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테이션 (r2019031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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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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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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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사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제조사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출시일
파일:일본 국기.png
1994년 12월 3일[1]
파일:미국 국기.png
1995년 9월 9일
파일:유럽 연합 깃발.png
1995년 9월 29일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7년 3월[2]
2002년 2월 22일[3]
생산
종료일

2006년 3월 23일
가격
파일:미국 국기.png
$299 → $199 → $149
→ $129 → $99 → $49[4]
파일:일본 국기.png
¥39,980 → ¥29,800
→ ¥24,800 → ¥19,800
→ ¥18,000 → ¥15,000
→ ¥9,800[5]
판매량
1억 249만 대
1. 개요
2. 역사
2.1. 개발
2.2. 출시 이후
2.2.1. 차세대 게임기 전쟁
2.2.2. 게임 가격 공세
3. 사양
4. 특징
6. 주변기기 / 배리에이션
6.1. 포켓 스테이션
6.2. PS one
6.3. 개발기기
6.4. 프로토타입
6.5. 아케이드 호환기
6.6. 복각판: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
6.6.1. 게임 라인업
6.6.2. 평가
7. 기타
7.1. 복사칩 관련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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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jpg
플레이스테이션의 로고[6]
본체, 듀얼쇼크 및 메모리카드

1. 개요



시동 화면[7]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첫 게임기이자 거치형 게임기이다. 1994년 12월 3일, 일본에 처음 출시되어 2006년 3월 23일까지 판매되었고, 한국에는 카마엔터테인먼트를 통해 1997년 3월에 정식 출시되었다.[8] 총 판매량은 1억 249만 대. 경쟁 기기는 닌텐도 64세가 새턴이다.
출시 초기에는 세가 새턴에 밀려 근소한 차이로 100만 대 판매를 먼저 내줬지만 시대를 내다보고 3D에 집중한 지혜로운 선택에, 훗날 가격이 떨어질 부분을 미리 예상하고 만든 설계 구조로 지속적인 본체 가격 인하가 가능했으며 저렴한 로열티와 게임 가격 인하가 가능해진 유통 혁명에 당시 광고계를 선도하던 소니 특유의 마케팅 수법까지 더해졌던 비디오 게임계 혁신의 총합이다.
확실히 게임계에서 소니의 존재감은 옅었고 다들 성공을 예상하지 않았지만 아크 더 래드를 시작으로 발매 3년차인(94년 말에 발매했으므로 사실상 2년차) 96년 파라파 더 래퍼, 철권 2, 바이오하자드, 아크 더 래드 2가 밀리언 셀러가 되었고 97년 파이널 판타지 7이 발매되면서 가정용 게임기 전쟁의 패권은 완전히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넘어가게 된다.
약칭은 PS, 플스 등으로 흔히 불리며 게임 매거진 혼자서 프레스라는 약칭을 사용했지만 별로 보급되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약칭은 "프레스테(プレステ)"인데[9], 어떤 사람들은 직역하여 "아소부에키(遊ぶ駅)"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로 "플스"나 "노는역"이라고 부른다. 뜻의 유래는 워크스테이션에 놀이(Play)이다. 영어권에서는 PS, PS1[10], PSX.[11]
플레이스테이션 2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플레이스테이션 4, PS Vita의 테마에 플레이스테이션의 시동음이 들어갔다.#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에서 받을 수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4용이고, 플레이스테이션 4 본체에서 받거나 PC등에서 웹으로 접속해 미리 구매(무료)할 수 있다.
최다 판매 게임은 1,085만 장의 그란 투리스모.

2. 역사



2.1. 개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NES-CD_add-on.jpg
슈퍼 패미컴용 플레이 스테이션[12]의 콘셉트 아트
플레이스테이션의 탄생 비화에는 닌텐도의 배신으로 인한 소니의 분노로 플레이스테이션을 만들었다는 일화가 전설처럼 떠돌고 있고, 관련 서적이나 유명 블로그등에도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당시 SCE의 이사회 의장이었던 마루야마 시게오가 2016년 자 인터뷰에서 밝힌 진상은 조금 다르다.
닌텐도에 PCM 음원칩을 공급하는 데 성공한 쿠타라기 켄은 그 다음엔 CD를 팔아보고 싶어서 '슈퍼 패미컴의 심장부를 빌려 CD가 돌아가는 장치를 만든다'는 구상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냥 '슈퍼 패미컴의 외장형 CD-ROM 드라이브' 같은 것이었다. 닌텐도는 처음부터 CD에 부정적이었는데, CD는 데이터를 읽어들이는 데에 10~15초 정도 걸리는데,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의 실패를 겪었던 닌텐도는 게이머들이 인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닌텐도를 쿠타라기 켄이 끈질기게 설득해 허락받은 것이 저렇게 구상한 시스템이었다. 소니로서는 '게임 밖에 뭐든지 해도 OK?'라고 했고, 닌텐도가 '콜'했다. 그런데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아라카와 미노루 사장이 '어 이거 뭔가 나중에 ㅈ되는 건가?' 하고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엔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도 조바심을 갖게 했는지 기자회견 발표 직전에 취소되었다.
쿠타라기와 소니 측 홍보 담당 이사, 사장이 되기 전의 이데이 노부유키는 발표회를 위해 교토까지 가서 사전 검토를 하던 도중 '기자회견이 중지되었다'는 말을 듣게 됐다. 하지만 이미 1990년 1월에 계약은 맺은 뒤였다. 이것이 진짜 계약 파기이면 천하의 소니가 소송이든 뭐든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음은 단지 서로가 '어 뭐 좀 해볼까?', '그럴까?' 하는 수준의 이야기였을 뿐이라는 것이고,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익히 있는 일인 것, 그러니까 닌텐도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느니 이런 게 정설처럼 돌고 있지만 다 남들이 부풀려낸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CES에서 필립스와의 발표로 쿠타라기가 뉴스를 보고서야 뒷통수 맞은 것을 알게 됐다'는 것도 자연히 앞뒤가 안 맞아 있다.
아무튼 세간의 기록에는 '1991년 6월 미국 CES의 금요일에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이 발표되었고, 다음 날에 닌텐도가 필립스와의 제휴를 발표하여 뒤통수를 후렸다'는 게 뉴욕 타임즈 기사로도 나와 있으나 당사자의 증언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알려진 것처럼 소니가 CD의 로열티 비용을 탐냈다는 것도 마루야마 시게오는 '카라오케나 만들어 볼까' 정도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고 한다. 소니는 애초에 'CD로 돌아가는 게임 밖의 어떤 것'을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일을 빌미로 쿠타라기가 회사에서 설치고 다니고[13][14][15] 심지어 사장 앞에서 '소니의 오가가 도장까지 찍었는데 안면몰수 당했거늘 이대로 물러나면 사장님 체면이 뭐가 됩니까!' 같은 말까지 했는데 오가 노리오 사장은 그 말에 납득하고 말았던 것이다. 쿠타라기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이 상황을 잘 이용한 것. 이때의 손해액은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로서는 조금 있었지만 소니 그룹으로 봐서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 금액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16] '게임기 외장 부품 제휴사업 계약까지 했지만 발표회가 중지된 이야기'가 쿠타라기 켄 때문에 어느새 '이대로 물러나면 우리는 바보 된다. 그러니 우리도 게임기 사업을 하자!'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오가 노리오 전 사장의 자서전에 따르면 1992년 6월 24일에 게임기의 사업의 진퇴를 결정할 소니 그룹 최고 경영회의에 나타난 쿠타라기 켄은 우리는 이대로 물러나도 좋습니까? 소니는 평생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17]라고 발언하였고, 고화질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가정용 게임기의 시험 제작기는 거의 완성되어 있고 전용 고성능 반도체 칩도 개발할 계획이며 이 제품이 시장으로 나오면 닌텐도의 슈퍼 패미컴과 비교해 실제답고 박력 있는 영상을 본 사용자들이 반드시 산다고 주장했다. 임원 전원의 반대에도 오가 노리오 사장이 진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18]
이때의 또 다른 대화록으로는 "닌텐도에게 먹칠을 당했는데 다물고 있을 겁니까?"[19]라고 하자 오가 노리오 사장은 무심코 "그렇게까지 말하거든 독자노선으로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증명해봐라. DO IT!"[20]'이라는 설도 전해진다.[21]
그 뒤 임원회의 때에 백 수십억 엔짜리 계약서를 들고 와서 주변을 깜짝 놀랬고, 결국 1993년 봄에 그렇게 LSI Logics와 CPU를 만들기 위해 투자한 돈이 140억 엔. 아까의 손해액과는 앞자리부터가 다르다. 그렇게 칩을 백만 대분 주문했고, 팔리지 않으면 정말 끝장이었다. 현장에서는 비명을 질렀고, '목표 100만 대' 라는 당시 광고 구호가 농담이 아니었던 것.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저런 게 50만 대 이상 팔리면 물구나무 서서 걸어간다' 같은 말을 했고 그래서 했나? 업계에서도 비관적 태도로 주시했다. 실제로 소니에서는 서드 파티를 모으고자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게임 업체 등 관련 기업에 돌았지만 좋은 하드웨어인 것은 알겠지만 게임기 사업은 삼가는 것이 좋다거나 300만 대를 팔면 고려해보겠단 등 냉대를 받았다. 그러다가 남코에서 처음으로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 참여하기로 하며 SCE와 밀월 관계를 이루었다. SCE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시스템 라이선스를 남코에 내줬고, 남코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아케이드 기판인 시스템 11을 개발했으며, 이 기판으로 철권, 철권 2, 소울 엣지 등을 개발했다. 당시 SCE의 이사회 회장인 마루야마 시게오는 이에 '대기업 대부분이 300만 대 보급 전망이 있다면 개발을 검토하겠다고 주저하는 가운데 남코만이 개발비를 회수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을 줬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이런 게임 회사들의 분위기에 전환점이 되는 기회가 발생하였는데, 1993년 10월에 세가에서 출시한 버추어 파이터의 대성공이다. 훗날 SCE 이사회 회장이자 그룹의 이사이던 마루야마 시게오와 초대 사장인 토쿠나카 테루히사는 이에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은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의 성공 덕분임을 언론과 서적을 통해 회고했다. 1993년 8월, 31회 오락기기 박람회[22]에서 버추어 파이터의 첫 시연회를 열면서 게임 회사들에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1993년 10월 28일, SCE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시연회를 열었다. 이 시연회에서 쿠타라기 켄은 플레이스테이션의 프로토타입으로 3D 데모를 시연했는데, 그것이 아래의 동영상이다.
[23]
이 데모가 게임 회사들에 큰 호응을 불러 일으켰을뿐더러, 150만 엔이라는 저렴한 개발 장비 가격, 프로그래머의 개발 부담을 덜기 위해 라이브러리 구축을 통한 개발자 지원 등을 통해 SCE는 1994년 여름까지 플레이스테이션에 게임을 내놓기로 계약한 서드파티 게임 회사를 200곳 넘게 확보하였다.
이 밖에도 소니는 그 전에 미국의 올라프 올라프슨이 주축이 되어 미국 세가와 함께 차세대 게임기를 공동 설계하려고 했다. 소니는 세가 오브 아메리카 사장 토머스 칼린스키를 만나 차세대 게임기 하드웨어 시스템 사양과 하드웨어 판매 손실 분담, 수익 분배에 대하는 온건한 계약 조건[24]을 제안했고, 칼린스키 사장은 이를 듣고 제안서를 작성해 이사회에 공동 사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세가 나카야마 하야오 사장과 이사회에서 “멍청한 생각이군, 소니는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만들 줄 모르는데, 이걸 왜 해야되나?"[25]라며 자체 개발로 선회하면서 이것도 무산되었다.#

2.2. 출시 이후



2.2.1. 차세대 게임기 전쟁


우수한 서드 파티를 뒤에 업고 세가 새턴 다음으로, 닌텐도 64보다 빠르게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은 세가 새턴닌텐도 64와 정말 피 터지게 경쟁했다. SCE, 세가 둘 다 닌텐도 64가 나오기에 앞서 상대를 끝장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1995년까지만 해도 닌텐도에서도 "닌텐도 64를 천천히 발매해도 금방 따라잡겠지."라고 판단했을 정도로,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출시부터 이듬해인 1995년까지는 게임계에서 별 것 아닌 존재였다. 심지어는 1995년 2월 4일부터 3월 23일까지 약 46일 동안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그 어떠한 게임도 발매되지 않은 적도 있다. 이로 인해 1995년 봄에만 해도 PC-FX의 재림이라는 악평도 들었다. 최초로 100만 대, 200만 대 판매를 달성한 것도 세가 새턴이다. 주요 게임 언론들은 이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 새턴의 치열한 경쟁 구도를 차세대 게임기 전쟁이라 불렀는데 이 단어는 당시 SCE의 마케팅 총괄 부장이었던 사에키 마사시가 만들어낸 단어였다.
음악계의 큰 손이었던 마루야마 시게오의 수완도 빛을 발했다. 마루야마 시게오는 친한 음악가들에게 플레이스테이션을 무료로 선물했고, 그 음악가들이 플레이스테이션에 빠져 음악 방송 등지에서 플레이스테이션 이야기를 꺼낸 것이 광고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 것. 이른다 바이럴 마케팅이었던 셈. 고작 300대를 무료로 뿌린 것으로 어마어마한 효과를 본 것이다. 소니는 전자 제품을 홍보할 때 보통은 일본의 광고 대행 대기업 덴츠를 통해 홍보하는 전략을 택하는데, 마루야마 시게오가 SCE로 영입해온 사람들은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이었고,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연예인의 방송 출연이 음반 판매 주요 마케팅 전략이었기 때문에 플레이스테이션 홍보에도 비슷한 방식을 취한 것이었다. 덕분에 마케팅에 비용이 얼마 들지 않았을 뿐더러 소니 홍보팀에서 뒤늦게 이 사연을 듣고 기겁해 놀랐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듀얼 CPU를 비롯하여 복잡한 구조의 세가 새턴에 비해, 매우 단순한 구조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생산 단가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당시 적자 행진중이었던 소니 그룹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격 인하 공세를 펼쳤다. 1994년 11월 22일, 세가에서는 세가 새턴을 49,800엔에 출시했고, 출시 6개월간 5,000엔 인하 프로모션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SCE에서는 12월 3일에 플레이스테이션을 39,800엔에 출시했다. 1996년까지 세가 새턴은 일본 시장에서 20,000엔에서 가격 인하를 더 할 수 없었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1996년에 19,800엔까지 인하했으며, 이듬해에는 18,000엔으로 인하했다. 북미 시장에서도 새턴의 시장 선점을 위해 E3 1995 게임쇼의 세가 컨퍼런스에서 $399의 가격으로 즉시 발매를 발표했을 때, SCE 측에서는 컨퍼런스에서 세가 새턴보다는 조금 늦게 출시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의 가격을 $299로 출시하겠다고 발표해 청중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26][27] 이듬해 E3 1996 게임쇼에서는 SCE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의 가격을 $199로 즉시 내리면서, 세가 새턴은 생산 단가면에서 확연히 불리했음에도 가격 인하를 해야 했다. 개발 환경면에서도 복잡한 구조의 세가 새턴보다 플레이스테이션이 우세를 점했기 때문에, 게임의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닌텐도 64는 플레이스테이션보다 하드웨어 성능이 상당히 큰 폭으로 높지만,[28] 경쟁 기종인 세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보다 1년 6~7개월이나 늦게 출시했는데 그 사이 세가와 SCE가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었던 데다가, 저장 매체로 롬 카트리지를 고집하면서 게임기 내부가 복잡해지는 원인을 가져왔으며 CD가 아닌 롬 카트리지를 적용한 결과 그 당시 게임의 대용량화 추세를 맞추는 게 불가능해졌다. 스퀘어에서는 파이널 판타지 6 발매 직후부터 파이널 판타지 7을 3D 기반 RPG로 기획하고 있었으나[29], 빈약한 용량의 롬 카트리지로는 택도 없기 때문에 이는 스퀘어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30]
그리고 SCE에서는 이 틈을 타 소니 그룹의 출자를 통한 파이널 판타지 7 닌텐도 투자금 변제 및 스퀘어의 라이선스 비용 최혜 대우, 일본 내 스퀘어 독자 유통망을 통한 게임 판매를 인정하면서[31], 1996년 1월 12일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으로의 이적을 발표했고, 그 이후 파이널 판타지 7의 플레이스테이션 발매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32] 파이널 판타지 7 발매 이전인 1996년에 플레이스테이션의 승리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지고 있었지만 파이널 판타지 7가 대히트를 치면서 닌텐도까지 넘어서는데 성공하였고, 판매 대수 면에서 2위인 닌텐도 64와 2배 이상의 격차를 보이며 거치형 콘솔 시장을 정복했다.
E3 1997 게임쇼 2달 전에 소니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의 북미 시장 가격을 $149로 또 내렸고, E3 1997에서 세가에서는 컨퍼런스에서 새턴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는 발언으로 패배를 정식으로 인정했다.

2.2.2. 게임 가격 공세


SCE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은 당시 CD-ROM 매체를 장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CD-ROM을 매체로 한 게임기는 PC 엔진을 시발점으로, 메가 CD, 3DO, 아타리 재규어처럼 이미 많이 나왔음에도 게임기 판매로서는 상업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소니 측은 CD-ROM의 장점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롬 카트리지는 Mask ROM이라는 반도체로 이뤄진 기판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생산 단가가 비쌌으며, 이는 게임 회사들에 고스란히 로열티 부담으로 돌아왔다. 또한 반복 생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판매 부진시를 대비한 보험료도 게임 회사들에 받고 있었다. 또한 닌텐도 측은 1980년대부터 우호적인 도매상 연합이었던 초심회를 통해 유통까지 틀어쥐고 있는 상태였다. 게임 회사들에 이렇게 청구된 비용들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 게임 가격이 1만 엔이 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예를 들어, 플레이스테이션 출시 이후이자 슈퍼 패미컴의 황혼기인 1995년 당시에 인기작이었던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 크로노 트리거, 택틱스 오우거, 로맨싱 사가 3, 드래곤 퀘스트 6 전부 출시가가 11,400엔이었다. 이런 높은 가격은 중고 게임 매매 시장을 거대하게 만들어, 큰 인기가 정작 게임 회사에 이익으로 환원되지 못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CD-ROM은 기술적으로 롬 카트리지에 비해 용량도 우월했지만 생산 단가면에서도 비교적으로 우위에 있었으며, 반복 생산이 용이했다. 그리고 소니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음악 CD를 오랫동안 유통한 경험이 있었다. 이 유통 구조와 노하우는 SCE에 그대로 이식됐다. SCE가 도매업체 역할을 해 소매점들과 직접 게임 공급 계약을 맺었고, 소매점의 추가 주문 시에 6일 내로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또한 게임 회사들에는 파격적인 로열티를 제시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SCE는 게임 가격으로도 가격 공세를 펼칠 수 있었다. 경쟁 게임기였던 세가 새턴의 동시 발매작인 버추어 파이터가 8,800엔, 미스트가 7,800엔에 출시된 반면, 플레이스테이션 동시 발매 게임인 릿지 레이서를 비롯해 투신전, 철권 등의 초기 게임들은 대부분 5,800엔에 출시됐다. 세가도 SCE의 게임 가격 공세로 말미암아 바로 나중에 출시된 클락워크 나이트와 데이토나 USA 같은 게임들은 비슷한 가격에 출시해야 했다. 또한 SCE의 게임 가격 공세에 시달려 1995년부터 부진을 못 면한 닌텐도 역시 1996년 초에 게임 가격을 7,800엔으로 제한하는 특단의 조치를 해야 했다. 거대해진 중고 게임 매매 시장의 대책으로 출시한 지 일정 시간이 지난 게임이면 염가판을 출시했다. 당시에 SCE에 재직했고 아크 더 래드 시리즈의 프로듀서였던 아카가와 료지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 요소로 이 게임 가격 혁명을 꼽고 있다.
아래의 비교표를 통해 게임 가격의 극명한 변화를 알 수 있다.
슈퍼 패미컴
플레이스테이션
드래곤 퀘스트 6 (11,400엔)
드래곤 퀘스트 7 (7,800엔)
파이널 판타지 6 (11,400엔)
파이널 판타지 7 (6,800엔)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 (10,900엔)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5,800엔)
하지만 SCE의 유통 방식에 문제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게임의 초도 물량을 게임기 회사가 정하는 관례는 SCE도 여전했다. 이에 반발했던 워프사의 이노 켄지는 에너미 제로 사건을 터트렸다. 자세한 것은 D의 식탁 문서를 참고할 것. 이 사건 이후로 SCE는 초도 물량 출하량을 제작사에 일임하게 됐다. 97년부터는 SCE가 아닌 코나미, 스퀘어를 비롯한 게임 대기업들을 선두로 자체 유통도 시작됐다.
또한 SCE는 어느 소매점에서도 같은 가격에 게임을 구입할 수 있도록 정가 판매를 목표로 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 소매점에 정가로 판매하도록 압박했다는 혐의로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됐다. 그리고 1998년 1월 20일,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로 말미암아 배제 권고 명령이 떨어졌다. SCE는 해당 혐의를 부인했지만 2001년 8월 1일에 공정거래위원회 심결에서 사실이 인정됐고, 그해 11월 20일에 결국 SCE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배제 권고를 수락했다.

3. 사양


CPU
소니/LSI logic Coreware CW33300 커스텀 32 비트 33.8 MHz (MIPS I R3000A 호환)[33]
GPU
소니 커스텀 32 비트 GPU 53.2 MHz[34]
사운드
소니 커스텀 16 비트 SPU[35], CD-XA의 37.8KHz 16비트 ADPCM 지원
메모리
메인 메모리 : 2 MB EDO DRAM
비디오 메모리 : 1 MB 16 MHz VRAM[36]
사운드 메모리 : 512 KB EDO DRAM
CD-ROM 버퍼 : 128 KB
미디어
CD-ROM 2배속[37]
단자
입출력 콘트롤러 × 2
MEMORY CARD × 2
AV MULTI OUT × 1
S-VIDEO OUT × 1[38]
AV 다이렉트 OUT × 1[39]
병렬 포트 × 1[40]
직렬 포트 × 1[41]
규격
260 ㎜ × 185 ㎜ × 45 ㎜, 1.5 ㎏
193 ㎜ × 144 ㎜ × 38 ㎜, 550 g(PS one)

3.1. 모델


맨끝자리 숫자는 국가번호[42]이다 즉 SCPH-1000=일본에서 나온 SCPH-100x라는 의미.
  • SCPH-100x: 처음 나온 모델
  • SCPH-300x: S단자 출력부 삭제
  • SCPH-350x: 플레이스테이션 컨트롤러 2개 부속
  • SCPH-500x: 버그 수정
  • SCPH-550x: 버그 수정, RCA 출력 삭제(플레이스테이션 2와 같은 AV멀티 출력 단자를 통해 출력)
  • SCPH-700x: 듀얼쇼크 부속, CD 디지털 오디오 화상 처리 프로세서 '사운드 스코프' 내장, ODD 컨트롤러 비용 절감
  • SCPH-750x: SPU, ODD 컨트롤러 비용 절감
  • SCPH-900x: 병렬포트 제거
  • SCPH-10x: PS One

4. 특징


  • 플레이스테이션 CD를 CD 플레이어에 넣으면 플레이어는 물론 스피커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관계로 1번 트랙에는 음악 트랙으로 경고 메시지[43] 같은 걸 넣었는데, 몇몇 작품 같은 경우는 이 점을 노려서 꽤나 재미있는 경고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역습의 샤아 PS판을 CD 플레이어에 넣으면 아무로와 샤아가 투닥거릴 때 나나이가 말리다가 카미유가 나와서 제타 건담 마지막의 명대사를 날리고 종료된다(참고).
  • 게임 저장을 위해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한 외장 메모리 카드를 기본으로 사용하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메모리 카드는 기존의 SRAM으로 구성된 게임 저장 장치들과 다르게 전지가 필요 없기 때문에 데이터를 반영구 보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데이터의 관리와 다른 메모리 카드로의 이동도 가능했다. 이런 점들은 큰 혁신을 가져왔다.[44] 그러나 속도가 매우 느렸기 때문에 이상한 던전 같은 게임에서는 "강제 저장"이라는 전통이 무너지게 되었다.
  • 이 메모리 카드의 용량은 128 KB(1 Mbit)이고 가격은 1800엔이었기 때문에 역사상 모든 저장 매체를 통틀어서 저장 용량 대비 가격이 가장 비싼 매체였다. 블럭 단위로 게임을 저장할 수 있었으며 1 블럭의 용량은 8 KB였다. 그 중 1개의 블럭은 메모리 카드 내부 관리용으로 시스템에 의해 예약돼 있기 때문에, 총 15개의 블럭(120 KB)을 게임 저장용으로 쓸 수 있었다. 게임에 따라 1~2개의 블럭을 사용했다.
  • 시대를 먼저 내다보고 3D 기능에 집중하였고 이 예상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특히 실제로도 우수한 엔지니어였던 쿠타라기 켄이 진두지휘하며 칩부터 시작하여 기계를 스스로 설계한 덕분에 플레이스테이션은 뛰어난 성능, 균형적인 사양, 괜찮은 가격 등의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 반면 메모리 용량이 딸리고 확장도 불가능한 관계로[45] 메모리를 많이 사용하는 게임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보다 하드웨어적으로 더 다양한 2D 효과 기능을 가지고 있고 처리 속도도 더 빠른 데다 확장 메모리를 이용하여 스프라이트 데이터를 추가로 불러들이는 것이 가능한 새턴의 상대가 되기 어렵다. CD-ROM의 로딩 시간도 있다 보니 슈퍼 패미컴 게임도 그대로 이식하지 못하고 로딩이 추가되었으며, 메모리 용량 문제 때문에 프레임이 마구 삭제된 캡콤이나 SNK의 인기 2D 아케이드 게임들은 플레이스테이션 이식판이 매우 낮은 평가를 받았다.[46]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3D에 있었기에 이런 약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1997년부터는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처럼 메모리 용량의 한계를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시도한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47] 또한 3D 기술을 접목시킨 악마성 드라큘라 X 월하의 야상곡과 같은 뛰어난 게임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이 때문에 '2D가 강한 새턴'에 열화 이식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록맨 X4도 그래픽 효과를 제외하면 새턴판과 별 차이가 없는 뛰어난 품질로 만들어졌다.
  • 패드 디자인 결정에 있어서 제품 디자이너인 고토 테이유(後藤禎祐)는 현재 모두가 알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패드의 그립형 디자인을 내놓았다. 쿠타라기를 비롯한 사업부에서 기존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며 종래의 평면형 패드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가용 비행기와 헬리콥터 등으로 오가 노리오 사장이 컨트롤 스틱에 일가견이 있었던 걸 알았던 고토는 오가 사장에게 컨트롤 스틱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컨트롤러 형상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이를 납득한 오가 사장이 고토의 디자인을 채택하면서 그립형 디자인이 플레이스테이션 컨트롤러의 표준 디자인이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48] 고토 테이유는 플레이스테이션 3까지의 디자인에도 참여했으며, 부메랑 패드도 바이오 노트북의 네이밍과 상표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 초기에는 단순히 십자 버튼만 있는 패드가 기본이었으나, 닌텐도에서 닌텐도 64용 아날로그 스틱과 진동팩 등을 내놓고 크게 호평을 받자 이걸 카피해서 아날로그 패드를 내놓았고, 1997년 이후 기능을 개선해서 듀얼쇼크를 내놓았다. 아날로그의 조작감은 떨어져도 양 손에 서로 다른 진동을 전해주는 듀얼쇼크 자체는 그야말로 쇼크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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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패드
듀얼쇼크
  • CD-ROM을 기본으로 탑재했다. 최대 용량은 650~700 MB[49]. 물론 이전에도 CD-ROM 게임기는 존재했으나 절묘한 타이밍과 소니라는 존재 자체 덕분에 시디에 관련된 단가를 낮추는 것이 가능해졌고 게임 회사들은 음성이나 동영상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 CD는 검은색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저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 CD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초대 플레이스테이션 CD는 정품과 짝퉁을 구분하기 쉽다. 애초에 짝퉁이 퍼져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그러나 최근 레트로 게임기 카페에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후에 재판된 게임인 경우 뒷면이 은색인 경우가 있다고 한다. "PS1 정품 디스크는 무조건 뒷면이 검은색이다." 라는 법칙이 깨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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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은 프린팅, 후면은 검은색
  • 본체는 주로 각종 단자를 제거하는 형식으로 계속적인 비용 절감형 리비전이 가해져 1000번부터 시작하여 9000번까지 새로운 모델이 발매되었다. 가격이 낮아진 만큼 새로운 옵션을(듀얼쇼크 등) 기본적으로 추가해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최종적으로 TV 입력 단자와 확장 단자가 사라졌다. 또한 후기 기종에서 비디오 메모리가 개선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 플레이스테이션 초기 기종이었던 SCPH-1000과 3000, 1001, 1002에서 컬러 밴딩 현상이 있다. GPU의 사양이었던 8비트 텍스쳐링과 다르게 5비트 텍스쳐링만 했던 버그가 원인이었다. SCPH-1001, 1002 후기 버전과 3500번 모델부터 개선된 GPU가 들어가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 컬러 밴딩 현상
  • 공식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 전용 게임과 음악 CD만 지원하지만, SCPH-5903[50] 한정으로 비디오 CD를 재생할 수 있었다.
  • 직렬 포트를 이용하여 2대를 연결해서 멀티 플레이를 할 수 있지만, 플레이스테이션 본체와 TV, 이러한 기능을 지원하는 게임의 디스크가 각각 2개씩 있어야 했다.
  • 병렬 포트를 이용한 주변 기기는 공식적으로 나온 적이 없었으나, 이걸 이용한 액션 리플레이 등이 등장하였다. 불법 복제 문제로 인한 것인지 9000번대 이후의 본체에서는 이 단자가 제거되었다.
  • 소니타이머를 증명하듯이 디스크 인식률이 점점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는 렌즈를 움직이기 위한 레일이 플라스틱 재질인데다 전원부와 가까이 위치하여 쉽게 마모되기 때문이다. 렌즈 양쪽의 레일이 모두 플라스틱인데, 한쪽 레일에 더 많은 하중이 걸려 더 빨리 마모된다. 이렇게 되면 렌즈부가 푹 꺼지는게 눈으로 모일 정도인데 디스크와 렌즈의 거리가 멀어져서 시디를 읽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세우거나 뒤집으면 해결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에 강제로 렌즈부를 띄우거나 레일에 철판을 붙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5500번부터는 개선되었다.
  • 기본 개발 언어는 C이나, 신기하게도 C++ 코드를 컴파일러에 넣어도 정상 컴파일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소니에 문의하자 '이상하네요. 우리도 컴파일러 제작 의뢰할 때 사양이 그냥 C였는데...'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 디스크는 보통 CD 케이스에 담겼다. 2CD부터는 표지와 매뉴얼이 분리되거나, 1CD여도 매뉴얼이 분리된 자체 케이스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후 플레이스테이션 2부터는 자체 킵케이스로 고정된다.
  • 소니 그룹의 자산을 이용하기 쉬웠던 만큼 그 수혜를 톡톡히 보기도 하였다. 직영 CD 프레스 공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유통망을 이용하여 게임의 가격을 닌텐도의 절반 정도인 5800엔까지 끌어내린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구세주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

5. 발매된 게임



6. 주변기기 / 배리에이션



6.1. 포켓 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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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스테이션
비주얼 메모리 짝퉁
플레이스테이션용 휴대용 게임기 형태의 메모리 카드이다. 1999년 1월 23일에 출시됐다. 2002년에 단종됐으며 대략 500만개를 판매했다. 대응되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의 경우 플레이스테이션으로부터 전송받은 미니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세가 드림캐스트의 비주얼 메모리와 같은 콘셉트의 메모리 카드인데, 드림캐스트와 달리 본체에 장착되는 형식이라 패드 무게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만, 전지 소모가 매우 빠른 것이 단점.
도코데모 잇쇼의 성공으로 같이 대박을 쳤다.
사양
CPU
ARM7T 32비트 33.8 MHz CPU
메모리
2 KB SRAM
스토리지
128 KB 플래시 메모리
디스플레이
32×32 흑백 LCD
사운드
10비트 PCM
통신
적외선 양방향 통신
스위치
5개의 입력 버튼과 1개의 리셋 버튼
배터리
CR2032 리튬 버튼 배터리(3 V, 225 mAh)
규격
64㎜×42㎜×13.5㎜, 30 g
대응 게임

6.2. P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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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one
2000년 7월 7일[국내] 출시. 플레이스테이션과 동일한 성능에 크기를 1/3로 줄인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2006년 3월 23일에 전 플레이스테이션 모델이 생산 중단될 때까지 2815만 대를 팔았다. 일본에 491만 대, 북미에 1270만 대, 유럽에 1126만 대를 팔았다.
플레이스테이션과 다르게 PS one에서는 리셋 버튼이 사라진 게 특징이다. PS one을 리셋하기 위해서는 전원 버튼을 껐다 켜는 방법밖에 없었다. 또 전원 버튼에 RESET이라고 써 있기도 했다. 또한 전원부가 외부로 빠져, 어댑터를 통해 연결됐다. 그리고 직렬 포트도 제거됐다.
주변 기기로 아예 부착용 LCD[51]와 스피커가 같이 발매되었으며, 휴대용 플레이를 위한 차량용 시거잭 전원 장치까지 발매되었다.

6.3. 개발기기


개발자용 기종으로 연구소나 개발사급에만 판매한[52] 디버깅스테이션이 있으며, 이쪽은 코드프리에다가 동시에 4개의 메모리카드를 사용할 수 있고 8 MB 메모리를 사용한다는 이점이 있다. 기체가 푸른색을 띠고 있어 일명 블루 플레이스테이션이라고 불렸다. 이 디버깅스테이션으로 개발한 게임은 완벽한 개별의 게임으로써 구동이 가능하다.
또한 개발자 양성을 위해 한 때 넷 야로제 프로젝트를 진행, 검은색 무광 도색이 된 넷 야로제 플레이스테이션을 소니 본사를 통해 직접 판매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서류를 구비해서 국가별 소니 본사에 제출하면 심사 후 구매가 가능했으며 본체뿐만이 아니라 개발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등까지 별도로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가격에 자비가 없었다. 디버깅스테이션과 비교해봤을 때 넷 야로제의 차이점은 일반 가정용과 동일한 2MB 메모리를 탑재하고 있다는 것이며, 액세스카드로 메모리 카드 슬롯을 하나 사용하기 때문에 개발 환경에서는 메모리 카드를 1개밖에 쓸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또한 넷 야로제로 개발한 게임은 반드시 부트 CD와 병행해야만 구동이 가능하다.
컴링크 카드와 액션 리플레이를 이용하면 일반 플레이스테이션으로도 게임을 개발하는 게 가능하긴 했지만, 당연히 디버깅스테이션이나 넷 야로제에 비하면 많은 제약이 따랐다. 현재 디버깅스테이션은 유니크, 넷 야로제는 레어급 아이템이 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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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깅스테이션
넷 야로제

6.4. 프로토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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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와 협약 시절의 프로토타입이 발견되었다. 다만, 기기에 닌텐도의 로고가 일절 없고 PlayStation이라는 표기 방식과 폰트도 이후 SCE에서 발매된 버전과 같다는 점을 볼 때 계약이 결렬된 직후에 새로 설립된 SCE에서 마개조를 시작한 버전으로 보인다.
2016년 7월에 이 기기의 구조 및 스펙이 밝혀졌다! 참고 본체에 별도로 추가된 CPU나 램 등의 칩은 없고, 대신에 함께 유출된 롬 카트리지에 CD 구동 펌웨어가 들어있는 롬과 CD-ROM에서 게임을 로드하기 위한 확장 메모리 2 Mbit(256 KB), 게임 세이브용 64 Kbit(8 KB), 그리고 세이브 데이터 보존용 배터리가 내장돼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이곳을 참고하자.

6.5. 아케이드 호환기


상술했듯이 SCE는 남코에게 플레이스테이션 시스템 라이선스를 내주었는데, SCE는 플레이스테이션과의 상호 이식 용이성을, 남코는 작고 저렴한 3D 아케이드 게임기를 위해 시스템 1X 시리즈 같은 아케이드 시스템 기판과 게임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를 지켜본 주요 아케이드 게임을 내놓는 캡콤, 코나미, 타이토 같은 회사들도 SCE와 계약을 맺어 플레이스테이션 기반 아케이드 시스템 기판을 개발하고 3D 게임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캡콤 ZN-1,2 기판, 코나미 시스템 573 시리즈와 TWINKLE, 타이토 FX-1 시리즈와 G-NET의 아케이드 시스템 기판과 게임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 기반 아케이드 시스템 기판이라고 해도 사운드 시스템은 게임 회사와 기판에 따라 고유의 시스템으로 다르게 구성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CPU가 플레이스테이션에 비해 오버클럭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RAM을 더 많은 용량으로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SCE의 아케이드 시스템 기판 지원은 몇 년 더 이어졌는데, 플레이스테이션 2 시절에는 남코의 SYSTEM 2X6 시리즈 기판과 코나미의 파이썬 시리즈 기판에, 플레이스테이션 3 시절에는 남코의 SYSTEM 357 시리즈 기판으로 이어지다가 현재는 아케이드 시스템 기판들이 전부 x86 PC 기반이 되면서 명맥이 끊어졌다.
- 남코
SYSTEM 1X 시리즈를 참고.
- 코나미
TWINKLE시스템 573을 참고.
이외에도 코나미 GV와 GQ 시스템 기판에도 쓰였다.
- 캡콤
- 타이토

6.6. 복각판: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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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 SIEK 공식 트레일러
구성품
닌텐도 미니 클래식의 성공으로 클래식 미니 복각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결국 이를 의식하여 소니에서도 미니 복각판 제품을 발표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이 출시된 지 딱 24년 만인 2018년 12월 3일 발매되며, 한국에서도 발매된다. 가격은 일본판이 9,980엔(소비세 별도), 한국판이 11만 8천 원이다. 오리지널 플레이스테이션 대비 너비는 45%, 부피는 80% 더 작아졌다. USB-A 타입의 플레이스테이션 패드 2개, HDMI 케이블, USB micro Type-B 케이블, 20개의 게임으로 구성된다. 한국 발매 버전은 모두 영어 버전이다. 720P 출력에 패드는 듀얼쇼크가 아닌 초기형 패드 재현으로 아날로그 스틱과 진동 기능이 없고 인터넷이나 PSN 접속 대응, 트로피 기능 지원 역시 없다. 수량 한정 생산을 공언하고 있으며 일본은 PS+ 가입자 한정으로 1인 1대 예약 추첨을 받아 판매한다. 선행 추첨 이후에는 11월 4일부터 소니 스토어 공식 및 일부 대형 양판점에서 선착순 예약을 받았으며, 11월 9일 전후로 각 매장에서도 예약 수량이 다 차서 예약을 종료한 상태이다.
한국의 경우 11월 2일부터 플레이스테이션 파트너샵 및 게임 전문 온라인 쇼핑몰에서 예약 주문이 가능하다.
레트로 리시버와 레트로 디자인 블루투스 컨트롤러로 유명한 8BitDo에서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을 위한 USB 무선 어댑터를 출시했다. 듀얼쇼크 3,4 /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엑스박스 원 S 컨트롤러/ 조이콘, 프로콘, Wii U 프로컨트롤러, Wii 리모컨과 자사의 블루투스 컨트롤러를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에서 사용하는것이 가능하며 키보드를 연결하지않아도 에뮬레이션 설정에 접근할 수 있다.

6.6.1. 게임 라인업


일본판에만 수록되는 타이틀과, 국제판에만 수록되는 타이틀이 존재한다.
게임 라인업
북미/유럽/한국/동남아시아 지역
일본/홍콩/대만 지역
GTA
에이브 어 고고
G 다라이어스
Xi(사이)☆
디스트럭션 더비★☆
레이맨
그라디우스 외전
사가 프론티어
사이폰 필터
쿨 보더즈 2★☆
아머드 코어
패러사이트 이브
트위스티드 메탈
레인보우 식스★☆
아크 더 래드
아크 더 래드 2
공 통
I.Q 인텔리전트 큐브☆
릿지 레이서 타입 4
메탈기어 솔리드
미스터 드릴러
바이오하자드 디렉터즈 컷
슈퍼 퍼즐 파이터 2 X
여신이문록 페르소나
와일드 암즈
점핑 플래시★
철권 3★☆
투신전★☆
파이널 판타지 7
★: PAL 버전, ☆: 2인 플레이 가능

6.6.2. 평가


다른 복각 게임기들의 평가를 뛰어넘지 못하고 역대급으로 폭망하다.
발매를 전후하여 인터넷 스트리머, 언론 등지에서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에 대한 리뷰가 공개되었다. 그러나, 거의 위아더월드 급으로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고 있다. 특히, 기기의 부실한 완성도로 욕을 얻어먹고 있다. 그래도 재믹스 미니보다는 낫다
  •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 수록된 게임 리스트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서구에서도 국제판보다 일본판에 대해 더 호의적인 평가를 보이고 있다. 라인업이 이렇게 부실한데 대해서 PSN 스토어에서 PS One 클래식 게임을 팔고 있는 게임 퍼블리셔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플레이스테이션 비타에 한정되어 있어 시장이 좁기 때문에 그리 신빙성 높은 주장은 못된다. 또 하나, 1990년대 중후반 이후에 발매된 각 게임들에 쓰인 노래의 곡, 가사, 가수의 목소리와 성우의 대사, 그란 투리스모의 경우에는 여기에 쓰인 자동차, 상표 등, 저작물의 권리자들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계약 문제가 걸림돌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11만 8천원의 가격을 맞추기 위해 비용이 많이 드는 복잡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단순하고 저렴한 게임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 전원을 연결하면 준비 등이 들어온다. OPEN 버튼은 CD를 교체하는데 쓰인다. 전원 요구 사양은 다소 높은 편으로, 닌텐도의 클래식 게임기들이 보통 모니터에 달린 USB 로도 동작하는 반면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은 빨간 불이 잠깐 들어왔다가 꺼져 버린다. 이는 모니터에 달아 놓은 USB 허브가 데이터 스트리밍 기능만 지원하는, 원래부터 전원 기능을 제거한 무전원 허브이기 때문이다. 권장 사양에 적어 놓은 5 W(5 V-1 A) USB 전원 장치를 마련해 연결하면 된다.
  • 슈팅 게임 등에서 입력 지연을 호소하는 유저들과 증거 동영상이 올라오고 있는데 디지털 TV의 화질 보정 기능을 끄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로 보인다. 이는 같은 조건인 경우 닌텐도 NES 클래식에서도 똑같이 발생하는 문제이므로 동작 전에 미리 확인해 게임 모드로 전환하거나, 화질 보정 기능을 꺼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TV의 화질보정기능으로인한 입력지연을 모를리 없는 레트로게임 유튜버들의 리뷰에서도 입력지연이 지적되는것을 보면 기기자체에도 어느정도의 입력지연이 있는것으로 보인다.
  •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에 들어간 메인 프로세서로 미디어텍 MT8167A가 들어갔다.# 이는 ARM Cortex-A35 1.5 GHz 쿼드코어와 Imagination Technologies PowerVR GE8300으로 구성된 SoC로 하드웨어 성능은 플레이스테이션 에뮬레이션에 문제가 없다고 디지털 파운드리는 평가했다. 이외에도 메모리나 스토리지의 용량은 닌텐도 클래식이나 네오지오 미니를 한참 뛰어넘는 사양을 갖추고 있다.
  • 게임 패드는 듀얼쇼크가 아닌 오리지널 플레이스테이션 패드를 오마쥬한 패드를 두 개 동봉했다. 하드웨어를 약 10만 원 대 수준의 태블릿 사양으로 구성한 탓에, 비용 절감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패드의 완성도는 오리지널 패드보다도 훌륭하며, PC에 연결해도 작동한다. 단 일반 USB 게임 패드를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에 연결하면 방향키 이외에는 동작하지 않는다.
  • 일부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에 동봉된 패드로 조작하기 불편하다. 어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들은 아날로그 컨트롤러로 조작하도록 설계되었으나,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에 동봉된 컨트롤러는 4개의 디지털 방향 버튼만 존재한다. 이 때문에 특히 레이싱 게임과 슈팅 게임에서 지나치게 불편하다는 것이다. 특히 레인보우 식스 같은 FPS 게임의 경우 지옥이 된다. 플레이스테이션 시절 게임이면 FPS 말고 3인칭 3D 게임도 아날로그 없이 하면 카메라가 너무 휙휙 돌아가서 지옥인데 원가절감때문에 오리지널패드를 넣은거면 듀얼쇼크를 팔든가 아니면 듀얼쇼크 4를 지원하든가
  • 일본판이 아닌 국제판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게임을 PAL 버전으로 집어넣었다.서구에서 일본판을 더 호의적으로보는 또다른이유 PAL 방식은 필드 주파수가 50 Hz인 관계로, PAL 버전의 게임은 전부 최대 25 또는 50 프레임으로 동작한다. 철권 3 같은 프레임율이 중요한 격투 게임에서는 치명적인 문제이다.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이 60Hz으로 화면을 출력하는 기기라서 5프레임마다 한번씩 중복된 화면을 출력(1, 2, 3, 4, 5, 5, 1, 2...) 하기 때문에 0.1~0.2초마다 한번씩 미세하게 끊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최대 720P의 해상도로만 출력이 가능하며, 업스케일링 품질이 형편없다. 게다가 내부에 동작하는 필터가 너무 강해 화면이 뭉개지며,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에는 어떤 화면 필터 및 설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USB 키보드를 연결하고 ESC를 누르면 에뮬레이터의 다양한 설정 기능이 나온다고 한다(...) 로지텍과 커세어의 USB 키보드로만 동작 가능한 것이 확인되었다. 심지어 이 설정 메뉴를 사용해서 PAL 버전으로 수록된 게임들을 NTSC버전과 거의 동일한 프레임으로 돌릴 수 있다.
  •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의 UI는 오리지날 플레이스테이션 UI를 오마주한 디자인이다. 그런데 이런 디자인에 대해 무성의하다는 평가가 있다.
  • UI 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았다. SNK에서 공식 발매한 복각 미니 기기인 네오지오 미니의 UI를 한국어로 번역해 놓은 것과 비교가 된다.
  • 게임의 저장 공간은 예전의 메모리 카드처럼 15개의 저장 공간을 제공하지만, 빠른 저장(Quick Save State) 공간은 게임 하나 당 하나의 공간만 제공한다. 다시 저장하려면 기존에 저장했던 내용을 덮어쓸 수 밖에 없다. NES 미니나 SNES 미니의 경우 4개의 공간을 지원하는 것과 비교가 된다.[54]
  • 디지털 파운드리의 분석에 따르면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은 플레이스테이션 2 이후의 거치식 또는 휴대용 게임기에 사용했던 SIE(SCE) 자체 솔루션이 아닌 PCSX-ReARMed 에뮬레이터로 구현되어 있다. 그런데 이 에뮬레이터의 재현도가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다. 30프레임으로 동작하는 게임도 힘겹게 돌아가며, 30프레임으로 출력하더라도 프레임 페이싱 문제가 있다. 그 미만 프레임으로 동작하는 PAL 버전 게임들 역시 스터터링을 겪고 있다.# 또한 프레임 저하 외에도 사운드 출력 오류, 그래픽 컬러 밴딩 등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이후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 게임기들에 구현된 하위 호환 기능에 비해 뒤떨어지는 에뮬레이션을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디지털 파운드리에서 PSP 또는 플레이스테이션 비타를 구입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차라리 비타 TV에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번들로 동봉해서 플레이스테이션 모양 껍데기를 씌워 파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심지어 위에서 서술된 키보드를 사용해서 불러낸 설정 메뉴를 확인해 본 결과, 소니가 에뮬레이터를 커스텀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조작 계통 설정을 제외하면 사실상 수정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설정 한 두개만 바꾸면되는 PAL 버전 게임을 NTSC버전처럼 돌릴 수 있게 하주는것조차 안한거보면 진짜로 키설정만했을 가능성이 크다
  • 호기심 많은 해커들에 의해 해킹이 진행중이다.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에 들어간 OS는 임베디드나 IoT 시스템을 위해 맞춤형 리눅스를 쓸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인 Yocto 프로젝트 리눅스 커널 기반#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외장 스토리지를 연결하고 터미널을 통해 임의의 게임 이미지를 불러오는데까지 성공했다. 내장 스토리지 덤프 결과 채워진 용량은 15 GB 정도.
  • 해킹이 어느 정도 성공한 듯 하다. Bleemsync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PS1의 게임을 돌릴 수 있다. USB를 2P에 연결한 뒤에 사용할 수 있다. 단, USB 부팅을 통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원래 내장 게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USB에 넣은 롬만 보이게 된다. 해킹 방법 및 자세한 것은 이 영상을 참고.
  •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40% 인하 판매가 등장했는데 홀리데이 시즌 때 판매가 처참했던 것으로 보이며 2019 연초에는 마침내 25달러 로 떨이 처분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폭망했음을 알려주는 상황. 발매 후에는 게임기 기능도 있는 피규어 취급을 받고 있다.

7. 기타


  • 에뮬레이터로 돌리면 닌텐도 64와 새턴보다 잘 돌아간다. 에뮬레이션의 특성상 게임마다 속도가 천차만별로, 비교적 요구 사양이 낮은 블러디 로어 시리즈, 철권부터 높은 요구 사양의 메탈기어 솔리드까지 다양하다. 댄스 댄스 레볼루션버스트 어 무브 같은 일부 리듬 게임은 에뮬레이팅 시의 취약점이 되곤 하는 입력 지연에 민감해 PS3/PSP의 공식 플레이스테이션 에뮬레이팅에서도 곡 박자가 어긋나기 때문에 해당 게임을 플레이할 때 플레이스테이션 실기가 필요하다. 아니면 에뮬레이팅이 아닌 하드웨어적으로 하위 호환을 지원하는 PS2로 돌리거나...
  • 뒷세대의 기기로 플레이스테이션 2, 플레이스테이션 3, 플레이스테이션 4가 나오면서 첫 번째 플레이스테이션인 이 기기는 종종 '플레이스테이션1', 약칭 'PS1'로 불린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플레이스테이션'이라고 하면 시리즈 전체를 부르는 것으로 알기도. 북미에서는 'PSX'로도 불린 적이 있으나 나중에 PS2 기반의 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인 PSX가 나와 버려서 혼동이 생겼을 수도 있다.
  • 영국의 채널 BBC의 프로그램인 닥터후에서 나오는 조연 미키가 비행선 조작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배웠다고 한다(...).
  • 1999년에 나온 영국 광고가 매우 괴랄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불쾌감이 들 수 있으므로 링크로 대체. 어딘가 묘하게 뒤틀려 보이는 얼굴을 한 소녀가 나오는데, 배경에 이상한 잡음이 깔려서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CF 감독은 영국의 시각 예술가인 크리스 커닝햄으로, 에이펙스 트윈과도 긴밀히 작업한 경력이 있다. CF 모델은 배우인 피오나 맥클레인이 맡았는데, 실제 외모는 CF와 달리 괴이한 외모는 아니고 그냥 괜찮은 외모이다. 그녀의 실제 외모와 배우 이력. 이 사진이 여러 가지를 알려 준다.
원문
해석
Let me tell you what bugs me of the human endeavor
I’ve never been a human in question, have you?
Mankind went to the moon
I don’t even know where Grimsby is
Forget progress by proxy
Land on your own moon
It’s no longer about what they can achieve, out there on your behalf
But what we can experience
Up here and of our own time
And it’s called mental wealth
사람의 노력이 나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말해 줄게.
나는 이 질문에 의문이 드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너는 어때?
인류는 달에 착륙했지만,
난 그림스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55]
그런 진보 따윈 대체품으로 망각해 버리고,
너만의 달로 착륙하러 떠나 봐.
더는 남들이 너 대신에 이뤄줄 일이 야니야.
그래도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우리만의 시간으로
정신적 부유함을 경험할 수 있어.
이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스스로가 못하는 걸 남들이 대신 이뤄주거나 스스로가 뒤쳐지는 걸 신경쓰지 말고 게임이나 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즐겨 보라는 뜻.
  • 참고로 700 MB 짜리 일반 CD를 넣으면[56] 부팅 후에 소름끼치는 BGM과 화면이 나오면서 사용자들이 공포를 떨게 했다. 사람들은 이를 Fearful Harmony(공포의 화음)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켜고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1분 정도 기다려야 나오며 BGM 수준이 어차피 플레이스테이션 1, 2 켜는 음이 무섭다지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름끼친다.영상 사실 이 소리는 의도적으로 넣은 이스터 에그가 아닌 플레이스테이션의 부팅이 오류로 느려지면서 부팅음의 특정 부분이 반복되면서 진행되는 소리라고 한다.[57] 잘 들어보면 플레이스테이션의 부팅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포장 박스는 절대 버리면 안 된다. 보증서를 박스 겉면에 적어놨고 거기다가 판매자 도장까지 찍어주는 특이한 시스템이다. 휴대폰, 노트북, 100달러 이상의 고급 헤드셋 등 다른 IT기기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플레이스테이션은 보증서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신경써야 한다.
  • 신규 타이틀은 2004년까지 출시되었으나, 재발매판을 포함하면 2007년까지 계속되었다. SCEK의 출범으로 뒤늦게나마 한국에서도 정식으로 출시된 타이틀이 몇몇 있다.
  •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과 동일한 날짜에 출시되는 닛신의 컵라면 나조니쿠동이 20여년 전, 플레이스테이션 출시 CF를 패러디하여 광고를 내보냈다.


닛신의 패러디 나조니쿠동
PS의 1,2,3으로 게임이 바뀐다

7.1. 복사칩 관련


불법복제를 막으려는 소니의 노력도 있었다.
초기 플레이스테이션 1000번 모델은 별도의 복사칩 없이도 불법 복제 CD를 돌리려면 '볼펜 스프링'이니 '황금축'이니 하는 것을 기기 사이에 끼우고 CD 인식 시간의 허점 사이를 노리는 스왑 스타일의 복돌 꼼수가 성행했다. 그러나 모델이 개량되면서 그 방법이 막혀 플레이스테이션에 불법 복제 CD를 돌릴 수 있도록 정품 인식을 우회하는 개조칩(모드 칩)이 만들어졌다. 불법 복제 시장의 활황이 철권 2시절부터 시작된 용팔이들의 폭리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그 시장은 이미 그 이전부터 프레스 시디로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모드 칩에 대하여 소니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1998년 경에 불법 복제 보호 기능을 넣었다. 이런 게임을 구워서 돌리면
일본판
북미판
파일:external/consolecopyworld.com/protected.jpg

강제로 종료하였습니다.
본체가 개조되었을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종료하였습니다.
본체가 개조되었을 수 있습니다.
1-888-780-7690으로 연락해 주십시오.
보통 이러한 화면이 떴다. 이렇게 불법 복제 보호 기능이 들어간 게임은 대표적으로 파이널 판타지 8. 이 불법 복제 보호 기능이 처음으로 적용된 게임은 I.Q.Final Test 와 포포로크로이스 이야기시리즈의 포포로그가 있는데 겨우 1주일도 안 지나서 용팔이 복사업자로 말미암아 뚫렸다고 한다. 파이널 판타지 8은 조금 오래 버티긴 했는데, 액션 리플레이로도 보호 기능을 깨는 것이 가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호 기능이 제거된 불법 복제 CD가 나오게 됐다. 단 이렇게 수정된 게임은 정품과의 게임 데이터 구성이 다소 다르기도 했다. 이후 사일런트 힐, 사가 프론티어 2, DanceDanceRevolution 초창기 PS판, 비트매니아 고타믹스(혹은 그 이후의 5건반 비트매니아 CS판) 같은 작품들이 이 기능을 달고 나왔지만 파이널 판타지 8 이후에는 이전처럼 평범하게 불법 복제품이 유통되었다. 결국 2000년도 초반에 MM(Multi-Mode)3칩의 등장으로 이 이야기는 옛말이 되어 버렸다...
파일:external/www.superufo.com/ps-x-change.gif
아예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동작하는 PS-X Change2도 나왔지만 한국에서는 모드 칩에 밀려 알려지진 않은 듯하다(...).

8. 관련 문서



[1] 24년 후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도 같은 날 발매되었다.[2] 카마엔터테인먼트에서 SCE의 정식 라이선스를 받진 못했지만 해외 유통상을 통해 수입해 판매했다. 프리볼트 기본 탑재 같은 특징이 있었지만 이미 그레이 마켓이 성행하고 있어서 기사),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3] SCEK에서 PS one을 PS2와 동시에 판매하였으나, 당시에 이미 플레이스테이션 2의 시대가 되기도 했거니와, 플레이스테이션 2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가동도 가능하기 때문에 극소량만 판매됐다.[4] 1996년 5월 16일 → 1997년 3월 3일 → 1998년 8월 30일 → 1999년 8월 23일 → 2002년 5월 15일에 인하했다. 2000년 9월 19일 PS one을 $99에 출시하기도 했다.[5] 1995년 7월 21일 → 1996년 3월 28일 → 1996년 6월 22일 → 1996년 11월 15일 → 1997년 11월 13일 → 1998년 12월 1일 → 2001년 9월 12일에 인하했다. 2000년 7월 7일 PS one을 ¥15,000에 출시하기도 했다.[6] 이후 플레이스테이션 3 초기까지 이어진다.[7] 시동 화면에서 사용하고 있는 징글 멜로디는 녹음된 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사운드 프로세서, SPU의 최대 24채널을 모두 사용해서 들려주는 테크 데모를 집어 넣은 것이다. (출처 필요)[8] 구닥동 쪽 댓글을 보면 유통 자체는 순정으로 되어 있는데 소매점에서 모드 칩을 장착하여 판매했다고 한다.[9] 세가 새턴과의 경쟁 구도 시절, 새턴 진영에서 이걸 두고 일회용을 가리키는 츠카이스테(使い捨て/쓰고 버려)를 빗대어 플레이하고 버리는(プレ捨て) 일회용 게임기라면서 깐 적이 있다. 이에 대해 PS 진영에서는 '열폭하는 것 자체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쿨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정말 패배했다.[10] 차후 발매되는 플레이스테이션들이 2, 3, 4식으로 넘버를 붙히자 이 기기를 1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11] 코드네임. 같은 이름의 플레이스테이션 2 기반의 비디오 레코더가 따로 있는데, 이는 일본에만 발매되었다.[12] 이 시절의 프로토타입은 플레이_스테이션 이라고 띄어서 표기한다.[13] 당시에 이미 쿠타라기에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사장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고 했을 정도이다. 오가 노리오 사장은 쿠타라기를 귀여워했고, 그리고 나머지 사원들은 쿠타라기가 일 벌리면 수습하고 사과하는 노예들이었다고 마루야마는 증언했다.[14] 이는 소니의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이부카 마사루 사장에게서 기술력으로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쿠타라기 켄이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LCD 와치맨을 개발하던 시절에 이부카 마사루 사장의 눈에 띄어 쿠타라기 켄이라는 훌륭한 기술자가 있다고 주위에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15] 오가 노리오 사장은 이후로 이런 쿠타라기 켄을 사내의 다른 간부들에게서 보호하며 마음껏 날뛸 수 있도록 그들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로 출향시켰다.[16] 당시 손해액은 쿠타라기가 음원칩으로 자신이 벌어온 돈이니 그냥 쓰게 해달라는 돈으로, 기껏해야 2~30억 엔이었다고. 회계연도 기준 1991년 소니의 매출액은 3조 6170억 엔이었다.[17] 我々は本当にこのまま引き下がってもいいのですか。ソニーは一生笑いものですよ。[18] 출처: SONY의 선율(나의 이력서), 오가 노리오, 출처 2[19] 任天堂から顔に泥を塗られて、黙っておられるつもりですか。[20] そこまで言うなら独自路線でいけるかどうか証明してみろ。DO IT![21] 시대의 리더:쿠타라기 켄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사장, 일본경제신문, 2009년 5월 22일#[22] Amusement Machine Show. 현재의 Japan Amusement Expo이다.[23] 이 데모에서 사용된 OST는 나중에 나온 포탈 스토리즈: 멜에서 리메이크되어 등장한다. 오마주인지 표절인지 판단 바람.[24] 세가의 게임으로 얻는 수익은 세가에서, 소니의 게임으로 얻는 수익은 소니에서 전부 갖는 것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비디오 게임 관련 세가의 자산이 압도적으로 우수했으므로 세가가 더 유리한 조건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25] That’s a stupid idea, Sony doesn’t know how to make hardware. They don’t know how to make software either. Why would we want to do this?[26] 소니가 1995년 E3 키노트에서 올라프 올라프슨의 25분 남짓 플레이스테이션 발표 도중, 당시 SCEA의 사장이었던 스티브 레이스를 등장시켜 299만 얘기하고 사라지는 장면으로 유명하다.#[27] 이때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토머스 칼린스키는 1995년 3월의 한 언론 인터뷰에서 1995년 9월 2일 토요일(Saturday → Saturnday)에 발매할 계획이라고 인터뷰를 했지만, 세가 본사에서 플레이스테이션보다 먼저 시장 선점을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베스트바이나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점에 미리 공지도 하지 않고 발매한 병크를 저지르는 바람에 미국 소매점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유는 북미 시장의 세가 게임기는 1995년까지는 제네시스(메가 드라이브)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가 새턴의 높은 개발 난이도에 따른 동시 발매작의 부족으로 시장 선점 효과도 누리지 못했다. 유럽 시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28] 텍스쳐 필터링 같은 앞선 기능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지만 정작 초당 연산 가능한 폴리곤 숫자는 오히려 낮아서 하드웨어 성능이 무조건 높다고 보기엔 조금 애매하다. 게다가 개발 환경 때문에 퍼스트 파티 이외엔 그 성능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해서 실제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압도적 성능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29] 스퀘어에서는 SGI 오닉스와 인디 워크스테이션을 구입해서 만든 'Final Fantasy VI : The Interactive CG Game'이라는 3D 데모 영상을 SIGGRAPH 1995에 출품한 적이 있다.[30] 롬 카트리지는 Mask ROM이 쓰였는데 가격 때문에 대용량화가 힘들어 현재까지도 거치형 게임기에서는 광학 디스크가 저장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이 문제는 슈퍼 패미컴 시대에 들어오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게임 회사들에서 다양한 종류의 압축 해제 확장칩들을 롬 카트리지에 내장해 발매하기도 했다. 닌텐도에서도 S-DD1이라는 압축 해제 확장칩을 개발하기도 했고, 이 칩은 대표적으로 스타 오션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2 알파에 내장됐다. 용량을 키울 수는 있으나 네오지오의 카트리지처럼 슈퍼 패미컴의 본체만큼 커지고, 두꺼워지고, 비싸진다. 실제로 네오지오 게임의 경우 하나에 수만 엔 이상이었다.[31] 이것으로 SCE와 스퀘어의 합자회사인 디지털 큐브라는 기업이 1996년 2월에 설립됐다. 처음에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유통했으나 책, 굿즈, 음악 등의 유통으로 넓혀갔다. 2003년 11월 6일에 파산해 스퀘어 에닉스는 이로 인해 7억 6천만 엔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고 한다.[32] 이로 인해 故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 회장은 크게 화를 내며 다시는 닌텐도 게임기에 스퀘어 게임을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스퀘어에서는 한동안 휴대용 게임을 원더스완에 내야만 했는데, 이는 스퀘어의 게임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으며, 한편 원더스완으로 게임을 내던 1999년부터 스퀘어의 게임에 대한 판매량은 급감하기 시작했다. 이 관계는 2002년 여름까지 지속되다 같은 해 가을에 "스퀘어와는 계약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약을 검토할 여지도 없다. 장래적으로도 가능성은 낮다."라는 故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 회장의 발언을 계기로 화해하면서(없다가 아니라 낮다라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야마우치 회장의 직설적인 언행을 감안해 보면 예전과 달리 계기만 생긴다면 계약할 생각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의 스퀘어는 에닉스와 합병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닌텐도의 마음이 변한 것으로 봐야 한다. 사실 닌텐도와 에닉스의 사이는 그 어떤 회사들보다도 사이가 좋았다.), 비로소 게임보이 어드밴스와 그 이후의 엄청난 판매량을 보인 닌텐도 휴대용 게임기에 스퀘어 게임을 낼 수 있었다.[33] CPU와 코프로세서(Control Processor)외에 지오메트리 연산용 Geometry Transformation Engine이 장착됐다. 텍스처 매핑시 최대 초당 18만 폴리곤을 처리할 수 있고, 1/60초간 최대 4000개의 8 × 8 스프라이트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MJPEG와 H.261 비디오 디코더 기능을 수행하는 MDEC도 장착됐다.[34] 렌더링 및 스프라이트 프로세서. 해상도 256 × 224에서 최대 640 × 480까지 지원한다. 그 밖에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다.[35] 최대 24채널 샘플링 주파수 44.1 kHz 16비트 ADPCM 및 PCM, MIDI 지원.[36] VRAM은 비디오 메모리의 준말이 아닌 1980년대 중반에 IBM에서 개발한 DRAM 규격들의 하나인 VRAM을 가리킨다. 1001, 1002번대 후기 생산 버전과 3500번대 이후부터는 더 빠른 83 MHz, 100 MHz SGRAM이 장착됐다.[37] KSM-440시리즈가 사용되었다. 맨 첫 모델이 KSM-440-AAM이고 PSone에 쓰인 모델이 KSM-440BAM이다. 번호가 같은만큼 큰 차이는 없고 선의 길이가 조금씩 다른 정도이다.#[38] 첫 출시 형번인 1000번에만 존재[39] 1000번대, 3000번대, 5000번대[40] 1000번대, 3000번대, 5000번대, 5500번대, 7000번대[41] PS one 제외 모든 모델[42] 0: 일본(NTSC-J), 1: 미국(NTSC-U), 2: 유럽(PAL), 3: 아시아(NTSC-J)[43] 사실 이 요소의 원조는 PC 엔진 CD이다.[44] 닌텐도는 한동안 SRAM과 전지 시스템으로 버티다가 플래시 메모리와 콘트롤러 팩을 도입하게 된다.[45] 메인 2 MB, 비디오 램 1 MB. 세가 새턴은 메인 램 2 MB, 비디오 램이 1.5 MB인데다가 더해서 확장램팩으로 1~4 MB를 더할 수 있다.[46] 캡콤의 VS. 시리즈 이식판은 플레이스테이션의 메모리로 캐릭터 네 명분의 데이터를 동시에 담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태그 시스템이 삭제됐다.[47] 타격 효과를 3D 효과로 대체하거나 장기에프의 앞뒤 이동 모션을 공유해서 사용하는 등 갖은 꼼수를 사용했다.[48] '플레이스테이션을 만든 사람들' 만화에서는 쿠타라기는 끝내 납득하지 못하다가 고토의 자녀들이 재밌게 즐기는 모습을 보고 인정하게 되었다고.[49] 원래 CD-ROM은 650 MB 규격으로 나왔으나 이후 트랙을 좀더 촘촘하게 배치하여 기록 용량을 50 MB 더 올린 규격이 새로 나왔다. 이 두 규격은 드라이브 교체 없이 호환이 가능하므로 플레이스테이션에서도 무난하게 700 MB CD 인식이 되었다.[50] 아시아 지역 한정으로 출시되었다. 비디오 CD를 재생하기 위해 MPEG1 디코더가 추가되었으며, 일본 지역 코드에 프리볼트를 지원한다.[국내] 2002년 2월 22일 플레이스테이션 2와 동시 발매. 여담으로 대한민국의 무분별한 불법복제 디스크때문에 프리 코드라는 유언비어가 돌았으나 후속 기종과 같은 NTSC-J였다.[51] 플레이스테이션 2, 3 본체에 연결해도 화면 출력이 가능하다.[52] 그나마도 가격이 그때 그때 라이선스에 따라 요동치던….[53] 타카라에서 만든 게임이지만 캡콤의 아케이드 기판을 썼다.[54] 닌텐도 뿐만이 아니라 네오지오 미니C64미니같은 NES 미니 이후에 출시된 대부분의 미니 콘솔은 전부 4개의 세이브 슬롯을 지원한다.[55] 잉글랜드 링컨셔 주에 있는 도시이다.[56] 밑 영상에는 우분투 CD를 삽입하였다.[57] 위 영상의 베스트 댓글 중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특정 데이터를 찾지만 실패해서, 그 데이터를 절대 찾을 수 없더라도 그 상태를 유지합니다. 이는 지연을 발생시켜 PlayStation 로고가 매우 느리게 사라지고, 징글 멜로디가 느리게 재생됩니다.(단지 나의 짐작입니다. 그러나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라는 댓글이 있다. 원문: "Here's why it happens: The PS1 tries to look for specific data, but it fails to find it, so it keeps searching for that data, even though never can find that data. This causes a lot of lag, so the PlayStation logo fades in much slower, and the jingle plays much slower. (I'm just guessing, but it shouldn't be far off from correct)"