이기도 하다. 현대에도 불법 도핑을 위해 사용되는 물질이기 때문에 대단히 큰 문제는 없어보이지만, 이유없이 남성 호르몬을 맞거나 복용하면 나오는 대표적인 부작용이 고환 축소이다. 고환 역할이 줄어드니 굳이 크게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 음모론에서 종종 나오는 "히틀러는 남성호르몬 맞은 여자다" 라는 헛소문이 이 처방 때문일지도 모른다.
  • 페르페나진: 조현병 치료제, 구토 치료제. 과다 복용시 부작용으로 파킨슨병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히틀러가 말년에 파킨슨병 징후를 보인 것이 이것 때문이다.
  • 카페인: 정신을 각성시키고 피로를 가시게 해준다. 우리가 많이 먹는 커피와 고 3 수험생들이 많이 먹는 에너지드링크에 들어있다. 그러나 너무 많이 섭취하면 카페인 의존증에 걸려 건강에 영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근데 당시는 마약 취급을 받았는데, 저걸 처방하다니 도대체...
  • 벨라도나: 관목의 일종으로 열매를 3알 이상 먹으면 죽을 수 있다. 심박 급속증, 환각, 조급함, 균형 상실, 변비, 굵은 목소리, 목의 건조를 일으킬 수 있다. 요즘에는 경련 완화제인 아트로핀의 원료로 경작하나, 종종 마약으로도 쓰인다.
  • 대장균: (...) 돌팔이라도 이건 진짜 심한 수준이다. 그나마 실험 대상이 히틀러였기 망정이지
  • 디히드로코데인: 현재도 임상이나 외래에서 자주 쓰이는 무난한 진해제.
  • 술폰아미드: 종합 항생제의 일종으로, 요제프 멩겔레, 카를 브란트 등이 인체실험할 때 쓴 술폰아미드와는 다른 물질인 듯하다. 그들이 쓴 독극물은 멀쩡한 술폰아미드 항생제가 아니라 술폰산의 다른 화합물로 보인다.
  • 코카인 & 아드레날린: 둘을 섞어서 안약 형태로 처방했다고 한다. 코카인의 경우, 1903년 이전의 코카콜라에는 마신 사람들이 중독자로 바뀌기 충분할 만큼의 코카인이 들어있었다. 독일에서 마약류 관련법이 제정된 것은 1929년. 일상생활에서 코카인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인지되기 힘들었고, 1차 세계대전 종전 후부터 대공황을 끼고 있던 시절, 패전 후의 독일에서 코카인이라는 마약이 얼마나 많이 일상에서 쓰였는지는 짐작조차 힘들다.
  • 효소
  • 비타민 : 그나마 멀쩡한 성분중에 하나인데 특정 비타민은 많이 먹으면 오히려 독이 된다. 특히 비타민 A. 간 좋아지려고 먹다가 되려 간 망친다.
  • 암페타민: 각성제의 일종으로, 과다복용시 쇼크, 심정지 등의 위험이 있다.
  • 메스암페타민: 우리는 이 물질을 필로폰[2]이라 부른다. 사실 필로폰은 제 2차 세계대전 내내, 연합군, 추축군을 가리지 않고 진통제나 각성제 용도로 무분별하게 쓰였다. 헤르베르트 브루네거 자서전에서도 각성 약물을 지급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독일군이 벨기에-프랑스를 점령할 때는 3일에 걸친 진격을 수행하기 위해 부대 내에서 필로폰을 사단 간부가 직접 관리했고, 일본군 비행사들은 일상적으로 필로폰을 빨았다. 그러니까 마치 오늘날 커피레드불 정도의 인식으로 무분별하게 쓰였다. 필로폰은 1960년대가 되어서야 마약류로 지정되었다. 장기전을 수행하느라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병사들을 움직이는 데 이 만한 물건도 없었다. 그 부작용을 모르는 이상 안 쓰는 것이 이상할 지경.
  • 단백질
  • 지질: 지질은 단백질, 당질, 핵산의 결합체이나 그보다 더 많은 종류를 화합했으며, 생체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 옥시코돈: 마약. 당시에는 '오이코달'이라는 이름으로 모르핀보다 '비교적 무해'하다고 하여 쓰였지만, 막상 약효가 떨어지면 금단 현상, 특히 두려움에 사로잡히며 질식하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며, 치료하지 않을 경우 중독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이 약물은 알약 또는 주사로 투입할 수 있는데, 모렐이 항상 히틀러의 주위에 '알약'과 '비타민을 섞은 주사'를 놓아두었다고 하는 것으로 봐선 이 약도 매일 같이 투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쯤 되면 오히려 히틀러가 1945년까지 병으로 죽지 않고 어떻게든 산 게 신기할 지경이다.
현대 기준으로 위의 투여한 약물 목록을 쭉 훑어보면, 문외한이 보더라도 약물 처방이 신기하다 못해 어이없을 지경이다.[3] 쉽게 말하면 아무리 다정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도 하루아침에 개막장 정신병자로 만들 법한 수준의 약물 투여를 계속 해준 거다. 이와 거의 비슷힌 케이스가 나치 독일에 하나 있는데, 다름아닌 헤르만 괴링. 근데 괴링은 처방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직접 마약을 했다(...).
모렐이 처방한 약들은 캐모마일과 술폰아미드, 효소 등 몇몇 일부를 빼면 하나같이 일시적으로 괜찮아보일 뿐인, 효과만 내는 땜빵에 불과한 것들이며 그 댓가로 더 안 좋은 효과를 가져다주는 사실상 독약들이었다. 심지어 일부는 양을 조금만 더 늘렸다면 바로 죽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지독한 약들이었다.
처방의 특징과 효과를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업 계열의 마약과 다운 계열의 마약을 같이 처방했기에, 진통 효과와 각성 효과가 동시에 나타난다. 각성과 진정이 동시에 일어나니 환각 같은 즉각적인 부작용은 드물었을 것이다. 아울러 필로폰 때문에 일시적으로 머리가 맑아지고 활기가 넘쳤을 것이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히틀러는 부작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독약에 가까운 것을 장기투여했으니,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심지어 비타민조차 과량투여 시 부작용을 일으키므로 위키러들은 참고할 것.
아울러 모르핀을 비롯한 마약들은 의학적 목적으로 사용시 항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된다. 과거에는 의무병들이 1인 3회 제한만 두고 야전 병원과 전장에서 부상자들에게 모르핀 주사를 놓았다. 현대에는 중독과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말기 환자나 절단, 심한 화상 환자 등 정말 고통으로 쇼크사할 정도의 환자들한테만 진통제로 쓰인다. 즉, 모르핀 등의 마약은 부작용이 알려져 있던 당시에는 의미 있는 처방이었다. 모렐이 진통제를 썼다는 것 자체가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진통제를 먹는다고 병이 낫는 건 아니지만, 통증 완화를 통해 환자의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환자도, 중증 외상환자도 아니고 안좋은 생활습관으로 인한 잔병치레나 하던 정도인 히틀러에게 저런 마약류를 다양하게 대량으로 때려부어야 할 이유는 없다.
모렐의 처방을 한 마디로 줄이면 이독제독이 된다. 독으로 독을 다스린 셈. 즉 하나하나만 보면 당시의 의학 수준에서는 적절한 때 적절한 양을 적절한 기간 동안 쓰면 효과적인 약들이었으나 모렐은 이를 지나치게 남용, 오용하였다. 요즘의 예를 들면 항생제나 소염진통제, 소화제 등 대중적인 약을 무식하게 처먹인 거나 마찬가지다.
모렐은 단 한 번도 히틀러에게 자신이 뭘 처방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히틀러는 자기가 먹는 게 뭔진 몰라도 일단 그의 처방대로 먹거나 맞고 나면 몸이 쌩쌩해지고 통증이 싹 가라앉는 등 효과 하난 죽여줬던 데다가, 그의 타고난 귀차니즘[4] 때문에 안 물어본 모양. 아돌프 히틀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치통이 심했을 것이고 그 외에도 자리가 자리니 관절염이나 만성 피로로 인한 통증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대부분의 환자는 의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자신의 몸 상태를 판단하지 않고 자기 몸에 일어나는 통증의 강도를 근거로 몸 상태를 판단하므로, 의사가 공들여 지은 약을 몇 달 동안 먹어 서서히 제대로 낫는 것보다 진통제 한 방 맞고 잠깐 동안이지만 바로 쌩쌩해지는 쪽을 더욱 만족스러워한다. 실제 약효는 거의 없이 진통 효과가 전부인 파스가 만년 스테디셀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의사들이 처방전에 진통제를 넣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환자로서는 빨리 안 아프고 싶을 따름이고, 의사들도 진통제를 처방해주어 통증을 덜어주려는 것. 진통제도 엄연히 약물이므로 운 없으면 부작용이나 내성이 생기는 만큼 굳이 먹을 필요는 없다. 크게 아프지 않거나 참을 수 있을 만큼 아프면 의사에게 진통제는 빼달라고 부탁하자. 그렇다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는데도 무리해서 고통을 참을 필요는 없다.
즉 모렐의 처방전은 뭐가 어찌되었든 바로바로 약빨이 서니 히틀러가 아니라 누가 대상자가 되었어도 모렐을 신임하였을 것이다.[5] 같은 맥락에서 히틀러의 주치의가 되기 전에 이미 명망이 높았던 것도 이런 쪽에서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나름 대중들의 건강, 의학 지식도 늘었고, 항생제 처방에 대해 국가적 통제와 정보공개도 하니까 저런 식의 오남용은 할 수 없다. 단지 의사, 약사와 상담 없이 혼자 약을 오남용하는 것을 주의하면 된다. 요즘은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 온갖 이해집단에서 쏟아내는 잘못되거나 과장된 건강 정보를 너무 많이 알아서 홍수가 문제라 카더라... 그러니까 착한 위키러 여러분들은 나무위키 사이트에서 건강정보를 수집하지 맙시다.

4. 여담


이드 소프트웨어의 전설적인 고전게임 울펜슈타인 3D에 등장하는 대머리 안경 돼지 매드 사이언티스트 샵스 박사의 모델로 추정된다.

[1] 그 라듐으로 만든 '라디톨'을 3년동안 1400병이나 마시다가 비참한 몰골에 엄청난 고통을 안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 바로 에벤 바이어스다.[2] 일명 히로뽕, '크리스탈 메스'라고도 불리기도 한다.[3] 특히 마약이나 대장균(...)[4] 마르틴 보어만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 히틀러는 꼼꼼함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사람이었다.[5] 물론 보면 알겠지만 당시 시대에 히틀러 같은 유형이니 그렇다. 만일 지금 시대에 자기 건강에는 굉장히 까다롭고 철저한데다가 의학 지식까지 많다면 저 약물들을 듣고는 기겁을 하고 처방한 주치의를 쫓아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